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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Aug 15. 2023

생성 예술, 83억 거위의 탄생 – 드미트리 체르니악

아버지와 아들의 콜라보

생성 예술? 뭘 생성한다는 거야

생성 예술. 시작하자마자 낯설죠?

게다가 예술가 이름은 드미트리 체르니악. 낯설기 X2. 

벌써 뒤로가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 이건 어떤가요?

체르니악의 생성 예술 작품 OO는 올해 6월 8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그림.

이 단순한 그림을 누가, 왜 83억이나 되는 큰 돈을 주고 샀을까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생성 예술의 재미있는 요소들과 함께, 이 분야 대표주자이자 2023년의 가장 핫한 NFT아티스트인 드미트리 체르니악을 만나보겠습니다.

드미트리 체르니악(유튜브 인터뷰 갈무리)

드미트리 체르니악(Dmitri Cherniak/ 이하 체르니악)은 캐나다 출신의 생성 예술(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 아티스트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NFT아트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특히 생성 예술 NFT는 컴퓨터 코딩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아트 테크의 최첨단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성 예술은 예술가가 컴퓨터로 코딩해 만든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을 말하는데, 그 때문에 생성 예술가는 코더(Coder) 즉, 프로그래머이기도 하죠.

체르니악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생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이런 배경이 코딩 예술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했는데 예술에도 관심 있어 세밀한 연필 드로잉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사실 생성 예술은 대중들에게 디지털 아트 분야 중에서도 특히 더 생소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게다가 프로그래밍으로 컴퓨터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따라오기도 하죠. 특히 코딩이라는 '기술' 용어는 생성 예술에 적절한 예술적 지위를 부여하길 꺼리게 하고 묘한 괴리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한 마디로 '이런 것도 예술인가?' 싶습니다. 미드저니(MID JOURNEY), 달-이(DALL-E)와 같은 뛰어난 인공지능 예술 창작 툴로 몇 초 만에 높은 퀄리티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그저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한 코딩을 예술로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죠. 여러분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때도 아니라고 했지 - 인상주의, 고흐, 그리고 뒤샹 

예술에 대한 평가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겁니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은 당시 파리 살롱 전시에서 낙선해 따로 전시를 열었고 이마저도 조롱당하며 ‘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유명한 고흐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며 평생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불행한 삶을 마무리해야 했죠. 전시에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뒤샹의 ‘샘’은 어떤가요? 변기를 떼어다 놓고 예술이라니! 하지만 2024년 현재. 모네, 고흐, 뒤샹의 작품들은 예술사에서 어떤 지위를 누리고 있나요? 

샘 -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머리로는 새로운 예술에 수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상 새로운 예술 형태를 접하면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코딩이라는 말에 손톱만 한 반감이 생기거나 “나는 예술에 관심 있지, 컴퓨터 코딩 따위에는 관심 없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새로운 예술이 등장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생성 예술에서도 예상치 못한 재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지 모르니 조금만 귀를 열어볼까요?


생성 예술 감상법 – 내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사실 특별한 감상법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느낄 테니까요. 다만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정도로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생성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겠습니다. 생성 예술은 예술가가 입력하는 특정한 속성 값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형태, 크기, 길이, 색상, 패턴, 역동성 등 다양한 속성과 범위를 지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 무작위로 조합된 형태가 결과물로 나타나죠. 코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대략적으로 결과물의 형태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유전자에 따라 둘을 닮은 아이가 탄생하지만 수많은 변수 때문에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정확한 얼굴을 알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가 '속성'이라면 유전자의 조합을 만드는 건 '코딩', 그 조합으로 나온 아기가 곧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체르니악의 다양한 링어스 작품들

이처럼 ‘정확하게 예상이 안된다’는 점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영화를 보려고 할 때 누군가 영화의 결론을 먼저 말해버리면 스포일링이라고 하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스포일링을 아주 싫어합니다. 재미와 기대감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코딩 예술은 최종적으로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즉 구매 전까지 구매자가 갖게 될 작품의 모양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이 파도처럼 몰아치게 됩니다. "대체 내가 산 작품이 무엇일까?"라면서 말이죠. 무슨 모양인지도 모르고 작품을 사는 별난 세상이에요. 어떤 선물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산타클로스의 양말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두근거렸던 작품이 애초의 기대보다 훨씬 예쁘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나온다면? 사람 좋은 얼굴로 '헤헤~' 하던  단짝 친구가 알고 보니 CIA 비밀 요원으로 밝혀지는 영화처럼 예상과 다른 반전의 모습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뽑기 왕이 된 듯한 작지만 큰 희열을, 컬렉터는 느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아니 이런 모습이 나온다고? 내 새끼 참 잘 생겼네!" 하면서 말이죠. 

