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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

행복했던 입양가족의 삶이었다. 2

by 크레이지고구마

2016년 3월 2일

7년 전 봄이를 입양했던 그날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날 몇 시에 일어나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
입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봄이를 처음 보자마자 경이로운 표정을 짓던 남편과
봄이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너무 못생겼다던 지윤이
그리고 나의 모든 행동과 표정과 디테일한 감정상태까지 어딘가에 새겨놓은 듯 선명하기만 하다.

입양을 신청한 후 22개월을 꼬박 기다리면서

내겐 어떠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TV에서 다른 입양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면

‘아! 이 아기가 내 아이다!’라는 느낌들을 가졌다고들 했는데, 과연 나도 아기를 보면 딱 그런 느낌이 올까?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 하는 생각들과 기대감으로 설레어하며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입양원에서 전화가 왔고,
입양원의 사정으로
우리는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전화상으로

아기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입양을 결정해야만 했다.
시기를 더 늦출 수 없기에 그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입양을 결정한 거라 아기의 생김새가 무척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기의 얼굴을 보면 이 아기가 내 아기라는 확신이 드는지도 궁금했다.

동시에 약간의 설렘과 막연한 불안함과

과연 내가 이 아기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다시 아기를 키운다면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입양 당일,
우리가 준비해 간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봄이를 처음 보자마자 어쩜 그리도 작고 못생겼던지 나도 깜짝 놀랐다.

이 작은 아기를 내가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와서 내 기분은 가라앉고 있었는 데다가

난 봄이를 보자마자 ‘이 아기는 내 아기야!’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조금 당황스럽고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마치 봄이가 내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크게 울었다.

복지사님은 봄이에게 나를 엄마라고 소개한 후

나에게 아기를 안겨주었고,
아기를 받아 안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일어서서 살살 흔들어주니 금세 울음을 그치고 잠든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평화로운 기분을 살짝 느끼기도 했다.

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상태에서 입양서약과

기도 후 나는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유지했고,

우리는 그렇게 넷이 되어 집으로 왔다.
늘 셋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넷이 되었다.

봄이를 본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한데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게 차분하기만 했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마구 울어버리는 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 왜 갑자기 울어버리는 걸까? 하며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안고 흔들며 간신히 재우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며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감정에만 너무 충실했구나...
새로운 가족을 맞는 나보다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모와 분리되고,
익숙한 곳을 떠나 두 번씩이나 낯선 곳으로 옮겨져야 했던 봄이는 , 오늘의 이 갑작스러운 가족소개가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내 부정적 감정을 모두 느꼈을 봄이에게 미안해졌다.


그날의 미안함이 내 마음 깊이 새겨져 셔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아프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후 두 시간이 지난 후에,
태어난 지 29일 된 아기와 2~3년을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꼈고,
봄이와 가족이 된 입양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감정에만 충실했던 봄이를 입양했던 그날이 많이 아쉽기만 하다.

나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 때문에

입양원에서 봄이의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고,
입양원에서 우리 가족이 넷이 된 처음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고,
입양원 식구들과 사진을 찍지 못한 것도 아쉽고,
입양 당사자이면서 익숙한 곳을 떠나 또다시 낯선 곳으로 가야만 하는 봄이의 감정은 무시한 채 내 감정에만 너무 충실하기만 했던 게 더 아쉽기만 하다.

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에 봄이 동생을 입양하려고 신청했다가 가족들의 반대로 포기하게 되었는데,

당시 봄이 동생을 입양하면 편안하고 환하게 웃으며 아기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안녕, 아가야. 내가 네 엄마란다.

그리고 너와 우리는 이제 가족이 되었어.
익숙한 곳을 떠나려니 많이 무섭지?

너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면 그곳은 네겐 조금 낯선 곳이겠지만 우리가 곁에 있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가족이니까 늘 네 곁에서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

이 말을 2009년 8월 29일 그날 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나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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