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3
이번 편에서는 이미 예고되었던 대로 지정학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주데텐란트를 넘어서는 히틀러의 야욕으로 표상된 지정학은 한국인으로서는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말이다.
이번 이야기는 영화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지정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고 영화에서도 2차 대전의 기본적인 시작 외에는 다룬 것이 없기 때문에 스포일러 얼럿은 없다.
1. 지정학은 무엇인가
자주 언급되는 여러 학자들이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름들이 좀처럼 뇌에 입력되질 않는다. 처음으로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스웨덴의 요한 루돌프 셸렌이나, 레벤스라움이라는 나치 독일의 지정학 개념에 토대를 제공했다는 프리드리히 라첼, 그리고 실제로 나치의 일원으로서 지정학적 개념을 직접 수행(practice)한 카를 하우스호퍼 같은 이들이다.
이외에 영국의 하포드 맥킨더경이나 미국의 니콜라스 스피크먼 같은 이름들도 있다. 맥킨더경은 영국 지리학의 대부로서 철도 교통의 발달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바로 이 가운데 땅덩어리(하트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에는 해군이 접근 가능한 지역을 거점으로 세계 패권을 장악해 온 영국의 상대적 쇠퇴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근데 지도를 보면 대충 그냥 러시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는 영국의 정치지리적 개념이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마무리된 후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경쟁, 즉 러시아의 인도 및 그 밖으로의 진출을 막는 것과 함께 발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對러시아 견제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던 것이 맥킨더의 이론이다.
한편, 예일 대학 교수였던 스피크먼은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사망하였으나 그가 제시한 림랜드, 즉 유라시아 대륙 연안 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하트랜드를,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트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개념은 전후 미국의 세계 질서 구상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다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어쩌면 초등학교에서부터, 그리고 학교 안팎에서 한반도 주변 4강(미일중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하다 못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지정학적 컬처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왔을 것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지정학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자유롭게 생각을 떠올려 보았는데 나는 지정학을 "(주로 자연) 지리를 정치적, 사회경제적 의사 결정의 중요한 판단 근거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주로) 민족국가 단위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라기엔 손가락이 가는 대로 썼다).
2. 지정학과 2차 대전
2.1. 레벤스라움
독일어로 생활공간을 뜻하는 레벤스라움은 앞서 잠시 언급한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라첼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질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의 개념을 국가와 사회에 적용하려 했다. 대략 정치, 역사, 사회 어느 분야라도 적용하는 순간 정치적 올바름과는 수억 광년 떨어지게 되는 마의 단어인 '소셜 다위니즘'이라는 개념은, 국제정치에 적용될 때는 결국 '약육강식'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우월한 인종, 국가가 그에 걸맞은 자원과, 그 자원이 부존 된 영역을 향유해야 한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감옥에 갇혀 있던 동안 이 아이디어를 접하고 크게 감명받은 히틀러는 우월한, 따라서 적자로서 생존해야 하는 독일인들의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열등한 것으로 간주했던 슬라브인, 폴란드인, 유대인 등 (사실상 독일인 빼고 거의 모든 민족인 것 같은데...)은 다양한 방법으로 독일인들의 생활공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2. 주데텐란트
영화에서의 지정학은 주데텐란트를 통해 압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뮌헨 협상의 제물이 된 주데텐란트를 두고, 히틀러가 주데텐란트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영화의 기본 흐름이다.
그럼 주데텐란트,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독일은 무슨 관계였을까?
"체코슬로바키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붕괴되자 주로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으로 구성된 신생국가로 탄생하였다(김용구, 2006, p. 759)."*
* 사족이지만 뭔가를 참고하려고 확인했을 때 이렇게 원하는 구절이 딱 있으면 너무 좋다.
한마디로 체코슬로바키아 문제는 지난 편에 확인하였듯, 독일인들에게 큰 불만을 남기게 된 1차 대전 전후 질서의 산물이다. 이는 독일인들의 입장에서는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는 것이 일종의 직. 간접적 설욕이자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감정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위의 인용에 이어 마찬가지로 세계외교사(2006) p.760을 보면 "체코군은 스코다 Skoda*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장비로 잘 무장되었고 베를린을 위시한 독일 산업 중심지를 공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프랑스와 체코는 동맹국이었다)는 보다 현실주의적인 이유도 제시되고 있다.