또 특이한 이미지의 생성예술 작품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매우 큰 관심을 갖게 돼요. 재미도 있고 신기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큰 돈이 될 수도 있겠죠? 바로 위에서 보았던 ‘거위(구스, The Goose)’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동그라미와 선을 무작위로 연결시켰는데, 귀엽고 노란 거위가 탄생했기 때문이에요. 링어스(Ringers)라는 컬렉션의 한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매우 특출나게 눈에 띄는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말뚝(동그라미)의 위치, 크기, 색 그리고 마치 일부러 거위 모양을 만들고 싶었다는 듯이 선들이 연결되어 얼굴, 날개, 입을 구성한 절묘한 조합. 선, 색, 면, 이음, 각도, 위치, 크기까지. 이렇게 절묘할 수 있나요? 영락없이 날개를 펼친 노란 거위가 자기를 알아봐 달라는 듯 꽥꽥 소리치는 것 같지 않나요? 사람들은 곧장 반응합니다. "와 이건 그냥 거위네. 쏘~쿨!"

"아니 그렇다고 해도 만들다보면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코딩에서 나온 다른 작품들인 아래 이미지들을 볼까요?동그라미와 선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말고는 딱히 공통점을 찾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만큼 각양각색이고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죠. 그 와중에 이런 거위 모양이 탄생한 것입니다. 

The Goose(Ringer #879)
같은 컬렉션의 다른 링어스들

생성예술이 재미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겁니다. 같은 코딩으로 생성된 작품들은 두 개 이상이 동일한 색과 모양으로 나올 확률이 거의 없어요. 구매자는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작품을 갖게 되죠. 유사한 모양의 작품이 나온다 해도 블록체인에 각각 따로 기록되는 이상 모든 작품은 유일무이합니다. 민팅이 되는 그 순간 자동으로 생성된 거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한 순간, 유일한 모습, 유일한 기억. 현재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우리의 모습 같지 않나요? 우주 유일의 존재로 살아가는 개별적 자아들이 거위의 이미지에 오버렙되는 것이죠.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하는 작품이에요. 이런 작품을 수집한다면 컬렉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이 작품이 값비싸게 낙찰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샘플 보시고 주문하세요

대표적인 생성 예술 플랫폼인 아트 블록스(Art Blocks)는 생성 예술의 특징을 활용해 구매자들의 기대심리를 한껏 높여 놓습니다. 아트 블록스는 생성 예술 작품을 미리 제작한 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샘플 작품을 받아 심사를 거쳐 공개합니다. 구매자는 그 샘플들을 보고 대략적인 이미지를 가늠한 후 자신의 취향과 맞으면 미리 작품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 후 정해진 일시에 작품 판매가 완료되는 순간 실시간으로 조합된 따끈따끈한 작품들이 구매자의 지갑으로 들어오죠. 그때서야 구매자는 최종적으로 구매한 작품의 모양을 알 수 있습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이 아닌 수요가 있을 때만 제작되는 온디맨드(On- Demand) 작품인 것입니다. 

아트 블록스 웹사이트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도 당연히 중요한 감상 요소예요. 색과 형태의 배치, 패턴의 조합이 아름다워서 큰 관심을 받는 작품들도 많거든요. '피덴자(Fidenza)'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타일러 홉스(Tyler Hobbs)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어 온 대표적인 생성 예술가입니다. 타일러 홉스는 QQL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체르니악과 협업하여 작품을 민팅하기도 했어요. 체르니악과 더불어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던 생성 예술의 가치를 전세계에 알린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코딩에 담긴 인간의 손맛

