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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Jul 27. 2023

유전자도 전송이 되나요? - 페데리코 클라피스

두 번째 우주와 미래 유물

페데리코 클라피스


유튜버와 예술가 사이 

페데리코 클라피스(Federico Clapis / 이하 클라피스)는 이탈리아의 현대 예술가로 다소 특이한 과정을 거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클라피스는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선언하기 전까지 유튜브에서 익명으로 바이럴 영상을 만들던 크리에이터였어요. 또 ‘Game Therapy’라는 이름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죠. 이탈리아 배우 출신답게 아주 잘생겼습니다. 

클라피스 출연 영화 Game Therapy

의 창작과 엔터테인먼트 활동은 예술가로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자 전략이었어요. 클라피스는 처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자신의 예술을 좋아해 줄 팬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팔로워와 팬을 확보한 후 2015년 전업 예술가를 선언하며 기존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많은 팔로워가 생기고 인기를 얻고 돈을 벌면 초심을 잃을 수도 있을 텐데 클라피스는 꿈을 좇아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예술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죠. 

많은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클라피스는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술 후원자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예술가 자신만의 브랜딩이 독립적인 예술 활동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클라피스는 바이럴 영상을 만들고 소셜 커뮤니케이션으로 팬을 확보했던 만큼 디지털 세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을 만드는 조각가로서 갤러리와 외부 공간에서 전시도 했지만 “(현실세계의) 조각은 너무 비싸고 무겁고 옮기기 어렵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물리적 제약 없이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디지털 아트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아트는 디지털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크린 안에서만큼은 거의 무한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Monochrome reward

한편 어릴 때 클라피스는 수면 마비(가위눌림)로 인해 물질세계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성인이 되어 인도의 아쉬람 지역으로 이주해 내면을 탐색하는 등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기도 했어요. 인도 아쉬람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가나 명상을 하기 위해 찾아가는 유명한 암자인데, 예술가로 거듭나려는 하나의 준비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세계는 물질로부터 오는 근원적인 좌절감을 배제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클라피스는 전업 예술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1년 간 실물 아트를 진행하지 않고 오직 디지털 아트에만 집중하겠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립니다. 3D스캐닝과 모델링을 사용한 디지털 작업을 해온 클라피스의 열정은 자연스레 디지털 아트인 크립토(NFT) 아트로 옮겨 갑니다. 


클라피스는 주로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할 미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미래'라는 주제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로 전달하니 더욱 공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NFT는 슈퍼레어와 니프티 게이트웨이 2곳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민팅했고 자신의 실물 작품을 NFT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2021년 2월에 첫 NFT작품으로 그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인 ‘Babydrone’을 민팅했는데 이 작품 역시 박물관과 갤러리에 실물로 전시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디지털도 멋지지만 실물 작품을 보면 더욱 멋지고 신비로운 느낌일 듯합니다.

Babydrone

Babydrone은 아기가 드론에 연결된 포대에 싸여 있는 모습인데, 마치 공장에서 아기를 찍어내 목적지로 나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기'는 Secondary Space(두 번째의 우주), Concretes, Back to Earth(콘크리트, 지구로 돌아가기), Flooded Ruins(침수된 유적), Future Relics(미래 유물들)라는 컬렉션들에 모두 등장할 정도로 클라피스 작품의 주요 소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예술로서 조금씩 각광을 받고 있는 NFT의 지금 상황이 아기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Secondary Space
Concretes - Back to Earth
Flooded Ruins
Future Relics

위 컬렉션들의 제목과 순서를 고려해 어떤 서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우선 첫 번째 컬렉션인 ‘두 번째의 우주(Secondary Space)’의 작품 설명에는 “성층권으로 올라가면 물질이 디지털에 자리를 내주고 미래를 향해 함께 떠날 수 있는 가볍고 강력한 공간을 발견합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물질이 디지털에 자리를 내준다"라는 표현에서 클라피스의 첫 번째 예술 세계였던 실물 작품에서 두 번째 우주인 디지털 세계로의 변화되는 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전자도 전송이 되나요? Connection.

각 컬렉션들에서는 작품 Babydrone과 Connection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그중 Connection은 자궁에 있는 아기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조차 어머니와 아기가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디지털 조각이죠. 

