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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Mar 08. 2023

어느 디스토피아 몽상가의 이야기 - 엑스카피

글리치 NFT의 단군할아버지

XCOPY(엑스카피)는 영국에 기반을 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글리치 NFT아티스트입니다.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대표적인 OG(한 분야의 초기 개척자) 아티스트죠. 하지만 NFT를 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작품 수가 많은데 빛이 번쩍거리는 '글리치(Glitch) 아트'로 매우 유명합니다. (빛에 민감하신 분들은 브런치나 전자책으로 보실 때 주의를 요합니다.) NFT아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XCOPY의 글리치 아트 세계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출발~

글리치의 형태

작품으로 탄생한 오류들

일단 글리치라는 게 좀 낯설 수 있어요. 글리치는 '갑작스러운 고장, 돌발 사고, 결함' 등을 의미하는데요. PC, 게임기, TV 등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오류로 인한 오작동이나 화면의 깨짐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에요. 이 깨짐 현상에 미적 가치를 부여해 예술로 만든 것이죠. 디지털 데이터를 고의로 손상시키거나 전자 기기를 조작해 디지털 오류를 만들어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류로 예술을 하다니. 뭔가 예술적이고 재미있지 않나요? 사실 글리치 아트는 꽤나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백남준의 'TV Magnet(1965)', Jamie Fenton의 'Digital TV Dinner(1978)'이 역사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백남준의 작품은 'TV 자석'이라는 제목처럼 실제 TV에 자석을 갖다 대었을 때 스크린에 나오는 이미지가 일그러지는 모습이에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기에 오히려 신선한 발상과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겠네요. 

파일을 개인 대 개인으로 조각 단위로 나눠서 공유하는 토렌트의 원리를 이용해 오류가 있는 파일을 만들고 그걸 강제로 실행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글리치를 작품화한 'PEER TO PEER'눈여겨볼 만합니다. 글리치 아트는 오류로 만들다 보니 최종 버전의 예측이 어렵고 그만큼 상상의 폭은 넓어집니다. 예술가의 의지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물은 글리치의 무작위에 맡겨야 하는 우연성의 예술이랄까요? 

TV Magnet(백남준)
Digital TV Dinner(Jamie Fenton)
3931 pieces(Balzac Button의 peer to peer 컬렉션/글 마지막 링크 참조)


글리치 NFT의 단군 할아버지

XCOPY는 NFT아트 초기부터 글리치를 활용해 작품활동을 해왔습니다. 해커타오와 마찬가지로 2018년 슈퍼레어라는 NFT마켓플레이스에서 민팅을 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죠. 그의 작품들은 처음에는 저렴하게 판매되었지만 NFT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역사적인 NFT로 인정받았고 말 그대로 '떡상'하게 됩니다. XCOPY 이후로 그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유사한 형태의 글리치 아트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졌죠. 어느 분야나 처음 시작해 새로운 경로를 개척한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네요.

A Coin for the Ferryman

자 이제 XCOPY의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합니다. A Coin for the Ferryman. 얼핏 보면 조잡해 보이죠. 그런데 자세히 봐도 여전히 조잡합니다. 2018년 한 수집가가 139달러에 구입했었는데요. 3년 뒤인 2021년 1,330 ETH(이더리움/ 한화 약 72억 원)에 재판매되면서 큰 이슈가 됩니다. 무려 4만 2천 배에 달하는 상승률이었죠. 일반인이었다면 정말 인생 역전할 만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을 누가 왜 그렇게 비싸게 샀는지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존 예술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피카소의 소묘 자화상

어떤 예술가가 유명해지면 그의 초창기 작품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꽃피우고 태동한 지점으로서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되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의미를 두면 큰돈을 지불해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집니다. 피카소가 유명해지고 나서 그가 초창기에 스케치로 남겨두었던 그림들이 매우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A Coin for the Ferryman 역시 XCOPY의 초창기 글리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식되었고 그 역사에 의미를 둔 어느 수집가가 거금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조잡함조차 시스템의 오류를 이용하는 글리치 아트의 성격상 글리치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효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 제목이 왜 'A Coin for the Ferryman'일까요?

선박군주 카론이 배를 몰아 강을 건너는 장면(Alexander Litovchenko)

'강에서 사람을 나룻배로 나르는 사람을 위한 동전'이라는 뜻의 이 제목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요.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지하 강을 건널 때 선박의 군주인 카론에게 지불하는 대가(동전)를 말합니다. 로마 시대에 새로운 배를 물에 내려놓을 때, 선원들이 죽게 되면 저승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동전을 돛대 아래에 묻어 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이승에서 저승으로, 즉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디스토피아, 죽음, 무관심 등을 소재로 삼는 XCOPY의 작품철학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코인(A Coin)은 흔히 NFT 거래에 사용하는 암호화폐를 일컫기도 한다는 점에서 크립토 아트에서 자주 사용하는 밈(MEME)의 감성을 넣은 제목일 수도 있겠군요. 


