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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Mar 14. 2023

당신의 미래는 안녕하십니까 - 비플

아트 테크놀로지와 미래

압도적 스케일

비플(Beeple)은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라는 작품을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의 뒤를 이어 생존하는 작가 중 3번째로 높은 가격인 약 6,934만 달러(786억 원)에 판매하며 유명해진 NFT아티스트입니다. 게다가 천일도, 이천일도 아닌 무려 오천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린 그림을 전부 모아 하나의 콜라주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비플

미디어들은 고가에 팔린 NFT를 앞다투어 보도하며 떠오르는 투자시장으로서 NFT에 대한 뜨거운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어요. 하지만 비싼 작품의 가격에 초점이 맞추어져서일까요? 정작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내용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비싼 작품의 작가'보다는 어떤 과정을 거쳐 NFT아티스트가 되었고 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에 빠진 컴퓨터 전공자

비플의 본명은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으로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거주 중이며 대학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었습니다. 전기 엔지니어인 그의 아버지가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비플은 예술가의 기질이 있었는지 프로그래밍이 점점 지루해졌고 웹캠으로 단편 영화를 촬영하며 디지털 영상과 디자인을 배웠다고 합니다. 

Building Tubes(Beeple)

그는 영상을 만들던 때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이라는 비디오 아티스트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기하학적 루프(끝없는 반복)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에 게시합니다. 그의 웹사이트에서는 이 루프 영상을 여러 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플 작품에는 디스토피아적 감성 속에서 로봇이 자주 등장하는데 크리스 커닝햄의 영상에 등장하는 로봇에 대한 묘사 그리고 약간의 기괴한 분위기와 닮아 있습니다. 

Chris Cunningham의 영상 캡처

비플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애니메이션, VJ클립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갈고닦은 영상 및 디지털 기술은 그의 예술 창작에 밑거름이 됩니다. 그림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인 2007년 5월 1일에 처음 시작했는데 그 해 초 영국에서 만난 일러스트레이터가 매일 스케치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자신도 매일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한 번 마음먹은 것을 3일 동안 실천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비플의 '작심'은 무려 15년도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첫 5천 일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는 Everyday에 -s를 붙여 매일의 노력이 켜켜이 쌓였음을 나타냅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역사가 되어 네모의 픽셀에 자리 잡은 것이죠. 이 작품은 2021년 2월 25일부터 3월 11일까지 크리스티에서 경매가 진행되었어요. 시작가는 100달러. 경매에는 약 2,200만 명이 참여했는데 2주 만에 6,934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NFT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합니다. 유명 암호화폐 트론(TRON)의 창업자 저스틴 선(Justin Sun)도 입찰액 5천만 달러로 경매에 참여했으나 낙찰에는 실패했어요.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경매 결과

이 작품의 구매자는 싱가포르의 블록체인 기업가 Vignesh Sundaresan이 이끄는 Metapurse라는 NFT 펀드였습니다. Metapurse는 이전에도 비플의 싱글 에디션 작품 20개를 약 220만 달러에 모두 구입한 적이 있을 정도로 비플과 NFT아트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크리스티 경매가 시작되자 마음먹고 압도적인 금액으로 낙찰을 받았죠. 전 세계적으로 NFT열풍이 불었던 2021년에 아트를 NFT의 선도적 위치에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경매였습니다. 기존 예술시장에서는 새로운 방법론과 고객 창출 수단으로 NFT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주식, 암호화폐 등의 투자시장 역시 NFT투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교집합이 생겨나게 됩니다. 투자금이 NFT시장으로 몰리면서 일찌감치 NFT를 시작한 아티스트들은 유래 없는 호황 속에서 큰돈을 벌기도 하죠. 그들 중 일부는 OG아티스트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도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BEEPLE 2020 COLLECTION MARIO