Connection 실물 전시

그런데 과연 어머니와의 유전적 연결 속에서 디지털 세포를 보유한 채 태어난 아기는 미래 세대의 모습이기만 할까요? 뱃속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좀 섬뜩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에서 떨어질 수 없는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기가 엄마와 분리될 수 없듯, 우리도 디지털과 분리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전자기기와 소셜 미디어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려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디지털 단식)까지 있을 정도니 과장이라기보다 현실반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2017년 실물 작품으로 전시되었을 때 위 사진처럼 탯줄이 있었는데 2018년 청동 조각상과 그 후의 NFT작품에서는 탯줄을 볼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생물학적 연결 고리(탯줄)조차 필요 없는 강력한 디지털 커넥션과 모든 영역에서 와이파이, 블루투스, NFC 등 무선(Wireless)이 되어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요? 

Connection

클라피스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Connection은 암호화폐 지갑 회사인 Eidoo가 의뢰해 청동조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Crypto Connection’이라는 이름으로 런던 거리에서 10일 동안 전시되었습니다. 크립토 커넥션이라는 이름처럼 디지털 화폐의 미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한데 금융 중심지 런던의 암호화폐 관련 회사 앞에서 트로피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Crypto Connection

Connection이 다소 충격적인 이미지이지만 미래 디지털 세계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클라피스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개선을 위한 ‘Deep Scrolling Experience(깊은 스크롤 경험)’라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소셜 미디어 이용을 예술, 문화와 관련한 유익한 콘텐츠의 소비로 유도하고 디지털에 중독된 아이들이 전문가의 심리적 지원을 받게 하는 이벤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클라피스는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작품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예술은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네요.

Deep Scrolling Experience


지구 그리고 미래

두 번째 컬렉션인 ‘Concretes, Back to Earth(콘크리트, 지구로 돌아가기)’에서는 이전 컬렉션의 작품들이 모두 콘크리트 버전으로 바뀌었어요.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Back to Earth’라는 제목을 덧붙였는데 첫 번째 컬렉션에서 배경과 조각상의 재료(질감)가 바뀌면서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Concrete Touch Scream(콘크리트 터치 스크림)’은 노트북 모니터에서 손을 뻗고 있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외치는 모습이에요. ‘Screen’과 발음이 비슷한 ‘Scream’을 제목에 넣어 전자기기의 '화면을 터치한다'는 느낌도 준 것으로 보여요. 작품과 찰떡처럼 어울리는 제목 때문에 더욱 실감 납니다. 

Concrete Touch Scream

세 번째 컬렉션은 ‘Flooded Ruins(침수된 유적)’로 Grieving Conceptions, New Race, Digital Growth의 세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구에 있는 조각상(유적)들이 물에 잠겨 있는 가운데 작품 Grieving Conceptions(슬픔에 빠진 상념)는 VR기기를 쓴 채 기술로 구현된 가상의 아기를 안고 있는 자세의 한 여인을 보여줍니다. 몸을 약간 기울인 채 아이를 바라보는 여인은 딱딱한 돌의 질감으로 화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세월의 풍파가 홍수처럼 쏟아져도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더군다나 하반신은 아직도 물에 잠겨 있어 슬픔과 고난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군요.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현대판 버전 '폼페이의 연인'인 것 같습니다. 

Grieving Conceptions – Flooded

이 작품은 특히 항암치료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난 딸을 VR을 통해 만나게 해 준 'VR다큐멘터리 - 너를 만났다'라는 TV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잠시나마 가슴에 묻은 딸을 보기 위해 촬영에 기꺼이 임합니다. 어머니가 VR을 쓰자 딸 '나연이'가 영상으로 나와 말을 합니다. "엄마 나 예뻐? 예쁘지" "너무너무 예뻐 우리 나연이" 엄마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나연이를 어루만집니다. 비록 허공일지라도, 비록 영상일지라도. 가슴에 묻어 둔, 나의 모든 세상이자, 우주, 삶의 이유였던 사랑하는 딸을 말입니다. 그 누가 이 엄마에게 그건 단지 영상일 뿐이니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체험이 끝나면 뼈아픈 현실로 돌아와 허망함을 느끼겠지만, 이렇게나마 잠시라도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면 체험을 시도해 볼 건가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VR기술이 더욱 고도화된다면? 가상현실은 언젠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더불어 사람들의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달래줄 웰빙 비즈니스가 되어 우리 삶에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10년을 함께 살며 행복을 주었던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고, 진작 찾아뵙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그리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머잖아 익숙한 현실이 될 장면을 우리는 Grieving Conceptions을 통해 조금 먼저 만나볼 뿐입니다.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갈무리

