손흥민 선수가 중국 선수들과 포옹한 이유
리더의 향기
얼마 전 중국 심천에서 한국과 중국 간 축구 경기(북중미 월드컵 지역 예선전)가 열렸다. 예상대로 랭킹과 기량면에서 앞선 한국팀의 승리였다. 결과만 보면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경기였지만,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경기는 팬들에게 승리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체력과 스피드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패스와 창의적인 플레이는 상대 선수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기술적 요소들 외에 한 가지 더 높이 평가하고 싶었던 점은 선수들의 안정적인 경기운영이다. 중국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야유, 상대 선수들의 거친 몸싸움에도 흐트러짐 없이 90분 내내 자신들만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필요한 동작과 감정 표출이 크게 줄어들면서 예전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원숙함이 느껴졌다.
특히, 캡틴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외국인 감독과 선수들 간 언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며 팀 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성과 또한 한국 축구의 에이스다웠다. 상대 선수들의 집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2골1도움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경기 후 중국 선수들과 포옹하며 위로를 건네는 모습에는 월드클래스의 품격이 묻어났다.
평소 손흥민 선수가 경기 후 상대팀 선수들과 포옹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아무리 인성이 좋은 손흥민 선수라도 중국 선수들과의 스킨십은 썩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심 많은 중국 팬들의 몰상식한 언행과 언론의 어처구니없는 편파 보도, 중국 선수들의 매너 없는 거친 플레이를 생각하면 표정관리 조차 쉽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중국 선수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 손흥민 선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른 팀들을 대할 때와 같은 기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중국팀이란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어쩌면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마크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월드컵을 비롯하여 수많은 A매치 경기를 치른 그는 태극마크의 무게와 그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승리와 월드컵 진출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뿐만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공인의 신분을 잠시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가 보여준 따뜻한 호의에 중국팬들이 반짝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질투심 많은 그들에게 근본적인 태도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중국팀은 싫든 좋든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할 상대다. 스킨십의 목적은 친목만이 아니다.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한편, 그날 우리 선수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는 현장에서 열렬히 응원해 준 교민들이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교민들은 손흥민 선수의 따뜻한 인간미를 지켜보면서 승리보다 더한 자긍심을 느꼈을 것이다. 일부 중국 팬들의 야유와 위협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서 자신의 소속팀인 토트넘도 떠올렸을 것이다. 영국 프로축구팀들은 팀소속 선수들이 자국에서 활약하는 소식까지 상세하게 전한다. 손흥민 선수는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이자 주장까지 맡고 있다. 동시에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간판스타이기도 하다. 가끔 인터넷에 손흥민 선수의 친필 사인을 받아 들고 즐거워하는 영국 소년 팬들의 영상이 올라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공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손흥민 선수가 경기 후 보여준 모습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연출인지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대표팀의 유니폼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고, 팀의 리더로서 그 책임을 다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연출이었다면 더더욱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조직의 리더라면 민낯을 보일 때보다는 가면(假面)을 써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리더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을 기피한다면, 구성원들은 리더의 눈치를 살피며 딴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리더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고, 껄끄럽고 불편한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면 그 조직은 극단적 피아구도에 매몰되어 양분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선택과 결단 또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왠지 어색해 보였던 손흥민 선수의 포옹을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