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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간호사 Jan 25. 2024

살아있으면 됐다

아빠, 엄마는 그래

입사하고, 퇴사하고, 입사하고, 퇴사하고, 입사하고, 퇴사하고, 입사하고, 퇴사하고....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 

이력서를 얼마나 썼는지... 기특하고, 대단하고, 짠하다.

크론병과 동거하면서부터 의지와는 상관없이 굉장히, 자주, 백수가 되었다. 일하지 못하고 집에서 맴도는 난, 늘 이상하게 빚쟁이가 된 마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나 밖에서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욕심에 공부라도 열심히 했는데, 하고 보니 오히려 뭐라도 했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만 커져갔다. 상상 속의 난 병원에서 날아다니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그렸으나 실상은 이불속에서 통증과 전쟁을 치르며 울던 날이 많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의 저녁 식사 시간.

그날 역시 나는 공식적인 백수였다. 컨디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송한 마음을 가진 아픈 딸.

스스로를 간호한다는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이 이렇게나 커다란 짐이 될지 몰랐다.


부모님은 나의 하루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그날 또 어김없이 묻는 게 당연지사.

엄마가 대화의 시작을 알린다. 

"일할 곳은 좀 알아봤냐? 큰 병원 가지 말고, 좀 편한데 찾아서 가라. 밤 근무 하는데 말고, 낮에 일하는 곳으로 찾아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면 더 아프니까." 

"네. 찾아봐야죠. 근데 좀 쉬고 알아보려고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가 말했다.

"뭐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쉬어라. 아프지 않은 게 최고다. 살아만 있으면 됐지."

엄마가 뒤를 이었다.

"아파서 다 죽어갈 때는 병원에서 퇴원만 해도 감사하고, 금식할 땐 밥만 먹어도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그래. 살아있으면 됐지. 아빠 말이 맞다. 너는 건강하는 게 일이지. 건강하면 못할게 뭐가 있냐. "

.

.

.

.


'살아있으면 됐다' 

'살아있으면 됐다'

딸아, 네가 살아있으니 됐다. 


16년 동안의 지독한 투병생활을 보상받는 느낌. 기다긴 가시밭길에 신발을 신겨 주신 것 같았다.

가시밭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딸의 발에 어떻게든 튼튼한 신발 한 켤레 신겨주고 싶었던 그대들..... 식탁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목구멍으로 꾹꾹 밥을 욱여넣었다.

대형병원의 전문간호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것도 아닌... 그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있다.  

살아만 있다면 그래도 행복하다는 그대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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