이 커다란 작품은 너무나 많은 그림들이 한 화면에 담겨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비플은 자신의 웹사이트 beeple-crap.com 에 개별 작품들을 볼 수 있도록 라운드별(장르별)로 분류해 놓았어요. 라운드 1이 초기 작품들이며 라운드 14가 가장 최근의 작품들인데 라운드 14 이후 최신 작품들은 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작품 형식은 최근으로 올수록 CINEMA 4D(3D 모델링 프로그램)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지만 라운드 초기에는 종이에 그린 드로잉 작품, 라운드 4는 사진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운드 1 - 부끄러운 연습장

초기에는 그림을 막 배우고 연습하는 단계로 주변 인물이나 관심 있는 소재를 자유롭게 그립니다. 첫 그림은 비플의 삼촌인 제임스를 그렸는데 그 후로는 그림 연습을 하는 느낌으로 주변 인물이나 상상한 무엇인가를 그립니다. 그중에는 조잡한 성적 이미지, 조롱, 인종주의적 시각마저 엿보이는 20대였던 비플 머릿속의 온갖 잡동사니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비플 스스로도 매우 부끄러워하는 드로잉이지만 매일 하나씩 만들어가야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간 증거이기도 하므로 모두 공개해 놓았습니다. 공개는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제발 아무도 안 보았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 느껴지는 작가의 코멘트도 달려 있습니다. 

"If you actually take the time to look at these please murder me, then murder yourself."

(만약 당신이 이것들을 보는데 정말 시간을 들였다면 제발 나를 죽여주세요, 그리고 당신도 죽어버리길.)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그야말로 웃픈 상황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고 시작하자마자 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오히려 초기의 그림들을 통해, 오랜 시간 끈기와 노력으로 발전해 가며 누구보다 커다란 성취를 해낸 점이 더욱 값지게 다가옵니다. 오늘날 비플이 있게 한 긴 여정의 첫걸음, 후딱 감상하고 다음 라운드에서 본격적인 성장 과정을 살펴보시죠. 

Round 1


독자적 예술과 주제의식 

왼쪽 위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순서대로 라운드 1부터 라운드 14까지 라운드당 한 작품씩 임의 선택

위의 이미지는 EVERTDAYS의 총 14라운드로 나뉜 컬렉션에서 라운드당 한 작품씩 임의대로 선택해 나열한 것입니다. 초기의 단순 드로잉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디지털 아트 실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초기였던 라운드 3~7까지는 추상적이면서도 반복적인 무한반복(LOOP) 형태의 디지털 영상 작품들이 많았는데 당시 작품들이 현재의 3D 영상 퀄리티를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Manifest Destiny

비플은 초기 드로잉에서 시작해 사진, 애니메이션, 음악과 결합된 영상 작품 등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제작 기술을 습득하며 높은 퀄리티의 단편 3D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특정한 장르나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 결론적으로 종합 예술가로 거듭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의 주제 역시 세월이 흐르며 초기의 중구난방 소재에서 미래, 로봇, 대기업, 정치 등의 소재로 나뉘며 세분화되어 갑니다. 만약 처음부터 주제와 작품 방향을 결정하고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비플이 있었을까요? 예술은 엄청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하지 않았을까요? 때로는 뜻이 있는 분야에서 일단 시작부터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술은 인생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루이비통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비플의 성공은 극도의 성실함과 출중한 퀄리티가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그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루이비통과의 협업이었습니다. 루이비통의 예술감독인 플로랑 부오노마노(Florent Buonomano)가 인스타그램에서 비플의 작품을 보고 메시지를 먼저 보냈다고 합니다. 

루이뷔통 패션쇼에 등장한 비플 작품

여성용 티셔츠에 비플의 그림 몇 개를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는데 패션에 대해 전혀 몰랐던 비플은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사용될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미래와 테크놀로지를 주요 소재로 한 비플의 작품이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어떻게 적용될지 바로 떠올리긴 쉽지 않습니다. 놀라운 점은 루이뷔통이 택한 작품은 추상이미지나 패턴이 아닌 구체적인 로봇 그림을 적용했다는 점입니다. 'Everydays' 시리즈에서 9개의 디지털 일러스트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파리 패션 위크 루이뷔통 쇼의 45개 제품 중 13개 제품에 사용되었는데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협업 작품들 중 'MCD 2087'의 경우에는 원본 작품의 맥도널드 로고를 루이뷔통 로고로 바꾸어 패션쇼에 등장시켜 화제를 낳기도 했죠. 

