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해야 할 덕질이라면 행복하게 덕질하자
바쁘다 바빠, 나의 삶.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아 기웃거리다 어느 순간 덕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쪽으로 도파민에 중독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 차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어느 시기에 무언가에 푹 빠져 지내며 살았던 과거의 내가 보였다. 무언가에 빠져있었나 떠올려 보니 연예인, 작가, 댄서, 게이머, 애니메이션 등등 몰입의 대상이 참으로 다양했다.
덕질로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비단 어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아들은 4살 즈음 공룡에 빠졌다. 남자아이들은 자동차 아니면 공룡이라는데 우리 아이는 공룡 파였던 것이다. 로봇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너무 공룡으로만 몰입하는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몰입의 경험은 그 자체로 귀한 일이니 아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응원했다. 집 근처에 있는 공룡 박물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5시간 이상 차를 달려 경남 고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고성공룡엑스포였다. 덕후의 마음을 아는 부모가 주는 선물이었다. 공룡으로 그치지 않고 공룡이 멸종한 이유로 세계관을 넓히니 화산, 운석이라는 지구과학의 세계가 펼쳐졌다.
공룡을 좋아하던 그 아이는 유치원에 가서 축구를 하면서 손흥민에 빠졌다. 손흥민은 영국, 이강인은 프랑스, 김민재는 독일에서 뛰고 있으니 자연스레 세계 여러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월드컵 경기 하이라이트는 다양한 나라 이름을 접하기에 아주 좋았다.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 손흥민 유니폼과 축구화를 선물하고, 지구본과 국기 책을 집에 들였다. 축구에서 국기, 세계 지도 등으로 아이의 관심사가 확장되었다. 남편은 이제 때가 되었다며 어느 날 갑자기 부루마불을 사 들고 왔다. 부루마불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돈 계산도 척척이다.
어렸을 때 나의 오빠는 아빠와 함께 우표도 수집하고, nba카드를 모으기도 했다. 게임을 해도 열정적이라 늘 엔딩을 보았다. 반면 나는 취향이란 게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게임은 중반 이후가 되어 퀘스트가 어려워지면 포기하기 일쑤였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취미생활도 공부도 그랬다. 그런 나의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니아까지는 아니다. 그냥 취향이 많을 뿐이다. 누군가 보기에는 꽤나 열심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코 현생 앞에 덕질을 두지 않는다. 나의 성향에 비추어 봤을 때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고 해서 내 삶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덕행덕'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해야 할 덕질이라면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말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한심하고 쓸데없이 보낸 시간이지만, 몰입의 순간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글로 작성해 보아야겠다 생각했다. 덕질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고, 허무함을 느낄 때도 있다. 허무한 감정도 성장 과정 중 하나라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버리는 시간은 없는 셈 아닐까.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나는 늙어서도 그냥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 즈음을 지나는 지금 덕질 개인사를 한번 훑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의 덕질을 더 건강하게 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