작품 ‘New Race(새로운 인종)’는 사람의 얼굴에 전자기기가 붙어 있는 조각상입니다. 새로운 인종이 전자기기와 밀접해지다 못해 일체가 되어 인간의 주요 감각 기관의 역할을 기계로 대체했습니다. 끔찍하기까지 한 상상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마냥 확신할 수만은 없는 기술 시대의 미래입니다. 로봇과 AI, 챗GPT 등으로 대변되는 작금의 첨단 산업과 기술들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죠. 클라피스는 이처럼 우리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와 고민들을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New Race

컬렉션 중 또 다른 작품인 ‘Digital Growth(디지털 성장)’라는 작품에서는 마치 고장 난 인큐베이터에서 표류를 하는 것 같은 아기의 모습이 표현되었습니다. 홍수로 주변 상황이 온전치 않지만 아기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죠. 디지털 세상에만 있어서 주변상황을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안도감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닥칠 무지막지한 삶의 변화를 인지하면서도 기술의 요람이 제공하는 안락함으로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려 하는 서ㅛ일까요? 여러분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Digital Growth

위의 세 작품은 마지막 컬렉션 ‘Future Relics(미래 유물들)’에 다시 등장합니다. 형태는 그대로지만 세월이 흘러 금이 가고 갈라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이 유물이 되어 전시장에 보존된 콘셉트인 것으로 보이는데 신비롭고 장엄한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독특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Grieving Conception – Relics
Babydrone – Relics

미래 유물들(Future Relics)은 현대의 오브제를 미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대니얼 아샴 작가의 ‘허구의 고고학(Fictional Archeology)’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Secondary Space(두 번째의 우주) 컬렉션의 경우 대니얼 아샴 작가의 NFT작품 ‘Eroding and Reforming Floating Sculptures’와 분위기와 콘셉트가 매우 비슷하죠.

Connection(페데리코 클라피스/왼쪽)과 Eroding and Reforming Floating Sculptures(대니얼 아샴/오른쪽)

두 아티스트는 모두 네덜란드 기반의 모코 뮤지엄(Moco Museum)에서 전시 경험이 있으며 NFT아트 마켓 플레이스 니프티게이트웨이에서 민팅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서로의 작품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을 찾아서

클라피스의 작품들 중 꼭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Searching for God’입니다. 단순히 보면 그저 조금 재미있는 콘셉트의 작품 정도로 느끼기 쉬운데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작가의 많은 고민들이 투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마구간에 있는 두 사람은 VR기기를 통해 가운데 놓여 있는 지푸라기 더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성탄 구유)을 연상케 하는 장면인데 아기 예수(신)는 보이지 않고 두 사람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재미있는 장면인데요. 

Searching for God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이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 장면에서도 신은 보이지 않죠.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들은 VR로 신을 보려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신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원하는 형상대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죠.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겨지는 신의 형상을, 다시 인간이 만든 VR세상에서 창조해 내는 인간이라니.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신의 존재를 느끼고 싶은 나머지 조금 더 생생하게 체험(?) 해 보려는 시도일까요? 비록 VR 속 모든 존재가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이미지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저 지푸라기 위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을지 우리는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탄 구유의 성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죠. VR을 벗으면 실제로 있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지푸라기 위에 아기 예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작품에 실제로 등장하지도 않지만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강력한 이미지가 서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죠. 결국 VR세상의 '실체'는 우리의 '상상과 생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탄 구유

