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Dec 25. 2023

영원한 산타가 되어줄게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선물을 갖다 놓는 거야?"

"어떻게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아는 거야?"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있어?"


크리스마스마다 007 작전을 펼치던 8년이 지나 9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며칠 전, 머리가 크면서 산타에 대해 궁금해하던 아이가 어김없이 또 질문을 했다. 그전까지 남편이 슬쩍슬쩍 산타의 비밀을 흘리려 할 때도, 즐겨보는 대중매체에서도 산타에 대해 나올라치면 얼른 끄거나 다른 것을 틀며 아이의 동심을 지키려 했던 나다. 그런데. 반복되던 질문에 더 이상 핑계 댈 게 없던 엄마산타는 결국 비밀을 폭로하고 말았다.

"들으면 후회할 텐데 괜찮겠어?"

"괜찮아~진짜 알고 싶어."

2학년이나 됐으니 친구들한테 듣거나 이미 눈치챘을 거라 생각했다. 몇 번이고 괜찮겠냐 물어본 뒤 나는 결국 진실을 말했다.

"사실.. 엄마, 아빠가 주는 거야."


아니, 예상과 다르게 적잖이 충격받는 표정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서둘러 동심이 덜 깨지게 덮어보았다. "산타가 있긴 있어, 그런데 전 세계를 다 돌 수 없잖아~ 그래서 부모님이 대신 주는 거야~"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괜찮겠냐 물어본 덕분인지 나를 원망까진 안 했지만 괜히 알았다 싶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선물 받는 건 변함없지 않냐는 말로 미소를 되찾은 아이는 여전히 산타가 주는 선물인 것처럼 이벤트를 해달라 했다. 미안한 엄마는 평소 사주지 않는 슬라임으로 상자를 꽉 채워주었고 아이는 흡족해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다시 크리스마스가 왔다. 일 년 새 관심사가 바뀐 그녀였다. 포카 꾸미기가 취미인 그녀는 최근 들어 용돈을 취미생활에 탕진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포토카드는 안된다길래 카드 한 장 얻기 위해 아이돌 앨범을 여러 개 살 수는 없으니 사진 인화해 주는 앱으로 뽑아주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선물리스트에 앨범이 오를 줄이야.


아이브 디지팩 몇 장을 갖고 싶단다. (디지팩이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선물가격을 5만 원 이하로 정해주었더니 만원 대인 앨범 세장에 남은 금액은 아트박스 가서 몇 개 고르겠다 한다. 사진 때문에 같은 앨범 세장은 아닌 것 같다 하니 두장만 고르고 러키드로우 포카 한 장을 선택해서 주문을 눌렀다. 며칠뒤, 앨범이 세장이 왔다. 처음엔 럭드포카가 디지팩과 같은 건가 했는데 문의를 하니 잘못 보냈다며 럭드포카를 보낼 테니 앨범한장 반품을 해달라 요청이 왔다. 이미 아이가 좋아하며 포장을 뜯었기에 차마 다시 반품시킬 수 없어 앨범하나를 그냥 추가하기로 했다.(앨범마다 표지와 포토앨범이 다르다) 업체에서 죄송하다며 멤버별 포카를 다 보내주겠다 하니 나름 횡재였다. 아이에겐 나름의 서프라이즈를 위해 비밀로 했다.


포카 포장은 포토카드 꾸민 것뿐만 아니라 덤이라고 스티커나 간식거리등을 더 챙겨준다며 엄마산타에게 서비스까지 요청했다. 앨범추가에 따로 준비한 책들과 다이소에서 조금 담아 온 포카재료들, 주전부리로 아이에게 제한시킨 5만 원을 훨씬 넘어버렸다. 지갑 털리는 씁쓸한 내 맘을 모르니 디지팩을 빼고 남은 금액만큼의 선물을 또 요청하는 그녀였다. 뭘 더 원하냐고 욱 할 뻔했지만 초과시킨 건 내 서비스선물이니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책을 서비스로 달라하진 않았으니까.


뭐라도 아이에게 받기 위해 한글과 영어로 적힌 카드를 남겨놓으라고 했다. 혼자 주섬주섬 준비하더니 트리 밑에 놓인 양말 속에 쏙 넣는다. 늦게 자면 산타도 졸려서 선물 못 놔둔다며 빨리 재운뒤, 선물들을 다 포장하고 나서야 양말 속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 보았다.


한글 대신 일본어로 써야지 하고 파파고 검색할 거라며 방에 들어가더니 삐뚤삐뚤 써놓은 일본어가 너무 귀여웠다. 원하는 선물 달라는 내용뿐이지만 정성이 갸륵하다. 거기에 포카포장 선물이라니. 엄마산타는 감동이다. (움마옆에 아빠도 살짝 끼워주지 그랬니) 감동만큼 선물 한가득 트리밑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정성 들여 포장까지 해주는 건 어쩌면 산타의 비밀을 일찍 폭로해 버린 미안함과 동심을 깨버린 죄책감(?)때문일지도 모른다. 내년이면 초등 4학년. 언제까지 선물을 바랄지, 산타 같은 이벤트를 원할지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어도, 아니 함께하는 그 순간까지 힘닿는 한 계속해주고 싶다. 내가 크리스마스마다 엄마, 아빠께 받았던 사랑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아이에게 듬뿍 전해줄 생각이다. 내가 받은 사랑 덕분에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날이 된 것처럼 아이도 매년 맞이할 크리스마스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날이면 좋겠다. 


신은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지구에 두었다. - 빌 킨 -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 나 스페인 갔다 올게(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