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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ehLee Mar 01. 2023

노동 일기

형벌

오늘도 의정부 현장에서 일했다. 아직도 치워야 할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많다. 큰 덩어리들은 손으로 들어 내리고 작은 것들은 마대에 담아 내렸다. 오늘은 모두 10명이 투입되었다. 옥상에서 입구까지 나르는 조, 계단참에서 나르는 조,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덩어리들을 암롤에 싣는 조로 나뉘었다. 


오전 잠깐 계단참에서 일을 한 후 옥상으로 배치되었다. 커다란 덩어리들을 들어 입구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그전에 손으로 들어 나르는 것과 마대에 담을 것을 구분해야 했다. 커다란 덩어리들을 한 곳에 쌓아 놓으면, 다른 작업자가 입구로 옮겼다. 나는 큰 덩어리들을 골라 한쪽에 쌓는 일을 했다. 바닥에서 적당한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골라 두 손으로 안아 들고 무더기 쪽으로 옮겨야 했다.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를 찾아내고, 허리를 굽혀 안아 들고, 발걸음을 옮겨 던져 놓고, 다시 뒤돌아 다른 것을 찾는 일을 반복했다. 바람이 심한 날이었다. 옥상이라서 바람은 더욱 세찼다. 바람이 불면 바닥에 두껍께 깔린 시멘트 가루가 휘날렸다. 그것은 내 코와 입으로 또 눈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눈알이 뻑뻑했다. 그러나 피할 곳은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깊이 숙여 피할 뿐이었다.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를 들어 안아야 했다.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팠다. 허기가 졌다. 아프다고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아프면 집에서 쉬지 왜 나왔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아픈 것은 개인 사정이다. 인력을 부른 쪽에서는 사람 수만큼의 일을 해내야만 한다. 고장 나지 않은 기계처럼 일을 해내야만 한다. 배가 고프다고 뭔가를 먹기 위해 자리를 뜰 수도 없다. '노가다'는 시간이다. 작업자를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돈이 그만큼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좋을 리가 없다. 배가 고파도 정해진 식사 시간까지는 버텨야 한다. 



오후에도 같은 작업이 이어졌다. 이것은 나에게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이 힘든 노동은 과거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콘크리트 덩어리를 찾고, 힘겹게 들어 옮기면서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자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탐욕스럽지 않았다.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소소한 잘못과 소소한 부정은 있었지만 오늘과 같은 형벌을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도망갈 곳 없는 고층의 옥상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돌을 옮기고 있다. 이것은 내가 부정해도 형벌이 틀림없다. 


나는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이런 형벌을 받을 충분한 잘못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돈을 무시한 죄'이다. 나는 돈을 무시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돈 버는 공부는 아니었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았다. 돈은 내게 심한 배신감을 가졌고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돈이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내게 단단히 화가 났고,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나는 버려졌다. 이제야 나의 잘못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아득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가 영영 돌아서버린다면, 나는 비참한 노후를, 이미 와버린 노후를 이렇게 보내야만 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돈의 분노가 두렵지 않았다. 내게는 또 다른 선택의 연인들이 있었다. 꿈, 열정, 문학, 낭만, 젊음, 의리 등등이었다. 그것들은 부드럽고 달콤했고 황홀했다. 돈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될 그런 존재였다. 때로는 돈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런 내게 돈이 내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돈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번번이 무시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돈은 선언해 버렸다. 


내게는 아직도 많은 형벌이 남아 있다. 형기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어쩌면 기한이 없을지도 모른다. 끝나는 그날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고, 그 정도는 더 가혹해질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돈에게, 그리고 나에게 묻고 있다. 아직 내게 기회가 남아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간절히 애원하고 있다.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먼지만큼의 기회만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그것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눈을 꼭 감고 평생을 산다 해도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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