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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Jun 22. 2023

자네는 춤을 추게, 난 코딩 할 테니 - 에스펜 클루게

음악가의 신항로 개척

춤추는 종합 예술

에스펜 클루게(Espen Kluge/이하 클루게)의 예술은 NFT아트 장르 중에서도 독특한 편입니다. 음악에 맞춰 그림이 움직이죠. 아니, 정확하게는 음악 연주와 그림의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에스펜은 작곡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 직접 코딩을 배우고 만들어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생성 예술가입니다. 회화, 영상, 음악, 조각 등 여러 예술 분야가 융복합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운데 에스펜의 NFT작품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서정적인 감성으로 감상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게요.

Lerp Trinkets

우선 생성예술은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라고도 불리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알고리즘을 만들고 그 알고리즘에 따라 창작하는 예술을 말해요. 초기의 생성예술에는 다소 단순한 형태의 조형적 요소, 즉 도형, 색, 크기, 두께 등의 각 요소들을 조합해 무작위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Generativemasks

일본인 작가 Shunsuke Takawo의 Generativemasks가 유명한 NFT 생성예술 작품 중 하나인데 2022년 국내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2D형태로 마스크가 여러가지 형태로 조합되어 생성되는 NFT였습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미드저니(Midjourney), 달-이(Dall-E) 등 인공지능을 통해 쉽게 생성예술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죠. 꼭 예술분야가 아니더라도 각종 디자인이나 원하는 이미지를 쉽게 만들기 위해 인공진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코딩 짜는 예술가

에스펜 클루게의 작품은 생성예술 중에서도 음악과 영상을 리듬에 맞춰 조합한 독특한 스타일이에요. 클루게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TV와 영화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27살이었던 어느 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키보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이 키보드는 PC키보드가 아닌 건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연주를 하면 실시간으로 키보드에 그 음에 맞는 불이 켜지는 것이죠. 클루게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합니다. 처음에는 한 달이면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만들어낼 줄 알고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수 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일단 관심있는 분야를 시작하면 마음먹은 것을 성취해낼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끈질김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시간 키보드 아이디어는 결국 특허까지 이어졌는데, 이후 계속해서 코딩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클루게의 즉흥 키보드에 대한 특허


대안(Alternatives)과 서정적 수렴(Lyrical Convergence)

물론 처음부터 그림이나 영상에 음악을 결합한 것은 아니었는데요. Alternatives(대안)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로 인물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알고리즘으로 만든 초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온라인에서 가져온 사진을 벡터화하여 표현한 것인데 100일 동안 100개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코딩에 따라 결과물이 무작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원하는 결과'란 다소 특이하거나 낯설게 보일 수 있어도 신선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생성 예술은 단순히 코딩 후 결과물만 기다리는 것이 아닌데요, 코딩 전 구상, 코딩, 다수의 실험, 수정과 최종선택 등 일련의 과정이 종합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물사진을 선택할 때도 표정이 뚜렷하거나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을 선택하는데, 메이크업을 한 댄서처럼 과장된 느낌의 사진의 결과물이 보다 선명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Alternatives
cruise ships and police cars - 2019

그리고 이 대안 시리즈들은 이후 서정적 수렴(Lyrical Convergence)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재탄생합니다. 기존 대안(Alternatives) 시리즈 작품들의 데이터에서 파생된 시리즈인데 '서정적 수렴'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아련한 어감으로 여러 번 되뇌게 됩니다. 이미지들을 비교해 보면 '대안'에서 '서정적 수렴'으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안에 사용된 색 팔레트가 서정적 수렴에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추상적인 이미지로 바뀌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심정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Lyrical Convergence(서정적 수렴)
Lyrical Convergence(왼쪽)과 Alternatives(오른쪽)

서정적 수렴 시리즈는 대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총 100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9년 Kate Vass Galerie에서 실물 작품과 디지털 작품이 동시에 전시되었습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는 초기 크립토 아트를 세상에 알렸던 유명 블로거 제이슨 베일리(Jason Bailey)였습니다. 

