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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Feb 04. 2024

약자는 왜 계속 약자에 머물러 있는가


중학교 2학년인 영철이의 교실은 하루도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금수저 세력과 일진 세력 간 주도권 싸움으로 교실은 그야말로 정글을 방불케 했다. 이쪽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영철이는 두 세력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철이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밴드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교내 최고의 '핵인싸'인 학생회장을 알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친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아무도 영철이를 건드리지 못했다.


강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강자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도 바로 이러한 생존 본능 때문이다.

이는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약소국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다.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삼국중 약체인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결정적 요인은 당(唐)과의 동맹이었다. 소국 베네치아가 지중해 세계에서 천 년 이상 막강한 세력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동로마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잘 유지한 덕분이었다. 약소국의 비애를 처절하게 경험했던 핀란드와 한국의 동맹 전략 또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든든한 동맹관계라도 영원히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국으로 돌변하거나, 믿었던 강대국이 어느 순간 몰락하는 경우는 역사에서 드문 사례가 아니다. 지나치게 동맹에만 의존하거나 새롭게 떠오르는 패권국을 미처 알아보지 못해 약소국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전략이 영세중립국이다. 변화무쌍한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의 부침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어느 누구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세중립국은 국제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그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안전이 보장된 전략일 수는 없다.


고부갈등이 일어나면  남자(아들이자 남편)는 생존을 고민하게 된다. 양쪽 모두를 설득하려고 하다가는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든다. 은밀하게 개별 동맹을 맺을 수도 있지만,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중립을 지키는 것인데, 남자의 중립이 철저할수록  여자의 갈등원망은 더 심해질 것이다.


중립 전략 또한 동맹 전략과 마찬가지로 약자에게 영원한 안전판이 되어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강자들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강자들 중 어느 하나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중립 상태는 순식간에 깨져 버린다.


세 번째 전략은 약자들끼리 연대를 하는 것이다.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각종 조합이나 단체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종류의 연대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약자들이 강자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려면 00운동이나 00혁명이라 불릴 만큼의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세상이 뒤집어지고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약자들의 연대가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약자 스스로 자신이 가진 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오랜 세월 약자의 삶에 익숙해버린 나머지 자신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익을 망각한 체 살아간다. 때로는 알고도 강자들의 힘에 눌려 쉽게 포기해 버린다. 그러는 사이 강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약자들의 권익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강자들의 교묘한 개입으로 약자들 스스로 분열하기 때문이다. 강자들개입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과 회유로 시작된다. 대물림의 울분살짝 달래주며 비스킷 한 조각으로 결핍과 욕망을 채워주는 시늉을 한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공포와 불이익을 주거나 심지어는 폭력으로 약자들의 결집을 강제로 차단시킨다. 이 와중에도 끝끝내 중립을 고수하는 약자들도 있다. 강자들은 이들을 포섭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강자혐오'를 심어준다. 내편으로 만들지 못할 봐에야 상대편에 서지 못하게 하려는 꼼수이다.


둘로 쪼개진 약자들은 이제 더 이상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가능성이 희박한 연대보다는 생존에 유리한 강자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강자들은 두 패로 나눠진 약자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약자는 선(善)으로,  그 반대편은 악(惡)으로 규정한다. 프레임에 갇힌 두 약자 진영은 본격적으로 강자들의 대리전에 휘말린다. 강자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약자들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그럴싸한 대의명분에 무시무시한 용기를 발휘한다. 그리고는 서로를 향해 욕을 하고 돌을 던진다.


수많은 소문과 가짜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생산되면서 약자들은 상대를 향해 더 많은 분노를 쌓아간다. 약자들 간의 싸움이 느슨해진다 싶으면 강자들은 수위를 높여 감정을 자극하고 증오를 부추긴다. 언론과 지식인은 당연히 강자들의 편이다. 강자들 내부의 고급(?) 정보를 얻는 대가로 약자들을 분열시키는 책동에 기꺼이 앞장선다. 은혜를 입은 강자가 언젠가 자신을 위해 출입문을 살짝 열어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늘 다수의 약자와 소수의 강자가 공존한다. 수십 년 전과 비교해 기적이라 불릴 만큼 형편이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상대적 박탈과 소외, 합리와 불공정에 대한 분노,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약자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약자 스스로 강자가 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기회는 극히 소수의 약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설사 천신만고 끝에 강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세상에는 약자들의 수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는 만큼 그 몇 배의 약자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다.


성공 확률은 낮지만 약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결국 연대뿐이다. 다만,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약자들 스스로 고민하며 찾아야 한다. 약자는 힘이 없어서 약자가 아니다. 연대를 하지 못해서 약자인 것이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약자들은 두 강자 중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지 않을까 늘 불안해한다. 내분익숙해져 있는 약자들은 이제 곧 분열의 축제가 벌어지면 또다시 두 패로 나누어 진흙탕 싸움을 벌일 것이다. 지금 약자들 각자가 맺고 있는 동맹이 과연 약자 자신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강자들의 탐욕을 채우는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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