생성 예술은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화 작품을 만들 때 스케치를 하듯 생성 예술에서도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코딩이라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수차례의 코딩과 수정을 통해 다양한 미적 실험을 하고 자신의 예술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결과물을 고안해 내요. 아무 속성값이나 랜덤으로 막 넣어 보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체르니악은 "생성 예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모든 걸 하는 것 같지만 인간의 철학, 심성, 손길이 생각보다 깊숙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알고리즘은 결국 예술가의 철학을 담아내는 도구이자 그릇일 뿐입니다. 그림움일지, 사랑일지, 좌절일지. 예술가는 표현하고 관객은 보고 느낍니다. 각자 마음껏 상상하고 느껴보자구요. 오롯이 나의 시간, 나의 감정이니까요. 창작을 위한 고민의 시간과 사색은 붓 끝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세기 미술사와 생성 예술 - 라이트 이어스(Light Years)

생성 예술이라는 낯선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생성 예술가 드미트리 체르니악의 작품들을 살펴볼게요. 체르니악은 NFT가 알려지기 이전부터 디지털 아트 작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는 다른 생성 예술가인 Jared Tarbell과 Zach Lieberman의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Zach Lieberman은 현재까지도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요. 

The verge(Zach Lieberman)

뿐만 아니라 헝가리 태생 예술가이자 예술이론가인 모홀리 나기(Moholy Nagy/1895-1946)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적이 있어요. 모홀리 나기는 주로 사진을 다루었는데 미래에 기술의 발전이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줄 것임을 예견하며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체르니악이 2022년 12월 1일에 민팅한 NFT컬렉션인 ‘라이트 이어스(Light Years)’는 모홀리 나기의 예술 아카이브(작품을 포함한 기록물)를 살펴본 후 그의 가족들과 협업해 제작한 컬렉션입니다. 

Light Years

그는 라이트 이어스 프로젝트를 통해 “20세기의 미술사와 오늘날의 제너러티브 아트를 연결하여, 세대는 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Light Years’라는 이름도 그런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요. 빛의 속도로 20세기와 21세기 미래 미술을 연결해주면 좋겠습니다. 멋진 예술들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모홀리 나기(왼쪽) / Komposition-a-xxi(모홀리 나기/ 오른쪽)

체르니악은 모홀리 나기의 예술과 기술 융합에 대한 비전에 공감했을 뿐 아니라 10년 간 스타트업의 CTO(최고기술경영자)로 재직했던 기술 전문가였기에 예술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NFT아트에 뛰어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미학이나 미술 전공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엔지니어링 전공자들이 NFT 아트계에 특히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체르니악이 본격적으로 생성 예술 아티스트로 알려진 것은 아트 블록스에서 링어스(Ringers) 시리즈를 민팅하면서부터인데요. 링어스는 그를 NFT 생성 예술계의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작품들일까요?


말뚝을 박고 끈으로 이어라 - 링어스(Ringers) 

1,000개의 링어스 컬렉션은 ‘말뚝’과 ‘말뚝들을 이어주는 끈’을 상징하는 동그라미와 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21년 2월에 만들어진 컬렉션으로 작품들은 1~1,000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각기 무작위의 형태로 블록체인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중 #109 RINGER는 2021년 10월 710만 달러(한화 약 95억 원)에 판매되면서 아트 블록스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판매된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작품 구매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작품을 최초 230달러에 구매했던 기존 소유자는 이 판매를 통해 6개월 만에 320만%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죠.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기막힌 상승률이었습니다. 이처럼 높은 가격으로 팔린 이유는 109번 링어가 가진 매우 높은 희귀도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작품과 거위(The Goose) 작품을 비교해 보세요. 많이 다르죠? 같은 코딩에서 나왔지만 편차는 이렇게 큽니다. 거위가 흥행을 한 이유 중 하나겠죠.

#109 링어스

또 다른 링어스 #962 RINGERS에는 특별한 인연이 숨어 있어요. 바로 대형 NFT아트 수집가인 코조모(COZOMO)입니다. 962번 링어스의 소유자였던 코조모는 올해 2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인 LACMA(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962번 링어스를 포함해 기념비적인 NFT작품 22점을 기부합니다.크립토 펑크, 클레어실버와 모니카 리졸리의 1 OF 1 작품 등 역사성을 지닌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LACMA에 기부된 코조모 소유의 작품들


이 NFT작품들은 모두 LACMA의 영구 컬렉션에 추가되었는데 그는 작품들을 기증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어요.

렘브란트, 피카소, 프리다 칼로와 같은 물리적 작품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 컬렉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정말 원대한 포부의 예술사적 전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조모가 아무리 대형 컬렉터고 돈이 많다지만 자신이 아끼는 소장품을 22점이나 기부하는 것은 보통의 신념이 아니면 어려울 텐데요. NFT아트가 기존 걸작 예술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길 바라는 간절함과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컬렉터로서 품격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코조모의 멋진 문장이었습니다. 


