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의 <아문센> 읽기
감정을 읽는 법 시리즈 1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는 오래전 읽었다. 시간이 꽤 흘러서 작품의 세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내 기억 속 <디어 라이프>는 무척 몰입감이 좋아서 재미있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며칠 전, 감정 리터러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이걸 실제로 문학과 연결해서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도해 본다. 그나저나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내뱉은 말은, 아, 어렵네, 였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서 오히려 감정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디어 라이프>에는 여러 가지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중에 <아문센>을 읽었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인물의 감정을 읽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여주인공 비비안은 남자의 시험하는 듯한 말투에 불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호기심을 장착하게 된다. 남자는 자기의 페이스로 여자에게 접근하거나 멀어지면서 상대를 통제했다. 비비안은 상대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다. 감정은 존재했으나 말은 비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숨기고 지내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도시에 살면서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멀리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곳에서 아픈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동했다. 아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건강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그 남자는 의사였지만 기본적으로 꽤 불친절했다. 고립된 곳에 모여사는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 비비안은 여전히 외로웠다.
외로움을 덜고자 왔지만, 그렇게 고립된 곳에서의 환경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힘과 동시에 배척하는 힘도 크게 작용한다. 비비언이 처한 상황은 딱 그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명분으로 여자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비비언은 사람들에게 둘이 밥 먹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의 집으로 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저녁을 차리는 와중에, 남자의 손이 비비언의 등에 와닿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그녀는 그를 남자로서 의식했다. 남자의 그런 스킨십은 의도가 있어 보였으나 비비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워졌다.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식을 치르기로 두 사람 사이의 규정을 정했다. 본문에서 규정이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약속이라고 하거나 비밀이라고 말했을 텐데, 규정이라는 단어에 눈이 갔다. 무엇보다 비비안은 남자의 직업이 외과의사인 것에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이 직업은 여자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남자는 계속해서 자기의 의도대로 여자를 이끌고 원하는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하지만 비비언은 한 번도 거부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전달하지 않았다.
폐쇄된 곳에서의 만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비비안이 간 곳은 아픈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공간이다. 사람들을 섬세하게 잘 돌봐주고 소통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사람들은 서로 배제하고 관찰하는 대상으로 거리를 설정한다. 이야기 속의 비비안도 생각한 바와 달리 계속 섬 같았다. 남자도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얽히기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둘은 멀리 가서 조용히 식을 치르려고 떠났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난 후의 남자는 태도가 돌변했다. 이 결혼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여자에게 토론토로 돌아가길 종용했다. 실제로 그녀는 기차역에 내렸고, 남자는 떠났다. 끝내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고, 긴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그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서 남자와 마주쳤다. 여자는 남자의 눈빛을 보면서 오래전에 느낀 그 감정을 아주 쉽게 되살렸다.
페이지 마지막에, 작가는 사랑에 관한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난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아, 어렵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의미가 짧은 의미에 담겨 있었다. 이걸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렇게도 복잡할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을 또 했다.
비비안과 남자는, 결국 자신들의 서사적 정체성을 갖지 못한 것이다. 서사적 정체성은 학문적 용어인데, 자기의 이야기를 의미 있는 과정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데 <아문센>의 비비안과 남자, 두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도 의지도 갖지 못한 채였다.
나 역시 감정을 느끼지만 말로 꺼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비비안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주 일본에서 사 온 마츠우라 야타로의 책에서 읽은 챕터 내용이 떠올랐다. 챕터의 제목은, 웃는 얼굴과 고맙다는 말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 두 가지는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그 한 마디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여도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사소한 감정이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 번씩은 말하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감정을 묵히면 결국 독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