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30세 중반에 결혼한 나는 요즘 시대가 말하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였다. 결혼에 대한 나만의 철학도 있어서 '대화가 잘 되는, 인성이 좋은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오만했었다. 어떻게 상대의 인성을 볼 것이고 대화가 잘되는 기준은 무엇이었던가? 구체적이지 않았었던 기준이었다.
몇 년 전에 환자분으로 오셨던 목사님이 계셨었다. 나는 종교가 없었지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그분이 계신 교회를 다니고 싶을 정도로 생각이 단단한 분이셨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가정의 평화에 대해 깊이 고민하신 분이었다. 뇌졸중의 증상들이 거의 회복이 되었었고 말할 때 막히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내용의 전달은 다 되었었다.
그분의 말씀 중에 가장 가슴에 깊이 남는 이야기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결혼 준비 때부터 부부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분은 가족의 행복이 제일 우선이고, 배우자를 잘 이해해야 부부생활이 원만할 수 있다고 하셨다. 특히나, 배우자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였었지만, 결혼 후에 잘 맞지 않다고 싸우거나 이혼하는 경우도 배우자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서가 하나의 이유라고 하였다.
나 또한 남편과 결혼할 당시, 서로가 시골에서 살았었던 게 주고받을 대화거리가 남들보다 하나 더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동네에서 퇴근하는 파출소 소장님의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산속에서 살아 그야말로 2시간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등교하였다고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내 나이대에 등교를 한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이러한 부분에서 오해가 생겼다. 나도 시골, 남편도 시골. '시골'이라는 같은 단어이지만 다른 문화였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바라보면 남편의 시골스러운 삶은 오해 투성이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은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을 배우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무교였고, 우리 부모님은 불교였다. 남편은 불교 쪽이라고 말하였었다. 그러나 결혼해서 보니, 불교가 아니라 유교적인 삶이었다. 유교와 불교가 비슷한 거 아닌가? 싶었었는데, 아니다. 전혀 다르다. 사대부와 남존여비 사상이 요즘 세상에도 존재한다. 아주 확실하게!
그런데 결혼 전에 이렇게나 뼛속까지 어떻게 알라고?
요즘 결혼율이 저조하고, 이혼율은 높아가고, 출산율은 최저를 찍고.
그래서 결혼을 장려하지만, 진정으로 부부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가 의문일 때가 많다.
결혼해서 서로를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살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결혼을 두렵게 만들려는 이유가 아니라, 결혼 전에 준비를 먼저 하는 게 지금 시대에 맞지 않나 싶다. 어른들은, 다 알면 결혼을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참고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공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상대를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나를 더 알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어떠한 면까지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생각보다 더 감당하기 벅찰 때도 있고, 할 수 있었다 믿었는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남편이 사회성이 좋아 사회 활동이 많은 걸 좋아했던 나는, 반면에 가정적이기를 바랐었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할 거라는 착각이 있었고, 어쩌면 가능한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생활에서는 실상 어려운 상황인 걸 알았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스트레스를 푸는 내 남편의 경우에는 사회적 활동을 줄이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결혼 후에 피로감이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온다.
상대의 좋은 면만 보고, 나 또한 좋은 부분만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시기인 연애시절이기 때문에 결혼 후의 일들을 예상하기 어렵긴 하다. 어른들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부분이려나? 여하튼, 결혼 생활에서도 대화를 주고받는 일은 중요한데, 결혼 전에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을 부각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나에 대해 인식하는 '내'가 있고, 타인이 보는 '내가 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내'가 있는데 결혼 후에 자각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되도록이면 나를 최대한 오픈하고 상대의 이야기도 대화를 통해 잘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폭력대화를 배우기를 바란다. 정말 상대의 말에 대해 공감하고 나의 느낌을 말하고,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고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대화를 통해 내 에너지를 다시 얻을 곳이 가족이기를 바란다.
사회생활에서 소진되었을 때 가족이 에너지를 완충해 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가족 내에서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