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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Jan 25. 2023

하나였을까요, 우리는? - 해커타오

크립토 아트의 단군 할아버지

하나였을까요, 우리는?

해커타오는 부부 아티스트 팀입니다. 모두 이탈리아 태생으로 밀라노에서 만나 알게 되었는데 둘 다 광고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HACKATAO란 이름이 상당히 독특한데요. HACK과 TAO를 합한 말로 HACK은 말 그대로 ‘해킹’을 의미하는데, 현상의 내부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고 예술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이라고 해요. TAO는 ‘도(道)’의 영어식 발음으로 스스로를 음과 양의 조화와 역동적인 균형 안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해 붙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같은 업계에서 만나 같은 일을 하며 지금까지도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그야말로 음과 양의 조화를 몸소 보여주는 듯합니다. 

해커타오 전시


크립토 오리지널 갱스터(Crypto Original Ganster)

오리지널 갱스터(Original Gangster/OG)는 본래 어떤 분야의 창시자를 지칭하는 속어인데,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처럼 암호 화폐를 창시하거나 초기에 투자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일반적으로 오지(OG)라고 짧게 줄여 말합니다. 크립토(NFT) 아트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초기에 진입해 명성을 날리고 있는 크립토 오지(Crypto OG)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해커타오(Hackatao)입니다. 유명한 OG아티스트에는 X-copy, Joe Looney, Pascal Boyart 등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미술로 비유하자면 근현대 한국의 추상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 유영국 화백과 같이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본래 디지털 아트를 해오던 해커타오는 NFT시장규모가 통계에 잡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했던 2018년에 NFT를 시작했어요. 2018년 통틀어 전 세계 NFT 아트 거래량이 26만 달러로 2023년 환율 기준 약 3억 4천만 원이었고 거래 작품 수도 2천 개 수준이었습니다. 2022년 국내 미술시장 매출이 1조 원 이상인데 전 세계 NFT아트 거래가 그 정도였으니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NFT작품을 판매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던 때죠. 이런 시기에 크립토 아트를 시작한 해커타오는 독특한 콘셉트와 단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며 크립토 아트 시장을 선점하게 됩니다. 

측정이 어려운 2018년 NFT 시장규모


슈퍼레어 최초 민팅 아티스트

해커타오는 즐겨보던 'The sciences'라는 과학 잡지에서 블록체인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이를 예술과 접목할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큰 관심을 갖고 구글링을 하던 중 제이슨 베일리(Jason Bailey)라는 블로거의 ‘크립토 아트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접하고 전율을 느낄 정도의 큰 영감을 받습니다. 해커타오는 제이슨에게 곧장 연락했고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제이슨은 당시 NFT마켓 플레이스 론칭을 준비 중이던 '슈퍼레어'측과 해커타오를 연결해 줍니다. 슈퍼레어는 현재 가장 유명한 아트 플랫폼이 되었지만 해커타오를 소개했던 당시에는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요. 어쨌든 제이슨의 소개로 해커타오는 슈퍼레어에서 작품을 판매한 1호 아티스트가 됩니다. 그야말로 NFT아트 역사의 또 다른 한 페이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해커타오는 이전부터 예술, 과학 분야에 관심과 지식이 있었던 데다 곧바로 필요한 일을 찾아 진행시키는 추진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운도 따랐겠지만 블록체인과 예술의 접목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안목이 오늘날 해커타오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해커타오가 읽은 Jason Bailey의 블로그 글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NFT로 만드는 것을 ‘민팅’이라고 하는데요. 슈퍼레어 최초로 해커타오가 민팅한 작품은 ‘Girl next Door’라는 제목을 갖고 있어요. 해커타오, 슈퍼레어 그리고 팬들 모두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Girl next Door는 사람 얼굴 안에 마치 타투를 하듯이 다양한 그림과 문자들을 새겨 넣었는데 이는 해커아토의 전형적인 크립토 아트 스타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퍼레어는 최초 민팅 이후 Xcopy, OSF 등 수많은 스타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대표 NFT아트 플랫폼으로 거듭납니다. 

Girl next Door / 슈퍼레어 1호 작품

조각에 내러티브를 입히다

해커타오 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아트스타일은 초기 조각 작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패션과 예술의 도시인 밀라노에 살던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해커타오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Potmork’라는 이름의 귀여운 조각품으로 탄생합니다.

