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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kyMilky Jul 07. 2023

<지구 최후의 밤, 2018>

편린들의 기억 속에서 점멸하는 꿈으로, 그리고 영원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기억이라는 과거의 편린들을 영원히 좇으며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구 최후의 밤>은 뤄홍우가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인 카이리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줄곧 술을 자주 마셨다던 시계를 매개로, 그는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듯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가기 시작한다. 과거에 거짓말을 자주 했던 백묘라는 친구의 죽음, 얼굴 부분만 담뱃재로 태워진 어느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완치원'이라는 기억 속 어딘가의 꿈같은 존재. 뤄홍우는 닿을 듯 닿지 않는 기억 속의 편린 속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되짚어간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혹은 어디까지 거짓인 걸까?


 <지구 최후의 밤>의 1부는 과거와 현재의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교차 숏들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들은 마치 '뤄홍우'의 시점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는 듯한 경험을 겪게 되는데, 영화가 뚜렷하게 과거와 현실의 숏들을 구분 지어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과거 숏들의 순서가 무작위적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서는 뤄홍우가 완치원을 처음 만났던 순간, 어느 순간에서는 뤄홍우와 완치원이 갱단의 보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공모하고 있는 순간, 어느 순간에서는 뤄홍우가 극장에서 갱단의 보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순간이 뚜렷한 시간의 인과관계없이 보인다. 마치 사람의 기억처럼 관객들은 혼란을 느낀다.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는 혼재되어 있고, 서사는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뚜렷하지 않으며, 오로지 여러 개의 긴 숏들로 나열되어 있는 순간들 속에서 관객들은 뤄홍우가 겪었던 '그때의 그 순간'의 편린들을 보게 된다.


 영화는 애초에 뚜렷한 서사를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과거로 표상되는 숏들마저 '뤄홍우'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 떠올린 기억들이 아닌 타인의 말을 빌려 더듬어 떠올린 기억들이다. 완치원의 과거 범죄 파트너, 완치원의 전남편, 백묘의 가족이었던 이발소 아주머니등, 뤄홍우의 기억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이야기해 준 기억들의 조각들로 인해 재구성된다. 이 뜻은,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과거의 숏들이 사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극 중에서 나온 대사를 빌리자면 뤄홍우는 '과거 속에서' 사는 인물이다. 그래서 뤄홍우는 1부에서 완치원을 찾지 못한다. 기억과 꿈으로 표상되는 '완치원'이라는 존재는 마치 유령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멀어진다.


 '완치원'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애초에 완치원이라는 이름 자체도 어느 가수의 이름을 따와지은 것이다. 뤄홍우에게 임신을 했다가 낙태를 했다고 밝힌 그녀는, 후에 전남편에게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고 밝히긴 하나 어디선가 아이를 데려왔다는 증언이 나온다. 또한 전국 각지에 남자가 있다는 소문마저 떠돈다. 그녀는 마치 뤄홍우의 기억의 표상과도 같아 보인다. 진실과 거짓들은 혼재되어 있고, 잡으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존재이다. 뤄홍우는 '완치원'이라는 존재 안에서 현재가 투영된 기억들과 타 인물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통해 기억들을 재조합하지만 그것은 온전하지 않다. 일례로 뤄홍우와 완치원이 함께 봤던 영화의 음악은 현재의 뤄홍우의 벨소리로 나타나는 것이, 녹색 자몽 시계등의 사물들이 반복해서 현재에서도 재현된다는 점, 드문드문 나타나는 뤄홍우의 플래시백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기억은 혼란스럽고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기억을 좇는다는 염원은 영원히 닿지 못하는 것일까. <지구 최후의 밤>은 애초에 관객들에게 '신뢰'를 주려는 의도가 없다. 1부의 중간에서 "영화는 전부 가짜이지만, 기억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다"라는 대사가 보여주듯 그 모호함의 경계에서 '사람의 기억'이라는 한계성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 속의 염원은 영원히 닿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끝나야 하는 걸까.


그 순간, 뤄홍우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 3D안경을 쓰고 잠에 빠진다. 꿈을 꾸는 것처럼 영화는 급격히 단절되고 타이틀 카드가 등장하며 2부로 넘어간다.