Kate Vass Galerie 단독전시회에서 제이슨 베일리(중간)와 클루게(출처: espen.xyz)


음악가의 신항로 개척 - 공감각의 구현

노르웨이 출신인 클루게는 노르웨이 TV 프로그램 'Who Killed Birgitte?', 'Mullaen &Meling'의 사운드 트랙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한데요. 클루게의 음악 본능은 NFT를 통해 본격 발휘됩니다. 그의 NFT는 니프티 게이트웨이에서 2022년,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Minuets'시리즈와 'Reflected in the Closed Eye'라는 컬렉션으로 민팅되었습니다. 두 시리즈 모두 초상화 드로잉과 음악을 연동한 작품들로 클루게 고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각적 요소와 음악을 결합하기 위해서 두 작업을 각기 따로 해야 했는데요. 우선 시각은 초상 사진, 손으로 그린 라인 초상화(83개), 에스펜의 머리를 모델링한 얼굴 캡쳐 모델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음악적 요소는 음표의 길이, 시간상 위치, 음의 값 등 모든 음악적 변수를 통해 생성-조합된다고 합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색과 선들이 음악의 선율과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단 하나도 같은 그림이 없으며 음악 없이 선과 색들의 모양만 보아도 세련되고 아름답죠. 그림들이 계속해서 율동하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진 배경음악은 폭발적인 서정성을 담아 관객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듭니다.

Seed 6 in C major(Frontmode)
Seed 222222 in Bb Minor(Sidemode)
Lords

에스펜의 작품은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추상화의 선구자인 칸딘스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칸딘스키는 한 가지 감각 요소로 다른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자였을 것으로 자주 회자됩니다. 그의 공감각을 예로 들면 '솔'이라는 음을 들으면 빨간색이 보이는 식인데요. 칸딘스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모스크바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상하던 중 공감각을 발견하게 됐다고 합니다. 공감각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에스펜의 작품을 통해 공감각 간접체험을 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COMPOSITION 8, 칸딘스키

음악 초상화와 놀이

클루게의 NFT작품들은 모두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클루게는 두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얼굴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꼽습니다. 인간은 얼굴을 인식함으로써 잠재적인 적과 친구를 구별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다는 점에서 삶의 의미 있는 측면을 탐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얼굴을 선과 색으로 단순화하고 왜곡하고 과장하고 음악까지 곁들여 하나의 놀이로 만들고 관객은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아이처럼 즐거운 무도회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 놀이의 핵심은 일종의 상호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펜이 특허를 낸 실시간 키보드 연주-키보드, 서정적 수렴 컬렉션-대안 컬렉션, 초상화-음악은 상호 작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상호작용 사이에 약간 예측하기 어려운 무작위성까지 곁들인다그야말로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 겁니다. 항상 결과가 정확히 예상되고 변수가 없다면 그저 지루한 영화의 결말과 다름없겠죠? 관객들에게 감흥을 주는 예술, 신기하고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는 예술, 누구나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예술. 에스펜 NFT 작품의 특징입니다. 

The Bowholde
Lyrical Convergence(서정적 수렴) 중 한 작품

치유와 공감

클루게의 작품은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한 NFT예술 중 가장 기발하고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클루게 자신도 "NFT는 확실히 저에게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NFT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합니다. 초기의 2D이미지 생성에서 3D모션에 음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며 기술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죠. 사실 그는 오래 전 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는데 예술 작업을 하면서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을 접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드로잉으로 만들어낸 선의 형태들도, 음악들도, 쩍쩍 갈라진 삭막하고 걍팍한 마음을 달래주는 호수의 물줄기처럼 느껴집니다. 



• 니프티 게이트웨이  https://www.niftygateway.com/marketplace/artist/espenkluge

• 서정적 수렴 작품 공간  https://lyricalconvergence.art/

• 오픈씨  https://opensea.io/collection/drawingsbyespen


• 웹사이트  https://www.espen.xyz/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spenkluge/

• 트위터  https://twitter.com/espenklu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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