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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하는작자 Jun 28. 2023

젓가락을 담는 함

재미있게 노는 게 특기

찜닭에서 건져 올린 당면이 저항감 없이 쭉 미끄러져 식탁에 철퍼덕, 떡볶이가 입에 들어가려다 말고 접시로 다시 털썩.

흐트러진 젓가락을 다시 추슬러 잡아보는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보인다.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는 여전히 젓가락질이 서툴다. 손끝이 야무진 둘째와는 달리 손놀림이 어수룩해서 그 손으론 뭘 하든지 여간 어설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날을 바짝 세운 끌소리는 잘익은 사과 깎는 소리와 비슷하다. 사각사각


보통 학기 초가 되면 학교에서 인적 사항을 적어오라는 종이를 받아온다. '취미'를 적는 칸에서는 망설임 없이 게임하기, 보드게임하기, 먹방 찍기 등 쭉쭉 써 내려가다 '특기' 항목에선 쉽사리 적지 못하고 볼펜 끝만 깨물다 내게 묻는다.


'엄마, 내 특기가 뭐지? 나는 뭘 잘하지?'

'에이~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더 고민해 봐'라고 말을 던져놓고 번득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나도 생각을 더듬어 봤다.


자석으로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경첩 역할을 할 동봉 자리를 뚫어준다


특기(特技)라는 것은 뭘까? 사전적 의미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을 뜻한다. 후천적 훈련으로 획득한 능력을 지칭하기도 하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소질’을 떠올리기 편이 익숙하다. 예를 들면 운동, 미술, 음악과 같은 겉으로 도드라지는 강점을 발견할 때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아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 축구를 잘하는 친구, 그림을 잘 그려 상을 척척 받아오는 동생처럼 눈에 보이는 특기가 자신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특출 나지 않아도 조금이나마 잘하는 것을 떠올려 보자고 했다.


마구리면에 끌자국을 남긴다


'축구를 못하지만 큰 목소리로 응원할 수 있어.'

'난 남들보다 후각이 뛰어난 것 같아. 현관문을 열자마자 오늘 저녁 메뉴를 단번에 맞출 수 있거든.'

'친구에게 양보를 잘해서 오늘도 칭찬받았어.'

'시험을 60점 정도 맞은 거 같은데 생각보다 잘 본 거 같아.'


아이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적 다소 산만했던 기질은 주변 아이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되었다. 넘치는 활동력과 호기심으로 어딜 가도 ‘너 참 재밌게 논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밥상에선 젓가락질이 서툴러도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긁어가며 보기만 해도 배부를 정도로 복스럽게 먹는다. 밥 해줄 맛이 난다.

학업을 비롯해 매사에 큰 욕심이 없고, 언제나 경쟁보단 타협하는 쪽을 선택한다.


젓가락을 일정하게 깎기위한 지그(jig)를 만들었다



약점이라 여기고 바꿔주기 위해 노력도 했었던 아이의 성격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훨씬 크고,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은 저 밑에 잠재워둔 채 시험 점수나 대회 수상과 같은 꽉 막힌 잣대로 가치를 재단하고 있던 건 나였다.

이제라도 밖에 둔 기준의 잣대를 안으로 옮겨와 무엇과 비교하지 않고, 그래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길 바라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특별함을 계속 발견해 나가다 우연히 어떤 것과 맞닿았을 때, 만약 너에게 노력을 기울이는 재능이 있다면 꾸준함으로 일으켜보자.


다시 볼펜을 들어 빈칸을 채워본다.


특기 : 재미있게 놀기

          맛있게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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