왜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Right-click and Save As guy

Right-click and Save As guy는 XCOPY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입니다. 글리치를 배경으로 분홍 선글라스를 낀 후드 차림의 한 사람이 입술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죠. 펑키한 느낌으로 랩을 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이 작품은 무려 700백만 달러(1,600 ETH/한화 약 84억 원)에 팔렸는데요. 누가 샀는지 아시나요? 바로 'COZOMO DE MIDECI'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래퍼 스눕독입니다. 스눕독은 Deekay, Dmitri Cherniak, Clair Silver 등 유명 NFT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둘이 정말 닮아 보이는데요, 스눕독도 이 작품을 보면서 "어, 이거 나랑 닮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스눕독과 Right-click and Save As guy

Right-click and Save As guy라는 제목은 마우스로 우클릭을 해서 '다른 이름(guy)으로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마우스로 우클릭 저장하기만 해도 그만인 디지털 이미지를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느냐는 NFT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풍자한 것입니다. 사실 NFT아트는 단순히 예술 감상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뉴욕 거리 전광판에서 전시되는 NFT들 "우리 NFT가 저기에 걸려 있다고!"

블록체인으로 소유권이 증명되므로 NFT아트의 소유자에게 다양한 권리와 혜택을 줄 수 있으며, 작품-작가-팬(소유자)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유대의 끈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팬 활동을 하기도 하죠. 같은 작품,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관심사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들은 Fewocious처럼 팬들과 함께 페인팅 이벤트를 열거나 파티를 열기도 하죠. 개인적인 미술 감상과 컬렉팅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작가와 팬들 사이의 친밀감이 높아지며 예술과 예술가의 세계를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역동적이고 재미있고 신납니다. 만약 좋아하는 NFT아티스트가 생긴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해 보길 권합니다. 

친구, 수집가들과 페인팅 파티를 연 Victor Langlois(FEWOCiOUS) 작가

한편으로 NFT는 시간과 열정을 쏟아 만들어낸 아트에 대한 보상이 로열티를 통해 창작자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창작자 친화적 시스템입니다. 이전에는 창작물을 한 번 판매하면 끝이었지만 NFT는 재판매가 발생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해당 거래 금액의 일정 비율(로열티)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지급되기 때문입니다. 거래도 아주 편리해져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팬만 확보한다면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XCOPY가 NFT를 적극 옹호하는 지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죠. 이처럼 NFT는 새롭고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예술 도구의 역할을 합니다. XCOPY의 작품 좀 더 살펴볼까요?


HOUSE OF FOMO

House of Fomo

작품 House of Fomo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표현한 것으로 NFT의 가격이 급상승할 때 구매를 하지 못해 소외될 것으로 느끼는 공포입니다. 예컨대 어제 100만 원이었던 작품의 가격이 하루 만에 400만 원, 500만 원이 되면서 당시 사지 못했던 후회와 앞으로 더 오를까 봐 전전긍긍하는 심리가 섞여 일종의 불안 증세가 나타나는 건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을 매수했던 사례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가격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떨쳐내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큰 금액을 베팅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되면 리스크는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겠죠. NFT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NFT시장은 변동성이 매우 커서 하루아침에도 가격이 2배, 3배 상승하거나 반대로 1/2, 1/3 가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험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따라서 더욱 신중하게 구매해야 하는데 급격히 상승하는 NFT의 가격을 눈으로 지켜보면 심리적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FOMO에 의해 묻지 마 매수에 나서게 되는 것이죠. House of Fomo는 이와 같은 NFT시장의 성격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쇼핑백 모양의 디자인으로 마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넣듯 NFT를 가볍게 구매하는 심리를 표현했고, 도박장을 의미하는 'House'라는 제목에서는 XCOPY 식의 냉소적인 유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PANIC STATIONS