Potmork

4cm 크기의 이 작은 예술 작품을 만들고 주위의 아트 갤러리와 디자인 숍 등에 전시했는데 금방 매진되었다고 해요. 시장성 테스트 완료. 이후 이를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Potmork의 두개골과 사람의 얼굴을 합성해 현재 해커타오의 트레이드마크 디자인이 탄생합니다. 사람 얼굴 윤곽을 한 명이 디자인하고 그 얼굴 안에 들어가는 그림들을 다른 한 명이 그려 넣으며 역할을 분담해 작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음과 양, 안과 밖, 이미지와 내러티브. 그리고 조화. 해커타오의 일관된 철학이 엿보입니다. 

디지털 아트 전환 과정


앤디 워홀을 기리며, “HACK THE BORDERS”

해커타오는 오랜 기간 작품을 만들어온 만큼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특히 미국 펑크 록밴드 블론디(Blondie)와 협업해 만든 ‘HACK THE BORDERS’는 대표적인 시리즈 작품입니다. 블론디의 멤버이자 앤디 워홀의 친구이기도 했던 데비 해리(Debbie Harry)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앤디 워홀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그런데 HACK THE BORDERS, '경계를 해킹하라'가 제목이네요. 뭔가 의미 심장하죠? 왜 이런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한 번 볼까요?

HACK THE BORDERS(니프티 게이트웨이)

우선 블론디는 1970~80년대 상업적인 대중성을 바탕으로 호주, 미국, 영국 등에서 펑크 음악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이에요. 보컬 데비 해리, 기타리스트 크리스 스타인(Chris Stein)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궁금하신 분은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셔도 좋아요. 7080 미국 대중음악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거든요. 

이 둘은 당시 팝아트의 선구자로 이름을 날리던 앤디 워홀과도 작업을 같이 하며 친분이 있었어요. 그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도 꽤 많죠. 앤디 워홀이 생존했을 당시 데비 해리가 앤디 워홀 사진 작업의 모델이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이번 해커타오와의 협업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 모델이 되어 해커타오의 스타일로 재현됩니다. 

앤디 워홀과 데비 해리(블론디)

블론디는 미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선도했던 만큼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열려 있었어요. 블록체인과 NFT를 접하게 된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앤디워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리고 싶었던 겁니다. 블론디는 크립토 아트의 선두주자였던 해커타오와 협업을 제안합니다. 예술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앤디 워홀을 기리는 작업인데 해커타오가 마다할 리 없습니다. 

데비 해리와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1987년에 사망했지만 만약 살아 있었다면 93번째 생일이 되었을 2021년 8월 6일에 HACK THE BORDERS가 탄생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해커타오 아티스트 두 명과 앤디 워홀까지 3명의 생일이 모두 8월 6일이라는 것입니다. 해커타오와 데비 해리, 앤디 워홀이 비록 한 공간에서 만나진 못했지만 NFT 아트라는 예술을 통해 이어지게 된 것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것 같네요. 해커타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블론디의 음악과 상징적인 유산처럼 우리의 예술을 시대를 초월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블론디와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밴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음악과 예술의 역사와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음악과 예술의 역사와의 콜라보레이션. 음악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기. 그것이 바로 HACK THE BORDERS가 의미하는 바였을까요? 앤디 워홀은 시대를 넘어 오늘과 연결되었고 그 연결의 중심에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끝없이 쌓고 연결해 나가는 블록체인처럼 말이죠. 소멸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자신의 존재감을 빛내면서. 음과 양, 안과 밖, 너와 나. 그들은 블록체인이라는 우주 속에 그물처럼 연결됩니다. 

Hack-the-Border_Douane-Zoll (데비 해리의 시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데비 해리는 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술의 확장과 발견은 앤디가 그랬던 것처럼 항상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나는 Hackatao와의 협업으로, 올해 앤디의 생일에 그와의 추억을 기념하기 위한 이 아이디어가 아주 맘에 듭니다.


그렇습니다. 기타리스트인 크리스 스타인도 만약 앤디 워홀이 살아 있었다면 NFT를 만들었을 거라고 얘기할 정도로 앤디 워홀은 예술에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앤디 워홀은 당시 광고 업계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사용하던 실크스크린 기법을 미술에 적용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돈 밝히는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죠. 미술에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고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예술가들은 크나 큰 비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혁신성을 띈 예술들은 시간이 지나 재평가를 받으면서 새로운 예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히곤 했습니다. 마네와 뒤샹 그리고 앤디 워홀처럼 말이죠.

