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간에서 글(에세이)을 쓴 지 1년 반이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글쓰기를 통해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 평생 소비만 하던 글을 직접 생산까지 하게 되면서 사고의 영역이 크게 확장된 느낌이다. 비록 서툴고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내 나름의 성찰과 사색을 담아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다. 나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힘든 과정이지만, 그 글을 통해 다시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바로 이러한 유기적 순환의 자극과 매력 때문에 글쓰기에 빠져드는 모양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한동안은 마음속에서 늘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어떤 한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새로운 글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글감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침없이 글로 분출되었다.
하지만, 글쓰기 입문 약발은 딱 일 년까지였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글쓰기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많던 글감들은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주던 영감(靈感)의 발길도 뜸해졌다. 글 발행 횟수가 줄어들면서 글과 글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마치 내게 주어진 글쓰기 유통기한이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씩 겪는다는 글쓰기 슬럼프가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문제는 원인의 종류이다. 어떤 원인이냐에 따라서 일시적 슬럼프일 수도 있고, 장기화될 수도 있다. 일시적이기를 바라며 원인이 될만한 사건들을 떠올려 보았다.
돌이켜보면, 주중 독거인 생활을 청산한 시점과 글발이 꺾이기 시작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 주중에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퇴근 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산책이 수영으로 바뀐 것도 사색의 시간이 부족해진 원인일 것이다.
엄격한 자기 검열 또한 글쓰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문장력은 아직 입문과정인데, 기대치만 한껏 높아져 있다. 실망과 비판이 커지면 글이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가 잘 써야겠다는 욕심, 잘 보이고 싶은 허영심, 그리고 지나친 현실자각 등이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 시간을 늘리고 눈높이를 낮춘다면, 초창기 때의 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뭔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솟구치고, 영감님이 다시 찾아와 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일시적 슬럼프가 아니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산삼을 찾으러 온 산을 뒤지고 다니는 심마니일지도 모른다. 산삼을 발견할 확률은 시간량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행운이나 산신령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인삼밭은 다르다. 투입하는 노동과 시간에 따라 수확량과 품질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는 산삼을 발견할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심마니가 아니라 인삼밭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질의 인삼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재배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은 목표가 될 수 없다. 글쓰기 동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명확하고 구체적일수록 글쓰기 몰입도를 높여 줄 것이다.
먼저, 오래도록 꾸준하게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신체건강은 물론이고 글을 쓸 정도의 정신상태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와 사색, 소통과 여행 또한 글을 쓰는데 유용한 에너지를 공급해 줄 것이다. 서재에서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노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년이 아니라, 죽음에 관해 사색하는 노년 말이다.
두 번째 목표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될 수는 없어도 좋은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만한 글이다. 나만의 재미가 아니라 대중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 목표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나름 굴곡과 사연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통찰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써 보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에겐 공감으로, 후배들에겐 현실 조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집필은 퇴직 후로 잡고 있다. 그때까지는 이야기의 틀을 구상하며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초안을 만들어 두려고 한다. 내 평생의 역작이 될 것이란 부푼 꿈을 키워가면서.
이러한 목표와 계획이 슬럼프에 빠진 나를 구출해 줄까?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언젠가 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집필할 시점에 가서야 벗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