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어야겠다. 말라버렸다. 읽지 않고 말하고 않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더 포슬한 가슴을 위해 읽어야겠다. 누군가 추천한 시집이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싶었구나. 내게 전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시인들이 이름을 내비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저마다 모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 잡지만 주르륵 넘어간 페이지에 금방 손에서 멀어진다. 조금씩 스미는 한기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쪼그려 앉은 다리에는 점점 쥐가 내리는데 무수한 시집 앞에서 한 권도 집어 들지 못하고 자꾸만 방황한다.
시는 시인의 감성으로 그려낸 그림이라 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작가가 느꼈던 시상과 감정을 보이는 것일 뿐, 굳이 모두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마음에 맞는 구절 하나 있어도, 시인의 감성을 잠깐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의 시에 기대어 갈피 모르는 내 마음을 찾고 싶었다. 나를 꼭 담은 그 한 구절을 어디선가 발견하기를.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중에서
서글픔이 맺혔다. 흩날리던 마음이 내려앉았다. 울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가라앉고 있었다.
늘 주변에 희망을 말하고 생기를 비췄지만 실상 나는 내려앉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지만 웃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또 같이 있고 싶었다. 조용히 숨 죽이며 또 신나게 재잘대고 싶었다. 홀로 움츠려들지만 또 모두의 앞에서 내뱉고 싶었다.
가을비가 소란스레 마음을 두드렸다.
건조하지 마. 외면하지 마. 네 마음이잖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