최근에는 그 비난의 화살이 NFT아트로 향하기도 했는데요. 누구나 저장이 가능한 파일 조각이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냐는 것입니다. 저장뿐만 아니라 복제도 가능한데 말이죠. 세계적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도 "NFT아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NFT아트 투자에 앞장선 사람들을 '국제적 사기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복제를 통해 작품을 대량생산한 앤디 워홀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볼까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같은 이미지를 수 차례 반복해서 복제한 - 기술적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 앤디 워홀의 작품은 왜 오늘날 현대미술의 대표아이콘으로 추앙받는 걸까요? 반면 무한히 복제가 가능하고 누구나 저장이 가능한 NFT아트는 왜 같은 이유로 '사기'와 '거품'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는 걸까요? 앤디 워홀은 복제를 통한 대량생산으로 미술의 신기원을 펼쳤는데 NFT아트는 예술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모두 괜찮습니다.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니까요. 이 작품들의 배경 음악에는 데비 해리가 직접 쓰고 말한 시와 크리스 스타인의 반주가 포함되어 있으니 소리를 들으며 감상해도 좋습니다. HACK THE BORDERS는 니프티 게이트웨이라는 NFT 아트 플랫폼에서 총 3개의 컬렉션, 12종의 NFT로 만들어져 당일 모두 판매되었는데, 현재 가장 저렴한 작품은 1,200달러, 가장 비싼 작품은 5백만 달러에 구매가 가능합니다. 

Hack-The-Borders
소더비 경매 작품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2022년 4월 30일부터 7월 20일까지 우리나라 강릉에 위치한 아르떼뮤지엄에서는 <[SPIRIT FOREST] INCANTO>라는 제목으로 해커타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습니다. 

강릉 아르떼 뮤지엄 전시작품 / [SPIRIT FOREST] INCANTO

해커타오는 정치, 사회, 환경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특히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 살면서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곰, 사슴 등 자연을 소재로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예쁜 사슴이 등장하는 SPIRIT FOREST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전시 당시 해커타오는 한국을 직접 방문했었고 한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여담이지만 해커타오에게 이 글을 영어로 번역해 보내주었는데, 자신은 한글이 좋다며 한글 원문으로 보고 싶으니 다시 보내 줄 수 있냐고 하더군요.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글을 읽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의아해하면서도 보내주었는데요. 해커타오는 한글로 쓰인 글을 스크롤하며 보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더군요. "한글은 어찌나 아름다운지!"라는 문구와 함께 말이죠. 예쁜 한글을 알아봐 주는 해커타오의 감성에 오히려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기후변화를 다룬 작품 FLOOD
한국 방문 당시 해커타오의 트윗

이외에도 해커타오는 2023년 현재에도 진행 중인 NFT프로젝트 ‘QUEENS+KINGS’를 포함해 ‘BEYOND THE VOID’, ’HACK OF A BEAR’ 등 대중적이면서도 자신들의 철학을 내포한 크립토 아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QUEENS+KINGS
Hack of A Bear

또한 해커타오는 크립토 아트의 본질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실험적인 아티스트 그룹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NFT아트 세계의 진정한 ‘오리지널 갱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오지 아티스트들은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심지어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노출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대화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Sandy라는 대리인이 참석해 대신 이야기를 하죠. 해커타오의 이미지와 철학을 온전히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NFT아트의 큰 재미 중 하나는 현존하는 작가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인데요. 해커타오는 목소리나 얼굴을 노출하지 않을 뿐이지 작품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소통하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직접 말을 걸어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면 어떨까요? 아주 간단히 GM(Good Morning)만 해봐도 좋습니다. 해커타오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디스코드,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에서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 아래의 링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가 링크

• 홈페이지 https://hackatao.com/

• 트위터 https://twitter.com/Hackatao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ackatao/

• 디스코드 https://discord.gg/hackatao

• 퀸+킹 프로젝트 https://queenskings.hackatao.com/

• 퀸+킹 프로젝트 https://queenskings.likey.wtf/


작품 공간

• 메이커스 플레이스 https://makersplace.com/hackatao

• 슈퍼레어 https://superrare.com/hackatao

• 니프티 게이트웨이 https://www.niftygateway.com/profile/hackatao

• 니프티 게이트웨이 HACK THE BORDERS 컬렉션 종류

    HACK THE BORDERS - Open Editions by Hackatao + Blondie

    HACK THE BORDERS - POP and PUNK SPECIAL DRAWINGS by Hackatao + Blondie

    HACK THE BORDERS - DOUANE ZOLL - QUAD SPECIAL DRAWINGS by Hackatao + Blondie

• 에이싱크 https://async.market/u/hackatao/collection

• 오픈씨 https://opensea.io/collection/queenskingslab

• 오픈씨 https://opensea.io/collection/queenskings-genesis

• 오픈씨 https://opensea.io/collection/queenskings

• 노운오리진 https://knownorigin.io/hackatao

• 아트 하우스 https://art.haus/hackatao-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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