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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Feb 27. 2024

매운맛 좀 볼래?

엄마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퇴근길,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 시간이면 늘 듣는 말, "엄마 어디야? 엄마 저녁은 뭐야? 오늘은 뭘 먹을 거야?" 아이들에게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평소에는 아들에게 퇴근길, 통화를 하면서 식재료 다듬기부터 물 끓이기, 음식을 데우기 등을 시킨다. 오늘은 퇴근을 서둘러했고, 전날 저녁에 준비해 놓은 음식이 있어 굳이 시킬 필요가 없었다. 엄마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서둘러 주방으로 향해 저녁 밥상을 차리려는데 딸아이가 부른다.


내가 엄마에게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했다면서 불닭볶음면을 내민다. 점심때, 엄마는 언제부터 매운 음식을 잘 먹었냐, 매운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냐고 묻더니 자신의 용돈으로 불닭볶음면을 사 온 것이다. 아이에게 불닭볶음면 컵라면을 받아 든 손을 바라보며 웃음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직장에 다니면서 힘든 모습을 보이고, 스트레스받아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족은 서로 힘이 되어주고, 힘들 땐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더 기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가족이 서로를 응원해 주지 않으면 세상에서 누가 널 응원해 주겠냐고 어제 잔소리처럼 했던 말이 머릿속을 채운다. 


아이를 생각한다고 했던 말들은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로해 주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가족, 나의 아이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힘껏 날 안아주면 없던 힘도 몽글몽글 생겨난다. 면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불닭볶음면을 나눠주자 아이들 입에 불이 난다. 엄마는 스트레스가 많아서 매운걸 잘 먹지만, 자신들은 스트레스가 없어서 매워서 못 먹겠다며 말이 많아진다. 오빠랑 투닥거리던 동생도, 입이 맵자 오빠와 한 편이 되어 함께 우유를 마시고, 빵을 먹으며 얼얼한 입안을 달랜다. 나의 엄마는 장사를 하느라 늘 바빠서 따뜻한 눈 마주침 한번 한 적이 없었던 기억에,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려 애쓴다. 매운맛을 보니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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