작품 MCD 2087과 루이뷔통 패션쇼
LV CRUISE 2020에 등장한 비플의 작품

루이비통이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을 해온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NFT아티스트와 협업을 한 것은 비플이 처음입니다. 언제나 혁신과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해 온 루이비통이 비플의 작품을 통해 미래지향적 비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비플은 루이비통이 출시한 모바일 게임인 '루이 더 게임'에서 사용되는 아이템 중 일부를 제작하는 귀여운(?) 콜라보도 진행합니다. 

팝가수 마돈나와 협업으로 제작한 Mother of Nature

비플은 이외에도 애플, 스페이스 X, 나이키, 삼성, 코카콜라 등의 브랜드, 캐이티 페리, 마돈나, 저스틴 비버, 에미넴, 아비치 등 유명 음악가나 DJ들과 협업하며 더욱 이름값이 치솟습니다. 특히 마돈나와는 'MOTHER OF CREATION'이라는 이름으로 1년여에 걸친 장기 협업으로 3개의 영상 작품을 제작해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여성과 어린이 관련 재단과 NGO(비정부기관)에 기부했습니다. 기존 예술가가 아닌 NFT아티스트가 이처럼 장르와 브랜드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협업을 한 사례는 매우 드뭅니다. 사실상 비플이 유일하다고 보아도 될 정도죠. 그의 한걸음 한걸음은 그 자체로 NFT아트의 역사에 다름 아닙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테크놀로지

작품이 아주 많지만 비플하면 떠올릴 만한 비교적 최근의 대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사실 작품의 주요 소재인 기술, 미래, 디스토피아와 관련된 NFT아트는 식상하리만큼 많습니다. 아마도 블록체인으로 시작된 NFT와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불확실성 때문일 것입니다. 작품 'HUMAN ONE' 또한 메타버스 세상의 도래와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한 전진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HUMAN ONE'이라는 제목은 메타버스에서 처음 태어난 인간을 의미하는데 아래 영상과 같이 상자 안에서 우주복 같은 것을 입은 한 사람이 걸어가는 영상을 4면의 LED스크린으로 보여줍니다. 사람이 걸어가는 배경 공간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볼 수 있을 만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의 배경이 24시간 동안 계속해서 바뀌는 데다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상자 자체가 돌아가기 때문에 상당히 역동적으로 느껴지는데요. 스크린의 높이가 2미터 20센티미터, 폭이 1미터 20센티미터(87 x 48 x 48 인치/16K 해상도)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실제로 보면 관람자가 우주복을 입은 주인공이 되어 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역동성은 단지 상자 안에서 재생되는 영상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요. 상자 안의 디지털 작품을 작가가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어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비플은 이에 대해 "전통적인 예술은 완성된 순간에 멈춰 있는 유한한 진술에 가깝지만, 이 예술 작품은 업데이트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지속적인 대화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한한 진술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라니. 디지털 예술의 장점을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NFT아트 작품과 디지털 작품들조차 스크린을 단순히 '작품재생 도구'로 사용했지만 이 작품은 콘텐츠를 바꾸어 나감으로써 디지털 아트의 무한한 확장성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2021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2,900만 달러(약 390억 원)에 낙찰되며 '매일: 첫 5천 일'에 이어 성공적인 경매로 기록됩니다. 작품 구매자에게는 이 물리적 작품(4면 스크린)과 NFT가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2023년 6월까지 홍콩 M+뮤지엄에서 전시되다가 이후 2023년 10월 현재는 미국 아칸소 주에 위치한 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Human One