이 작품이 정말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작품 첫 장면 이후에 보이는 '시점의 이동'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 시점은 바로 현실의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인데요. 작품 영상의 첫 장면 이후부터 시점이 왼쪽을 바라보며 줌-아웃됩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본 '첫 장면'은 클라피스 작품의 전체 모습이 아닌 커다란 성당에 놓인 '설치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처음부터 다른 공간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마치 첫 장면이 작품의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첫 장면만 보면 우리는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이건 성서 속의 사람들이 VR기기를 쓰고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구나'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시점이 바뀌면서 그 첫 장면이 성당의 설치물(전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어? 내가 보던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작품의 전체라고 오해했던 첫 장면은 작품 속 VR을 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과 조응합니다. 우리가 작품을 보는 스크린이라는 틀은 곧 VR을 쓴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제한된 프레임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스크린과 작품 속 인물들이 쓴 VR기기는 모두 그 틀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죠. 이를 좀 더 연장해 생각해 보면, 시점을 이동한 후의 전체 장면(성당 전체)은 VR기기를 착용했던 사람들이 VR을 벗었을 때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VR이라는 틀을 벗고 나면 세상의 전체 모습, 그 실체가 보이는 것이죠. 이처럼 시점을 이동시킨 것만으로 우리의 얄팍한 인식의 틀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립니다. 한편으로 가상현실을 비롯한 미래 기술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얼마든지 혼동시킬 우려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죠. VR에 프로그래밍된 이미지와 틀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는 특정한 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클라피스는 묻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실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를 가짜라고 단정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작품 속 소리도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소리를 크게 하고 들어 보세요. 영상 초반부에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시점이 바뀌면서 실제 성당 내부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 문 닫는 소리 등이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사운드효과를 통해 전체 공간에 극적인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처음부터 소리가 크게 들려 실체가 곧장 드러나면 안 되니 시점의 이동과 더불어 소리가 점점 커지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신 VR기술과 수 천 년 전 성서이야기의 이질적이고 독특한 만남, 영상의 장점을 활용한 시점의 이동과 소리 효과, 가상현실의 철학적 속성을 신이라는 주제와 연결해 풀어낸 스토리텔링이 한데 어우러진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Searching for God 첫 장면
Searching for God 시점 이동(줌-아웃) 후의 장면
MetaSense


플라스틱 물고기를 구조하라!

또 다른 작품 피시 탱크(Fish Tank)는 2018년 환경 인식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가 직접 제작한 물고기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을 디지털로 표현한 것입니다. 클라피스는 해양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상징하는 이 조각에 GPS를 장착해 7일 동안 바다에 떠다니도록 했습니다. 

피시 탱크의 여정이 끝난 후 위치를 추적해 다시 건져냈는데 이 기간 동안 클라피스는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경 운동에 동참하기를 독려했습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에 호응해 해변가를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하네요.

Fish Tank 구조 장면

플라스틱을 물고기로 표현해 위협받는 해양 생태계 문제를 직관적으로 느끼도록 했을 뿐 아니라, 플라스틱을 ‘구출’함으로써 지구를 오염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행위 예술이었습니다. 

Fish Tank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을 모셔라 

클라피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와 디스코드를 활용해 자신의 NFT작품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작품을 오랫동안 보유한 소유자에게 점수(포인트)를 주고 그 점수로 순위를 매긴다는 점입니다. NFT작품을 오래 보유한 사람을 NFT에서는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s)라고 부르는데 클라피스는 ‘Diamond Ranking(다이아몬드 랭킹)’을 만들어 랭킹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추후 제작한 작품을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Diamond Ranking

작품 보유자는 추가 혜택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품을 판매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판매 작품 수가 줄어들게 되면 전체적으로 작품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는 선순환 과정이 발생합니다. 또 작품 보유자들 간의 연대감이 생기며 아티스트를 지지하는 강한 커뮤니티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혜택의 남발이나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닌 정량화된 포인트 제도로 장기간 팬과 커뮤니티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합니다. NFT예술에서는 예술가와 작품 보유자들간의 유대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Pak이다"

클라피스는 스스로를 미지의 유명 NFT아티스트인 Pak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패리스 힐튼도 자신을 Pak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정작 Pak의 계정에서는 그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아 여전히 Pak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클라피스 트위터
패리스 힐튼(Paris Hilton)과 클라피스

그가 Pak이든 아니든 유튜버에서 배우, 크립토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전략과 독창적인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것은 분명합니다. 클라피스는 연기자와 유튜버로 활동했던 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스타성을 겸비한 데다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소셜 미디어 또한 활발하게 이용합니다. 

클라피스 트위터

소셜 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리고 나서 댓글을 달아 달라는 말을 항상 덧붙이며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봅니다. 그는 그 이유로 “사용자의 해석은 작품의 일부로서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소셜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는 커뮤니티 내에서 댓글을 달고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Human Archeology

뛰어난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NFT아티스트로서 덕목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대중과의 의사소통 능력과 스타성을 갖추었으며 "디지털 예술이 점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실물 예술만큼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라며 꾸준히 활동 중인 클라피스.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NFT예술의 광활한 우주를 열어젖혀 주길 기대합니다. 



• 글쓴이 인스타그램  - 다양한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odd_msm/


• 컬렉션

니프티게이트웨이  https://www.niftygateway.com/@federicoclapis/collections

슈퍼레어  https://superrare.com/federicoclapis


• 소셜 미디어 & 참고 링크

웹사이트  https://www.federicoclap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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