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게도 1년 반 동안 미뤄왔던 브런치 첫 글을 오늘 쓴다
직장에서 야근을 하고 허무한 날이 있지 않은가.
일을 하고 뿌듯함이 밀려오는 날이 아닌, 허무함이 밀려오는 날. 바로 오늘이다.
일을 쉴 틈 없이 한 것 같지만, 막상 완성된 일은 없고 계속 몰려오는 일이 많은 날.
이번 달은 야근 신청도 하지 못한 채 자발적 야근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I love my job을 되뇌는 에밀리처럼
자기 암시를 하며 계속일을 한다. 업무의 방향성을 잃은 채 말이다.
좋은 날 오겠지. 오겠지. 하며 그렇게 또 버티고 버틴다.
그렇게 퇴근길 오피스텔 우편함에는 한 달마다 돌아오는 관리비 내역서 166,000원 수납.
그렇게 월세, 관리비, 도시가스비를 합치면 800,000원이 한 달에 한 번씩 청구된다.
젠장 하필 오늘.
이런 오피스텔에 오게 된 계기는 말이다.
상경했을 때 처음 방을 얻었을 때의 가격은 500,000원짜리 화장실이 옛날 모텔방처럼 유리인 그런 방이었다. 그리고 곰팡이가 있어서 난생처음 천식 전단계를 겪었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다 또 집에 시달린다. 그렇게 800,000원짜리 오피스텔로 옮기게 됐다.
이렇게 허무한 날에는 문득 내가 감춰놓은 것들이 생각난다.
내가 꽁기꽁기 묻어놓은 숨기고 싶은 과거들 말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과거, 사람에게 받은 상처, 앞으로의 미래 등등 말이다.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평소엔 정말 잊고 살다가 이런 날에 생각나는 것은 2개다.
1) 900만 원을 빌려간 채 갚지 않는 전연인
2)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방향성에 대한 고민
생각보다 쉽게 잊힌 1)은 처음엔 배신을 당했는 기분이었지만, 900이라는 돈은 얼마든지 내가 벌 수 있어서 정말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 만난 시간 동안 괴로워했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괴롭다. 가스라이팅, 억압, 강요의 연속이었던 지난 연애기간 그때 더 빨리 헤어지지 못한 게 여전히 괴롭다. 연인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빌리는 돈이라고 포장했던 사람이다. 아무 의심 없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빌려준 나.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여전히 이런 날에는 생각난다.
2)은 내가 이렇게 사는 방향은 맞다. 원하는 지역에 살고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며,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꾸려갈 것인지도 명확하다. 아니 최근에서야 명확해졌다. 정말 하다 보니, 매사에 최선을 다 하다 보니 이제야 그려진다. 만 28세가 돼서야 말이다.
직무적으로 발전을 위해 브런치 승인을 받았지만, 돌이켜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블로그에 썼던 글 자체가 생각을 구체화하고,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수단임을 이제야 알게 됐달까.
이것도 하나하나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가장 허무한 날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위로받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