Panic Stations

Panic Stations에서는 휴지가 모두 팔려(SOLD OUT) 살 수 없게 된 것처럼 구매하려 했던 NFT가 모두 판매되어 구매할 수 없게 된 당황스러운 상황을 표현합니다. FOMO와 유사하게 NFT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사실 이 작품은 'Paper Hands(종이 손)'라는 투자 용어를 빗댄 작품이기도 합니다. Paper Hands는 NFT구매자가 작은 가격하락이나 상승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NFT를 빠르게 판매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마치 주식의 우량주처럼 NFT의 가치를 믿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급하게 판매하는 경우죠. 작품에 나온 두루마리 휴지(Toilet Paper)의 'Paper'와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손(Hands)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반대로 보유한 NFT를 장기적으로 소유하는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s)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  또 스마트폰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23:58이라는 시간과 한 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배터리를 보면 더욱 긴장감이 생깁니다. 23시 58분은 하루가 끝나기 직전 무언가 빨리 마무리해야 될 것 같은 시간이고 배터리 역시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몰라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시간은 촉박하고, 배터리는 부족하고. 빨리 팔아야 하는데 이러다 못 팔면 어쩌지? 라면서 말이죠.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제목인 'Panic Stations'는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걱정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에요. NFT를 판매하기 위해 바삐 손가락을 놀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죠. 엄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며 까딱거릴 뿐인데 손의 주인공이 짓있을 당황한 표정과 충혈된 눈, 식은땀마저 느껴집니다.


조금은 귀여운, 감정과 이미지

XCOPY의 해골 글리치 작품들

XCOPY는 유난히 치아가 들쭉날쭉하고 눈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해골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배경은 어둡고 강한 빨강과 초록, 파랑을 사용하여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글리치는 강렬한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죠. 얼굴을 보면 FOMO가 온 NFT투자자들, Paper Hands로 단기 차익을 실현했다가 공황에 빠진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와 같은 극단적인 불안과 공포 이미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무섭게만 볼 건 아니에요. 삐뚤빼뚤한 치아와 놀란 토끼눈을 중심으로 자꾸 보다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거든요. 누구나 지금, 혹은 언젠가 한 번쯤은 어떤 이유로든 지을 수 있는 표정이잖아요. 낯선 이미지인데 의외로 익숙한 감정이 꽉 들어차 있는 셈이에요. 어쩌면 글리치의 가면 속에 숨어 있는 본연의 감정을 우리는 너무 꽁꽁 싸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겉과 속의 괴리가 커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우주에 숨겨 놓았던 디스토피아를 어느덧 슬금슬금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All Time High in the City

글리치처럼, 아이러니하게

따지고 보면 XCOPY가 글리치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당한 아이러니를 내포해요. XCOPY가 적극 옹호하는 블록체인의 특징은 데이터가 수정되거나 변조되지 않았음을 보증하는 '무결성'입니다.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의 '오류가 없음'을 검증하는 것인데 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XCOPY의 작품은 디지털 세계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소재이자 도구로 삼은 예술입니다. XCOPY는 Max Pain and Frens, Grifters와 같은 NFT프로젝트들을 통해 직접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명성의 크기만큼이나 그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최근까지도 King Xerox, Bongdoe와 같은 뛰어난 글리치 아티스트들이 등장해 XCOPY의 뒤를 잇고 있죠. 앞서 소개한 NFT아티스트 DeeKay 역시 artynft와의 인터뷰에서 XCOPY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어요. 세기말적 감성의 글리치 아티스트 XCOPY는 이처럼 NFT아티스트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성과 부, 인기를 누리며 말 그대로 창작의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KING XEROX의 글리치 작품 BLACKSMITH


디스토피아 몽상가의 무서운 집념 

XCOPY는 글리치 아트를 시작하면서 작품의 형식을 GIF로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NFT를 시작하기 전 약 10년 동안 텀블러(tumblr/이미지, 영상, 글 등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에서 꾸준히 작품을 창작해 게시해 왔습니다. 요즘처럼 디지털 작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웹사이트조차 없었던 시기였기에 작품을 보여줄 공간으로 텀블러를 택한 것입니다. 

XCOPY의 텀블러 사이트

하지만 텀블러의 대시보드 설정과 업로드할 수 있는 파일크기가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색상 팔레트가 한정되었고 파일크기가 작고 가벼운 GIF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플랫폼의 기술적인 여건 때문에 GIF 글리치의 대명사가 되다니. 될 사람은 되나 봅니다. 그런데 정작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의 태도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무명의 시절이 있었는데요. 바로 텀블러에 작품을 업로드하던 때였죠. 텀블러에는 2010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116개월(약 10년) 동안 연속으로 게시했다고 하는데요. 돈은 거의 벌지 못했다고 합니다. 말이 '거의 벌지 못했다'이지, 사실상 수입이 없다시피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2018년 3월 22일 이루어진 그의 첫 GIF작품 판매 가격이 단 1파운드 가치의 이더리움이었거든요. 2018년 당시 1파운드 가치의 이더리움은 한화로 1,500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1,500원이면 요즘 과자 한 봉지 값으로 김밥 한 줄 사 먹을 돈도 안됩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 8년 만에 첫 작품이 1,500원에 판매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작품 활동을 계속하실 건가요? 그리고 여러분은 내 작품의 가치가 8년 만에 드디어 인정받았다고 즐거워하며 더욱 작품활동에 매진할 건가요? 아니면 내 작품은 8년을 계속해도 겨우 1,500원 밖에 안돼, 라며 좌절할 건가요?

