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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May 23. 2023

방과 후 티 타임 #11

만만한 게 녹차. 중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에 물을 한 방울도 주지 않고 자연적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그렇게 키운 포도는 수분과 양분을 얻기 위해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많은 미네랄성분을 함유해서 좋은 맛을 갖게 된다네요. 포도가 가장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해서 만든 포도주는 오크통에 담겨 한동안 서늘한 저장창고에서 숙성시켰다가 다시 병에 담아 수십 년을 숙성시킵니다. 그렇게 잘 숙성된 포도주를 역시나 수년동안 동굴에서 숙성시킨 치즈와 함께 먹으면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직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맛입니다. 잘 숙성된 묵은지에 삭힌 홍어회를 곁들여 막걸리 한잔과 함께 먹어도 비슷하게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발효와 숙성은 맛을 증폭시킵니다. 그런 차도 있습니다. 보이차와 백차 라면 10년 이상 숙성시켜 마시기도 합니다. 좋은 기회를 얻어 30년 넘게 숙성된 보이차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상쾌하지만 거친 야생찻잎의 풍미는 시간에 물들어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존재감을 뽐냅니다. 몸이 따듯해지고 코와 혀끝이 좋은 포도주를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행복감에 젖어들지요. 시간의 맛. 금과도 바꾸지 않을 시간을 고스란히 녹여낸 값비싼 맛입니다.

침이 고이고 현기증이 납니다. 요새 한 달에 한 병 마시기를 실천중이라서요... 그전에는 하루 한 병... 그리운 술을 그려봅니다.


그러나 녹차라면 귀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만만하게 여길만한 여지가 있겠습니다. 굳이 포도주로 비교한다면 보졸레누보(프랑스 부르고뉴의 보졸레(Beaujolais) 지방에서 가메이(Gamey) 품종으로 생산된 누보 와인. 누보 와인은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가장 처음 생산해서 마시는 햇 와인을 의미한다._나무위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가볍다거나 귀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저는 녹차가 굴이나 전복 같은 제철 해산물이나 자연산 활어 같다고 생각합니다.)


채집해서 찌거나 덖은(철판 따위에서 볶듯이 찻잎에 열을 가하는 것) 후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게끔 조심스레 손으로 비벼낸 녹차를 건조한 후에는 바로 마실 수 있습니다. 녹차가 만들어지면 최대한 빠르게 마셔야 합니다. 녹차는 숙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녹차의 싱그러움이 시간에 시달리기 전에 마셔야 합니다. 녹차밭은 시간을 들여 들지만 녹차는 시간과 싸우며 만들고 마시는 차입니다. 비슷한 예로는 죽순과 송이버섯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몇 시간 만에 먹을 수 없을 만큼 자라나거나 피어버려서 상품성을 잃을 수도 있고, 최대한 빨리 식탁에 올라야 맛과 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찻잎은 가장 위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채집해서 만듭니다. 녹차가 아닌 다른 차들도 최상품은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순입니다. 물론 다 자란 찻잎으로 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가시 돋친 두릅보다는 아직 가시가 솜털만 한 어린 두릅이 달큼하고 기분 좋은 쌉쌀함을 갖고 있듯이 어린 찻잎이 최상품 차가 됩니다. 

겨울이 가고 대지가 옅은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녹차밭은 바빠집니다. 처음 수확한 어린잎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것들이 푸르게 변한 여름에도 녹차를 수확합니다. 봄차와 같은 달콤함과 풋풋함은 덜하지만 그 나름의 개운한 풍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티백녹차나 엽차가 5월 이후에 채집되는 녹차로 만들어집니다. (아직 녹차밭은 바쁘겠군요.)

녹차의 채엽(채집)시기 _ 출처/대한다업


저희 집에서는 티백으로 된 작설차를 주로 마십니다. 제법 고급에 속하는 녹차지만 잎차를 만들고 난 자투리로 만들어서인지 티백작설차는 생각보다 저렴합니다. 다양한 제품이 있겠지만 인터넷쇼핑몰 기준으로 100개들이 작설차티백을 10000원 미만으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개당 100원입니다. 굉장하지 않나요?) 물론 제대로 된 다기에 우려 마시는 잎차와는 다소 맛의 차이가 있지만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애용합니다.


맛이 어떻게 다르냐고요?


아 차차차...

오늘도 글이 꽤 길어졌으니 내일 이어서 녹차를 우리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창하게 다도니 공부차니 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따라오세요. 생각보다 만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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