비플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디지털 영상 작업을 꾸준히 했고 시대가 변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적용할 NFT아트에 발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그는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삶에 줄 지도 모를 변화에 주목합니다.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인간에게 꼭 이로울 수만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의 창업자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막강한 파워, 그리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Google Data Collection 2098'에는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죠. 우리는 구글에서 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어느새 구글은 우리의 취향, 소비패턴 등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정확히 압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보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심지어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조차 모두 알고 있죠. 우리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행동 패턴을 데이터화해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Chatgpt는 어떤가요? 새로운 차원의 인공지능 서비스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데이터를 축적해 점점 고도화한다는 점에서 은연중 스며드는 불안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인간을 감시하고 명령을 내리거나 공격한다면? 실제로 미국 공군의 가상훈련에서 AI드론이 인간을 공격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죠. 게다가 사람보다 뛰어난 수행능력을 보이는 로봇이 이미 개발된 만큼 인공지능 전투로봇이 전쟁에 사용될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개발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할 수도 없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한편으로 '엑스에이아이(xAI)'라는 새 인공지능 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든 아이러니는 이런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비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비플은 이런 두려움을 정보 권력을 조롱하고 희화화함으로써 달래기도 합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작품 You Got Mail)나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작품 Zuck)머리가 떨어져 나간 작품들, 그리고 다소 혐오스러운 묘사 때문에 올리진 않았지만 거대 테크 기업의 수장들을 괴물같은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Google Data Collection 2098
You Got Mail
Zuck

정치는 똥이지..만,

비플 작품에는 트럼프, 김정은, 클린턴, 바이든, 샌더스 등 유명 정치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Politics is Bullshit'이라는 제목의 작품처럼 정치계를 매우 혐오하는 것 같지만 작품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관심은 아주 많아 보입니다. 그는 특히 트럼프를 가장 혐오하는 듯한데 혐오 대상은 정당과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Politics is Bullshit

눈코 뜰 새 없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 가장 늦게 대응하고 가장 늦게 변하는 영역이 정치이기 때문일까요? 기술의 발전을 최첨단에서 목도하고 있는 비플은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계가 한심하게 생각되었을 겁니다.

Shitty Kid(왼쪽) | Happy Halloween(가운데) | Real Virus(오른쪽)

작품 ‘Shitty Kid’에서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볼기짝을 때리고 있습니다. 링컨이 미국 첫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며 트럼프 역시 공화당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트럼프가 공화당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음을 모두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을 통해 훈계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작품 ‘Happy Halloween’에서는 미국 양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혓바닥을 끈적하게 붙여 놓았는데요. 그들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가치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고 표를 얻기 위한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그 누구보다 가까운 동업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양당 수장의 혀가 서로를 끈적하게 핥고 있네요‘Real Virus’에서는 클린턴, 트럼프, 조 바이든, 김정은을 한 몸뚱이로 붙어 있는 바이러스로 그려 냈습니다. 마치 "너희들은 다 한 통속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네요. 매일같이 전쟁, 환경, 핵 이슈 등으로 인류를 불안하게 하는 위정자들을 징그러운 바이러스와 괴물로 묘사해 그들이야말로 바이러스라며 싸잡아 비난합니다. 그럴 만도 하죠. 회담도 여러 차례, 협정도 여러 차례, 뉴스는 매일 같이 나오지만 큰 진전이 보이지 않고 여전히 그들 소수의 결정에 따라 인류 전체의 평화가 좌지우지되니 말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조 바이든,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김정은(왼쪽부터
Shitshow

이 속 시원한 묘사의 놀라운 점은 사실 '표현의 자유'입니다. 비플은 마음껏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풍자하고 농락하고 있어요. 혐오스러울 정도로 징그럽게 그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을 그렇게 묘사하거나 소셜 미디어에서 의견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요? 온갖 이유를 들어 입을 막으려 하고 비난하고 압력을 넣지 않을까요?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 딴따라 주제에 건방지게 나선다 등등의 날 선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예술가면 입 꾹 닫고 그저 고고하게 예술이나 하라는 조선시대 나으리들이 오랫동안 이 나라를 통치해 왔기 때문이에요. 문제가 많은 미국 사회지만 이런 면은 참 부럽습니다. 