그림 속 거위는 황금알을 낳고 – The Goose(Ringer #879)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2023년 6월 탄생합니다. 바로 링어스 879번이 소더비 경매를 통해 620만 달러, 한화 약 83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낙찰되었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모습에 귀엽지 않은 가격! 


소더비 경매에 올라간 #879 링어스

다른 링어스 작품들은 추상적인 느낌인데 반해, 879번 링어스는 영락없는 거위의 이미지를 갖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패러디하며 거위의 낙찰을 축하해 주었는데 그중에는 유명 NFT아티스트 비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링어스 879번은 대체 누가 왜 구매했을까요?

비플의 거위 밈

링어스의 구매자는 크립토 펑크 6529번의 소유자이자 ‘PUNK #6529’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수집가였어요. NFT수집가, 투자자,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데 흔히 '육오이구'라고 숫자로 불러요. 영어로는 '식스파이브투나인'인데 한글은 짧아서 좋다는 TMI.

펑크 6529의 낙찰 소식을 알리는 소더비 트위터

6529는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동향을 주시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The Memes by 6529'라는 NFT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설립자(Founder)이자 컬렉터예요. 제목처럼 밈(Meme) 문화를 중심으로 NFT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죠. 그만큼 그는 NFT아트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번 구매도 그 일환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낙찰이 확정된 후 그가 한 말을 들어 볼까요?

알고리즘이 블록체인에 투입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거위는 그 어떤 생성형 NFT보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링어스 발행을 수천 번 반복해도 이와 유사한 작품은 다시 생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수천번 반복해도"라고 할 정도로 자신이 산 링어스는 앞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유일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위와 생성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정확히 짚어낸 발언입니다. 코조모가 소장 작품들을 기부하며 NFT 사랑의 마음을 잔잔히 드러냈다면 6529는 경쟁 옥션에 뛰어들어 정면 승부하면서 NFT아트의 가치를 치열하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The Memes by 6529

거위가 원래 압류자산이었다고?

거위와 관련해 빠지면 섭섭할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이번 경매에서 처음으로 판매된 것이 아니었어요. 3AC(Three Arrows Capital)라는 암호화폐 헤지펀드가 2021년 580만 달러에 구입해 소유하고 있었죠. 그런데 3AC가 루나 사태 등 암호화폐 시장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하자, 3AC의 채권자들이 3AC가 보유하고 있던 NFT들을 압류해 처분하기 시작했는데 거위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기존 소유자의 파산으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특이한 경매 사례였던 것이죠. 

소더비 경매에 등장한 3AC의 NFT 작품들

3AC의 압류 자산 중 경매에 올라온 작품으로는 아트 블록스 설립자이자 아티스트인 스노우프로의 크로미 스퀴글즈 #1780, 타일러 홉스의 피덴자 #216, 라바 랩스의 좀비 크립토펑크 #6649, 오토글리프 #187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매우 희귀하고 유명한 생성 예술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 작품들은 하나하나 따로 다루어도 될 만큼 NFT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인데 예술적 가치를 토대로 작품들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에게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데드 링어스(Dead Ringers) – 사람을 살리는 끈

데드 링어스는 Dead라는 말이 앞에 붙은 것처럼 "링어스의 생일과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발행된 작품입니다. 체르니악은 2022년 1월 한 달 동안 매일 새로운 작품을 생성해 거의 사용되지 않는 무작위의 블록체인 지갑 주소로 작품을 전송했는데 그 지갑들은 한 번도 활성화되지 않았거나 접근이 불가한 지갑들이었다고 합니다. 기존 링어스보다 복잡한 형태이고 삶과 죽음의 양면처럼 흑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구매 금액은 0.05 이더리움이었는데 23,469명이 민팅을 해 하루 만에 약 37억 원을 벌어들입니다. 하루 만에 37억이라니. 혹시, 부러우신가요?

