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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Jan 27. 2024

백화점 주차장에서 이혼선언

이럴 일인가?

차 안에서 아이와 조금 투닥거림이 있었다. 아이는 속상함을 말할 수 없었는지 숨을 쉴 수 없다며 이상하게 가쁜 숨을 쉬었고 나는 과호흡이 올 수 있으니 (비닐봉지, 종이봉투 등이 없어서) 손안에 바람을 불어넣는 식으로 호흡을 조절해 보라 했다. 속상한 걸 속상하다고 말하면 되지 그걸 왜 못 하냐고도 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계속 발을 쿵쿵대며 불편함을 토로한 아이를 챙기려니 짜증이 나서 평소와 다르게 내 쪽 문은 쿵 닫고 스스로 제 옆의 문을 열고 나오도록 했다.



남편이 저녁부터 먹자했기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식당가 안내표지판을 찾고 저기로 가면 되겠다며 아이를 챙겨 같이 가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서 남편을 찾는데 한참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됐을 테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서로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하루 한 두 번 카톡하고 답이 없어도 바쁜가, 자는가 그러고 넘어가는 편이다. 배려를 많이 해서 일수도 있다.



몇 분 여가 지나고 남편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남편은 주차한 곳에서 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갔던 것 같다. 안내판에 영화관 방향이라 적혀있어서 내가 가지 않았던 곳으로 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던 것이다.

만나자마자 남편이 화를 냈다.


"한참 찾았잖아. 왜 뚱해가지고 혼자 가는데? 너는 맨날 그런다."


얼굴 보자마자 이 무슨 날벼락.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기분에 불을 지피다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니가 말도 안 하고 그냥 갔잖아. 대만에서도 그렇고. 와. 씨. 니는 니 밖에 모르나?"


싸움이 커질 것 같아서 할 말을 잠시 참고 등을 돌리지만 나도 여전히 억울하다. 자기가 먼저 화를 내고선 내 탓만 하다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못 참은 말이 튀어나왔다.


"자기가 먼저 화를 냈으면서 무슨."
"와. 맨날 그러는데 나도 못 산다. 치워라. 갈라서자."
하더니 남편이 뒤돌아 나가버렸다.


응? 이게 이혼사유라고? 해도 해도 너무 갔다.
말싸움을 하는 동안 계속 눈에 보이지 않던 아이는 등 뒤에 숨어있었던 것 같다.
"엄마, 어떡해?"
"저녁 먹으러 가자."




대만에서 아이는 지하철에서 숙소 가는 길을 다 외웠다 했고 남편은 그럼 아이더러 앞장서라고 해서 따라가고 있었다. 숙소 골목으로 꺽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발이 아팠다. 남편은 아이를 무작정 따라갔고 나는 그대로 꺾어 숙소로 돌아왔다. 폰이 꺼진 상태라 바로 연락할 수가 없어서 급히 충전기를 꽂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폰이 꺼져서 연락 못했어. 먼저 숙소 왔으니까 여기로 와요.' 잠시뒤에 안 보여서 한참 찾았다며 타국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놀라서 주위를 돌아다녔다며 남편의 걱정 어린 타박이 돌아왔다.


내가 뚱해 있었나?


집에서 나오기 전 남편은 아이 간식거리로 하리보 젤리나 몇 봉지 챙기라고 했다. 분명 아이 없을 때 택배가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건만, 젤리를 다 먹어 없다고 알고 있는 아이 앞에서 말을 꺼내다니. 넘어갈 수 있었지만 평소 너무 참고 표현을 안 한 터라 그냥 넘어가면 이런 말로 내 기분이 상하는 것도 모를 것 같아 말했다. 조금 쎄게.
"아니, 아까 애 없을 때 와서 다행이라고 한 거 들어놓고 왜 말하는데."
"어차피 줄 거잖아."
"내가 애 잘할 때 보상으로 하나씩 줄 건데 왜 먼저 말을 꺼내냐고."
그러고 그냥 나왔다. 애는 아빠가 젤리 말했는데 왜 안 챙기냐고 계속 물었다. 이미 몰래 챙겼다. 나중에 깜짝 꺼내 놀래켜주려고. 말하기 싫어서 입 다물고 있었더니 아이는 기분이 상해서 차에서 조금 난리가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에게는 감정을 빼고 묻고 말했다. 폰으로 연재글을 쓰고 있느라 마음이 바빴다. 그래도 남편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검색하고 대답도 했다.




'에잇. 카드 챙겨 올걸. 빈 손이네. 애랑 지하철 타는 거 폰으로 되겠지? 차 태워주고 버리고 가고. 유세야 뭐야.'
마음이 어지러운 탓에 9층 식당가로 왔더니 간단히 먹을 음식들이 없다. 지하푸드코트로 가야 한다. 아이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며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억울한 마음을 한가득 담아.


-내가 뭘 뚱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당신한테 나쁘게 한 거 없잖아. 애한테 훈육하느라 큰소리 낼 수 있는 거고. 여기로 가면 되겠네 말했는데 당신이 못 들었나 보지. 안 보이면 연락하면 되고. 그게 기분 나쁠 일이에요?

-바로 앞에 있었는데 못 듣고 가고 있으면 큰소리로 오라던지 얼마나 찾았는데. 애 훈육이고 뭐고 도착했으면 같이 움직이던지 혼자 가버리면 난 어쩌라고.


엥. 차에서 했던 행동이 뚱해있었다는 말이 아닌데?


-가는 걸 못 봤으니 그렇지


이건 명백한 남편의 판정 패. 앞선 일들의 앙금이 남아 남편 마음 한 켠에 켜켜이 쌓여 있던 모양이다.


-어딘데
-지하1층. OO이 핫도그 먹는데.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랬더니 저 어디쯤 봤다며 군데군데 돌아 데려간 곳이라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죄다 나열하며 위치를 설명하고 아이에게 아빠가 오는지 주변을 잘 보랬더니 잠시 뒤 남편이 보였다.

"아빠다. 엄마, 아빠한테 먼저 사과해야 해. 알았지?"
아이가 신신당부를 하더니 남편에게 뛰어갔다. 남편에게도 똑같이 말하는 것 같다.
에잇. 애가 부탁하는데 해야지.

"내가 미안해요"

머쓱해하며 머뭇거리던 남편도 말했다.

"나도 미안해"

우리 앞으로 큰 주차장엔 오지 말자.
아니, 전화 좀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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