비플 트위터

비플은 정치에 관심이 큰 만큼 선거와 관련한 NFT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0년 대통령 선거 시즌에 는 관련 작품을 만들어 가볍고 재미있게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했는데요. 첫 번째 작품인 Crossroad는 선거 결과에 따라 바이든이 이기면 Biden Win으로, 트럼프가 이기면 Trump Win으로 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결과는 바이든의 승! 때문에 온몸에 경멸적인 낙서가 쓰인 채 쓰러진 트럼프를 묘사한 Biden Win NFT로 바뀌었습니다. LOSER(패배자), EAT SHIT(똥이나 먹어)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운데 트위터를 의미하는 새가 이모티콘을 통해 트럼프를 '광대'라고 조롱하고 있군요. 반면 트럼프가 승리했다면 호전적인 이미지의 트럼프가 힘을 앞세워 백악관으로 위풍당당 입성하는 Trump Win로 변했을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누가 이기든 두 NFT의 주인공은 트럼프라는 것입니다. 'Sleepy Joe(졸린 조)'라는 별명을 가진 바이든보다는 상대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의 트럼프가 작품을 만들기에 용이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물론 화제성도 높을 것이고요. 

Crossroad
Trump Win
Biden Win

예술의 미래 - 기술의 역습?

비플은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지 16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매일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작품 수도 2023년 10월 5일부로 6,000개를 넘어섰습니다. 드로잉에서 시작해 단편영화까지 작품의 퀄리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죠. 작가의 노력에 더해 작품 제작 도구들의 기술적 발전이 뒷받침되었을 것입니다.

디지털 아트는 특히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플 역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했는데 최근 작품들의 주제는 대체로 기술이 가진 위험성, 즉 기술로 파괴될지도 모르는 삶과 미래입니다. 특히 인공지능이나 거대 기술 기업들의 정보통제와 사생활 침해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여러 작품들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죠.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Privacy

하지만 어차피 다가올 미래라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잘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데 보다 효과적이겠죠.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작품이 '인간'의 미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며 논란도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인공지능 예술은 시대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해졌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작품을 예술로 인식해가고 있죠. Dmitri Cherniak, Refik Anodol 등 유명 생성형 인공지능 예술가의 작품이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비플의 작품 Crossroad처럼 꼭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NFT로 만드는 자체가 예술의 활용도를 극적으로 높여 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Rebirth
After VR Destroyed Us

당신의 미래는 안녕하신가요?

비플은 NFT 아티스트 중에서도 가장 앞장서 다가올 예술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11일 미국 찰스턴(Charleston)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인 'BEEPLE STUDIO'의 오픈 행사가 있었습니다. DEEKAY, XCOPY, GMUNK, PAK 등 유명 NFT아티스트 20인의 작품을 전시했고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이 스튜디오에서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실이자, 갤러리, 체험공간으로 이 스튜디오를 활용하고 NFT아트를 선도해 나갈 커뮤니티도 형성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스튜디오가 단순히 예술전시를 위한 갤러리가 아닌 예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Beeple Studio Grand Opening

비플은 지난 9월에 있었던 국내 최대 블록체인 행사인 KBW(Korea Blockchain Week)와 NFT NOW 등의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기도 했는데요. 세계 곳곳의 주요 NFT행사에 활발히 참여하며 NFT아트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유쾌하고 농담도 잘하며 성실성까지 갖춘 스타 아티스트 비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예술 메타버스로의 도약에 비플 스튜디오가 구심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 P.S : 비플의 웹사이트에서 대부분의 영상 작품을 다운로드할 있고 상업적인 용도로도 무료로 사용할 있습니다. 저작권을 공개했으니 자료를 이용하고 싶은 분은 자유롭게 이용해도 됩니다.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웹사이트  https://www.beeple-crap.com/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eeple_crap/ 

 트위터  https://twitter.com/beeple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beeple  

• 니프티 게이트웨이 컬렉션  https://www.niftygateway.com/@beeple/collections  

• 오픈씨 컬렉션  https://opensea.io/beeple/created

• 비플 스튜디오 웹사이트  https://beeple-studios.xyz/ 

• 비플이 수집한 NFT 웹사이트  https://beeple-collect.com/ 

• 마돈나 협업 작품 https://motherofcreation.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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