*잠시 삼천포지만, 예전 체코에 갔을 때 처음 보는 차종의 택시를 탔던 적이 있다. 낡은 겉모습+처음 보는 브랜드의 조합에서 나올 거 같지 않은 탄탄한 주행감에 놀라 이게 무슨 차냐고 묻자 돌아온 ‘Skoda!'라는 은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대답 이후 나에게 스코다는 잊히지 않는 브랜드가 되었다.
아무튼 훗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나치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넘겨받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체코 & 슬로바키아를 합병했으며, 체임벌린은 유화정책과 실패의 아이콘으로 남게 된 것을 알고 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내가 어설프게 쓰는 것보다는 훨씬 잘 정리되어 있는 세계외교사(2006), p.770을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 하여간 히틀러는 [주데텐란트 상실로] 초라해진 체코의 침공을 결정하고 (…) 이제 히틀러에게 남은 일은 무슨 핑계와 명분으로 체코를 붕괴시키느냐 하는 일이었다.
히틀러는 슬로바키아로 하여금 독립을 쟁취하도록 충동질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체코가 내부로부터 분열되고 이에 독일이 개입함으로써 체코 국경의 현상을 보장한 뮌헨 협정의 규정을 독일이 위반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서) 슬로바키아는 이미 상당한 자치권을 얻은 바 있는데 히틀러는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라고 충동질하였다. 이에 체코의 하카 대통령은 슬로바키아의 티소를 분리 정책의 책임을 물어 해임시켰다. 이에 티소는 히틀러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히틀러는 그로 하여금 슬로바키아 의회를 소집해 독립을 선포하게 하라고 강요하였다. (...)
[히틀러가 프라하를 공습하겠다며 윽박질러] 하카는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히틀러의 주치의의 도움으로 겨우 소생하였다. 그리하여 1939년 3월 15일, 하카는 허위로 가득 찬 공동성명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슬로바키아는 독립을 선언한 바로 그날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다."
3. 2차 대전 이후의 지정학
더 끔찍한 전쟁은 없을 줄 알았던 1차 대전보다 더 많은 사상자와 홀로코스트 같은 전쟁범죄를 목도한 충격에 빠진 전후 세대는 나치와 관련된 흔적들을 금지하고, 없애기 시작했다. 소셜 다위니즘의 산물로서 나치 독일의 팽창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것으로 간주된 지정학도 학계에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지정학이라는 이름은 볼드모트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현대 외교를 주름잡은 헨리 키신저의 저술들이나 (애초에 19C 유럽외교사를 박사 논문으로 쓴 사람이다), '거대한 체스판'의 저자로 잘 알려졌으며 카터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이 얻은 명성을 감안하면, 지정학적 사고는 전후 미국에서도 계속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존재하던 미국의 시대. 직후의 문명의 충돌. 그리고 그 이후 부각된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전후 질서의 영속성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제기되던 가운데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2014)이 일어나면서 지정학에 대한 관심은 다시 공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또 여기에 발맞추어, 어떤 개념의 부활에 빠질 수 없는 유명한 키보드 배틀(?)도 때맞추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유명한 국제관계 매거진인 Foreign Affairs 지면 위에서 벌어진 프린스턴 대학의 존 아이켄베리와 (좀 더 다채로운 직업적 배경을 지닌) 러셀 미드 간의 논쟁이다.
미드는 "지정학의 귀환(The Return of Geopolitics)"이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중국 같은 국가들이 냉전 이후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으며 다시 전통적인 의미의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아이켄베리는 "지정학의 환상(The Illusion of Geopolitics)"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현존 질서에 대한 실존적 위협을 제기하지 못하며,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는 지정학적 경쟁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여전히 강고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 미드가 주장한 대로 지정학의 귀환이 일어난 것 같기도 하지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음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특히 우리나라도 지정학이라면 서러우리만큼 당사자인 만큼,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의 마지막 편에서는 결국 지정학과 우리나라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거 같다.
* 한편 글을 다 쓰고 지금은 어떤지 검색해 보니 아이켄베리 교수가 2021년 국내 대학 초청 강연에서 지정학적 위기의 심화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궁금하실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링크를 달았습니다 (월간중앙 해당 기사 링크). (TMI의 TMI. 저는 월간중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