개인적으로 저의 생각을 얘기해 보자면 저는 후자입니다. 게으른 저로서는 작품으로 수입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10년간 꾸준히 활동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10년 활동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좌절스러운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은 다르기에 좋게 생각하면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1,500원이라니! 15,000원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때 XCOPY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작품이 1파운드에 팔렸음을 알리는 XCOPY


그는 작품이 판매되자 텀블러에 이런 말을 하며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나는 나의 첫 GIF를 1파운드에 팔았다.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순 없어 텀블러"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고? 정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년 만에 작품을 처음으로 1,500원에 팔고는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순 없다고 의기양양하다니요. 이건 마치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최소 10억에 작품이 낙찰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 같지 않나요? 여러분이 예술가라면 작품을 1,500원에 팔고 파워 당당하게 소셜미디어에 저런 멘션을 남길 수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해, 저라면 부끄러워 오히려 숨을 것 같습니다. 나의 시장 가치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라고 자조하면서 말이죠. 

그나마도 작품이 판매된 것은 구매자가 바로 Jason Bailey였기에 가능했던 것인데요. Jason Bailey는 해커타오 편에서 소개했던 블로거로 해커타오('하나였을까요, 우리는?- 해커타오'편 참조)를 NFT아트로 인도한 유명 NFT컬렉터입니다. 크립토아트를 초기부터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그는 지금도 꾸준히 컬렉팅을 하고 있습니다. Jason Bailey 정도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나마' XCOPY의 작품을 구매했던 것이지요. 가격을 떠나 XCOPY에게는 그 자체로 엄청난 행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작품 활동을 계속할 동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2018년 첫 작품 판매를 기점으로 NFT시장은 믿기 힘든 수치의 성장을 거듭합니다. 2018년 이후 XCOPY는 현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여러 NFT마켓 플레이스를 포함 슈퍼레어 등 다양한 플랫폼에 NFT를 미팅하면서 점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첫 판매 후 4년 만인 2022년, 소더비 옥션에 작품이 경매되었고 63만 달러에 최종 낙찰되며 명실상부한 주류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됩니다. 

8년의 작업 끝에 처음으로 1파운드에 작품이 팔리면서도 어떤 것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며 더욱 열심히 창작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한 XCOPY. NFT 마켓 플레이스가 막 생겨나던 극초기 NFT시장에서 XCOPY는 확고한 시장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집념이 있었던 걸까요? 어떤 것이든 열정과 노력과 확신과 운의 결합이 오늘날의 XCOPY를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더비에서 경매된 Departed


XCOPY 같은 마인드와 열정이라면 무엇을 해도 성공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강렬한 감성과 뜨거운 집념을 가진 한 몽상가의 꿈.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까요? 현재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즐비하지만 그 위치에 서기까지 남들은 모르는 오랜 세월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1,500원에서 수 십억 원까지 가는 길은 10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하루아침일지도 모릅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매다, 그리고 성과가 지지부진할 때마다 저는 XCOPY가 말한 문구를 기억하며 다짐합니다.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순 없어. 해보자." 



소설 미디어

• 트위터 : https://twitter.com/XCOPYART 

• 웹사이트 : https://xcopy.art/ 


마켓 플레이스별 작품

• 슈퍼레어 : https://superrare.com/xcopy

• 니프티 게이트웨이 : https://niftygateway.com/profile/xcopy 

• 노운 오리진 : https://knownorigin.io/xcopy

• 에이싱크 아트 : https://async.art/u/xcopy/collection

• 레어러블 : https://rarible.com/xcopy 

• OBJKT : https://objkt.com/profile/reachback/created

• 오픈씨 : https://opensea.io/collection/max-pain-and-frens-by-xcopy

• 오픈씨 : https://opensea.io/collection/xcopy

• 오픈씨 : https://opensea.io/collection/grifters-by-xcopy

• 오픈씨 : https://opensea.io/collection/right-click-share

• Grifters : https://grifters.wtf/ 

• 메타버스 The Bar : https://monaverse.com/spaces/xcopy-bar?invite=TXpZMU1qTXhNUTphc2lh 


참조

•Peer to peer : https://opensea.io/collection/balzacbu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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