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슷 May 18. 2024

[쓰밤발오53] 평화로워서 비상

비상이다. 오늘은 마음이 평화롭다. 평화로운 게 왜 비상이냐고? 글을 쓰려고 앉으니 아무 생각이 안 들고 멍하다. 우울하고 불안할 때는 그 감정에 나오고 싶어서 글에 막 쏟아내기도 하고, 다짐도 새롭게 하게 되는데 지금의 걱정은 뭘 써야 하지? 이런 마음뿐이다.


제일 큰 걱정인 무릎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예전처럼 걷는다. 6월부터는 수영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다음 주 중에 오리발이랑 스타트 다이빙에 대해서 물어보고, 수영장과 상의해서 시작할 예정이다. 길었던 두 달간의 수영 부재라는 우울감도 오늘로 날려버렸다.


요즘 날씨가 완벽하다. 밖에 나가서 걸으면 내 머리 옆에 음표가 하나 떠다니는 기분이다. 반려 음표가 생기는 날씨. 4계절 내내 이 날씨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해도 질리지 않는 날씨. 내가 담을 수 있는 색을 전부 눈에 담는다. 하늘을 파란색이고 나무는 초록색이다. 두 개의 색 다 푸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잖아? 하며 대단한 걸 발견한 사람처럼 설레기도 한다. 추석 때는 명절 말고 그냥 쉬는 날을 달라고요 제발!! 외치게 되는데, 요즘이야 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노래를 하게 된다.


생레몬하이볼이 있는 편의점도 찾았다. 유명해서 먹으려고 찾아보니 전부 품절이었는데 드디어 발견했다. 맛도 있고 8도로 도수도 있어 만족도 최상이다. 둥둥 떠있는 레몬도 귀여워 보였다. 4,500원에 이 정도 양이면 이자카야에서 파는 10,000원 넘는 레몬 하이볼로는 두 잔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가성비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서 꼬치만 잘 구울 수 있으면 집에서도 이자카야를 즐길 수 있겠다.


쓸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것도 나열하다 보니 이렇게 써지는구나. 어쨌든 평화롭다. 인생은 여전하지만 내 마음은 어제보다 산뜻하다. 당장 내일은 다를지 모른다. 다시 겁먹고, 고민하고 이불속에 숨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제 아주 질릴 때까지 겁먹고 고민하기로 했으니 이 또한 걱정되지 않는다. 그저 평화로운 오늘을 즐기련다. 심지어 평화로워서 쓸 말이 없으니 앞으로 삶의 난관을 유쾌하게 넘길 방법도 방금 배웠다. 이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글 쓸 때 소재에 걱정 없겠다는 생각부터 할 거라는 거다. 불행 중 다행인 거지. 썰로 풀면 된다. 웃기게 풀고 싶으니 평소에 유머 감각을 갈고닦아 놓자.

작가의 이전글 [쓰밤발오52] 많이 겁먹고 많이 고민하자 질리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