Dead Ringers

이 수익금 전액은 당시 코로나로 심각한 식량 부족 문제를 겪고 있던 뉴욕시 푸드뱅크에 기부되어 뉴욕 시민들의 식사로 제공되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멋지고 부러운 일입니다. 데드 링어스 컬렉션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은 있으나 정확한 의도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설명은 찾지 못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언가 하고 싶어서 컬렉션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해석을 붙인 것 같다는 의심(?)이 조금 듭니다. 아무렴, 좋은 일 하겠다는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공대 출신' 코딩 예술가지만 링어스 하나하나의 말뚝들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듯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감을, 체르니악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한국

체르니악의 아버지는 체르니악의 예술을 지지하고 알리려 노력한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2023년 1월 1일, 하늘나라로 향합니다.

체르니악과 아버지

체르니악은 물심양면 자신을 뒷바라지해 온, 어쩌면 본인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체르니악의 예술을 위해 헌신해 온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트위터에 담담하게 남깁니다.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는데 너무 담담하게 글을 남겨 오히려 더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 아버지가 첫 개인전을 열도록 도왔고, 거의 모든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작품이 완벽해 보이도록 직접 작품을 전시장에 걸기도 했다고 합니다. 체르니악 몰래 토론토에서 가장 큰 미술관(Royal Ontario Museum으로 추측됩니다)의 CEO에게 메일을 보내 작품을 소개한 적도 있다고 해요. 이 때 미술관 측에서는 그에 대해 답장을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박물관을 그들에게 비공개로 둘러보게 해 주었습니다.

체르니악과 아버지

미술관에 방문한 이 부자는 미술관 측과 크립토 아트(NFT아트)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캐나다 예술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체르니악은 실제로 캐나다의 대표 생성예술 NFT아티스트가 되어 소더비에 진출합니다. 아들의 예술을 위해 발 벗고 뛰는 아버지, 예술가를 존중하는 미술관, 그에 보답하는 예술가의 성공. 그야말로 3박자가 조화롭게 맞아떨어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겠지만 체르니악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의 성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요? 

올해 초 장례를 위해 서울에 왔고 가족들이 한국에 산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한국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체르니악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데요, 그래서인지 한국어 글자를 넣은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의 이름인 것 같은데 무엇을 의미하든 보시는 분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고연진?


타일러 홉스와의 협업 - 서울

타일러 홉스의 생성예술 프로젝트인 ‘QQL’에 체르니악이 일부 협업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해당 프로젝트의 사이트에서는 체르니악이 제작한 ‘서울(Seoul)’이라는 이름의 색상 팔레트(Palette)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QQL 웹사이트

이외에도 '마이애미', '피덴자'라는 이름의 다양한 색상 팔레트를 이용해 일반인들이 직접 제너러티브 아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래는 제가 만들어본 생성 이미지인데 직접 한 번 만들어보면 생성 예술이 무엇인지 가볍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몇 가지의 속성만 선택하면 자동으로 만들어지니 여러분들도 재미 삼아 만들어 보세요.(메타마스크 지갑도 필요합니다.) 

저자가 만든 이미지


과연 우연이었을까

발음은 조금 어렵지만 생성 예술이라는 낯선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과 역량을 적절히 활용해 예술적,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드미트리 체르니악. 그런데 링어스 컬렉션에서 거위가 탄생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체르니악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팬들과 컬렉터들의 확고한 지지가 없었다면 우연히 만들어진 거위 모양만으로 그렇게 큰 흥행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체르니악의 작품 활동과 아버지의 지원이 차곡차곡 역사를 만들어 냈고 신뢰가 쌓이면서 '체르니악의 생성 예술'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을 것입니다. 귀여운 거위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죠. 어쩌면 체르니악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보여준 아름다운 연대의 가치가 끈으로 서로를 이어 준 거위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컬렉션

메이커스 플레이스  https://makersplace.com/dmitricherniak/gallery/created

라이트 이어스  https://lightyears.fellowship.xyz/

슈퍼레어  https://superrare.com/dmitricherniak

오픈씨(링어스)  https://opensea.io/collection/ringers-by-dmitri-cherniak

오픈씨(라이트 이어스)  https://opensea.io/collection/light-years-by-dmitri-cherniak

오픈씨(이터널 펌프)  https://opensea.io/collection/the-eternal-pump-by-dmitri-cherniak

오픈씨(데드 링어스)  https://opensea.io/collection/dead-ringers-by-dmitri-cherniak 

아트블록스  https://www.artblocks.io/user/0xe0753cfcabb86c2828b79a3ddd4faf6af0db0eb4?section=projects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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