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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간호사 May 11. 2023

'못된 병'이 있나요?

죄송하지 않습니다.

화가 났다. 불편했다. 억울했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올린 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나서야 드라마 영상을 찾아봤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투병하며 견뎌왔던 시간이 누군가로 인해 '못된 병'. '유전되는 병'이라 불려진다는 것이. 그리고 환자는 죄송하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분노는 우주밖까지 치솟았다. 크론병이 유전질환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최소한 간호사인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렇다. 근거가 있다면 이미 학회에 보고가 됐을 것이고, 교수님 또한 나에게 말했을 것이다.   


걱정됐다. 질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드라마를 통해 이 병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 혹은 이미 알고 있는데 설익게 알았던 사람들이 오해할까 걱정됐다. 지금까지 치료받고 버텨온 날들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를 악물고 울며 견뎠던 날들이 모래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내가 가진 병은 못된 병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더군다나 내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죽음으로 내가 아픈 것만 낫는다면 그렇게라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싶다 했다. 


누가 유전되는 병이라 말했나. 많은 환자와 환자의 부모, 보호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내 아이들에게 전해질까 더더욱 두렵다. 지옥문을 몇 번이고 지나, 버티고 버텨 치료제가 나오기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병을 받아들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 끝으로 걸어가는 기분도 그대들은 알지 못하지 않나. 그렇게 못되게 말하지 않아도 고통의 무게가 무거우니 제발 그리 시퍼렇게 날 세운 말은 하지 말자. 앞으로도 버텨야 할 무게가 많다. 그대들이 짐을 더 지우지 않아도 충분히 무겁다. 별 일 아닌 듯 생각하지 말아 주라. 잠시 스쳐간 말 한마디에 피가 철철 흐르는 듯하니.  


아프다는 건 죄송할 일이 아니다. 미안한 일도 아니다. 

그대들이여, 제발 그러지 말자.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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