 

 1부가 비연속적인 여러 숏들의 나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2부는 뤄홍우의 뒷모습을 비추고, 카이리라는 고장의 골목들을 누비는듯한 긴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광차를 통해 동굴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점을 보더라도, 2부는 '비현실'의 세계를 길고 긴 롱테이크를 통해 누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2부에서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은 마치 1부의 재구성처럼 느껴진다. 빨간색 머리로 염색한 마치 완치원을 꼭 닮은듯한 '카이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1부에서 이발소 주인이 하던 리듬게임의 음악이 2부에서 공연곡으로, 1부에서 완치원과 뤄홍우가 나누던 아이의 존재는 2부의 시작에서 소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꼬마아이로 표상되어 나타난다. 그렇다. 1부가 기억들의 편린들의 재구성을 나타냈다면, 2부는 그 기억들을 토대로 한 어느 비현실적인 세계이다. 마치 기억과 꿈의 관계처럼, 1부에서 드문드문 나타났던 단서들은 2부에서 강렬한 무의식처럼 꿈의 세계를 구성하고 재현한다.


 하지만 '비현실'속의 세계에서 뤄홍우의 염원들은 투영된다. 백묘에게 '솔개'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염원은 꼬마아이가 준 하늘을 날 수 있는 솔개가 그려진 '탁구라켓'으로 나타난다. 꼬마아이와 탁구를 치는 장면은 1부에서 완치원과 뤄홍우가 아이에 대해 탁구를 가르쳐주고 싶다는 얘기에서 투영된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뤄홍우와 완치원을 꼭 닮은 카이전이 키스를 하며 집이 회전하는 것도, 1부에서 초록색 소설 안의 주문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애초에 움직일 수 없는 동선을 토대로 카이전의 거리를 누비는 카메라를 통해, 탁구 라켓을 쥐고 하늘을 나는 등의 실현될 수 없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은 가짜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2부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게 닿을 수 없는 염원이라는 것을 상기시킬 것이라면 2부의 염원들이 실현되는 장면들은 왜 필요한 것인가?


 다시 한번 1부와 2부의 구성을 생각해 보자. 1부는 비연속적인 현실과 과거를 교차하는 여러 개의 숏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2부는 연속된 롱테이크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누비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분명 연속적이고 무작위적으로 보이는듯한 배치를 통해 사람의 기억의 단절, 또 다른 재현, 그리고 진실과 거짓사이의 불분명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연속된 순간들 속에서 마치 카메라의 롱테이크처럼 단절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비록 '롱테이크'라는 그 재현이 되려 관객들에겐 이질적으로 느껴질지라도, 그리고 1부의 여러 개의 숏들의 단절들이 익숙하게 느껴질지라도, <지구 최후의 밤>은 순간을 영원으로 담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영화의 끝에서 카이전(완치완)과 뤄홍우가 태웠던 폭죽이 채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는 것처럼, <지구 최후의 밤>은 영원의 염원을 카메라 속에 담는다. 물론 영화는 현실 속에서 뤄홍우가 완치원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보이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것이 잔인한 현실일지라도, 카메라는 오직 염원을 담기를 소망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꿈을 꾸어야 하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염원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기억 속의 편린들이 진실과 거짓을 마구 뒤섞은 채 헛된 소망으로 달려가게 해도, 불완전함에 기댄 채 마치 시체를 끌어야만 하는 광차를 모는 운명을 가진 듯해 보여도, 우리는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 최후의 밤>의 마지막 장면은 폭죽이 타오르는 장면을 온전히 비추며 끝난다. 뤄홍우와 카이전이 사랑을 나누며 소망이 실현되는 회전하는 집을 전체적으로 비춘 뒤 그 둘을 위해 카메라는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물론 '기억'이라는 운명에 갇혀 영원을 좇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뤄홍우가 정말 완치원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염원들에 조금이나마 손을 뻗을 수 있도록, <지구 최후의 밤>은 마치 마법 같은 순간들을 카메라에 포착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그 폭죽은, 영화라는 꿈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을 당신과 우리가 사랑하기에 영화라는 매체는 영속성을 얻을 수 있다.


Ra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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