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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진 Feb 19. 2023

나 =/= 내 작업

제대로 기록하길 시작한 지 이제 6년 차.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글자들을 적어 댔는지 세보다가 새삼 내가 24살이라는 사실이 적응되지 않는다.

벌써 2월의 반이 갔는데.


이제서야 패턴이 보인다. 내가 나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알 것 같고, 나날이 좋아지는 회복탄력성이 보인다.

기록에 대해서 기록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술이 스트레스를 밖으로 내쫓아 해소하는 방식이라면, 글쓰기는 스트레스를 안으로 삼켜서 함몰시키는 방식이었다." 오수영 작가의 <아무 날의 비행 일지>에 적힌 문장이다.


술을 마시면 안 됐던 나이부터 술이 허용되는 나이가 돼서도 그걸 즐길 줄 몰라 나는 계속해서 나를 함몰시켜 갔다. 어느 정도 안으로 삼키는 일에 익숙해진 최근에 들어서야 스트레스를 밖으로 내쫓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언어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한계를 넘어선 사건과 감정들이 발생하면 술을 사서 주머니에 넣으면 된다. 슈퍼에서 우리 집까지의 3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내가 그럭저럭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스트레스가 다 해소돼 버리니까. 그렇게 또 나를 알아간다. 이 사실을 일기를 뒤적거리다 깨달았고 나는 생각보다 다루기 쉬운 인간이다.


몇 주 전, 그 슈퍼를 지나가다가 처음으로 평일에 문 닫은 슈퍼를 봤다.

문짝에 흰색 종이에 검은색으로 한자가 쓰여있었다. 한참을 서서 봤다.

'喪中' 잃어버릴 상, 가운데 중.

사모님은 하나뿐인 가족을 잃으셨고 나는 소중한 슈퍼를 잃었고. 조금 더 오래 볼 걸 그랬다.

갑자기 다정했던 사람들이 생각나 딴 길로 새 버렸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적으려고 했냐면. 살 용기가 생긴달까? 

아니야 그건 너무 거창하고 지킬 수 없는 말일지도 몰라.


그냥, 그냥, 나를 알겠으니까 세상이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작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새로 산 연필로 그은 선들이 마음에 들고 그림을 망쳐도 혼자 웃고 넘길 수 있어지는 그런 거. 분명 1월 19일에는, 그리고 작년 12월 19일에는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괴로웠고 연필이 너무 무거웟는데. 내 작업이 실패한 작업이 될까 봐 매일매일이 불안했는데. 꼴도 보기 싫던 책을 하나하나 포장해놓으니까 사랑스럽게 보이고. 계속되는 거절 메일에 예의 상 눈물 좀 흘려주기만 하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이 썩 나쁘지 않다. 내 책이 거절당한다는 게 내가 거절당하는 게 아니라는 거. 나는 내 작업이 아니라는 거.

아직까지 나와 내 작업을 어떻게 분리시켜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것도 꾸준히 기록이 쌓이면 알게 되겠지. 나는 내 그림이 아니고 나는 내 책이 아니다. 나는 나고 내 작업은 내 작업.




블로그에 올리려고 적었는데 막상 적은 긴 글들은 블로그에 올리기 꺼려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긴 생각을 보여주는 건 아직까지 어렵다. 이렇게 내 글이 낯을 가릴 때마다 브런치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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