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망치를 두드리는 이유
나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내 일은 원 맨 쇼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작업할 땐 제작자였다가, 카메라를 들고 옮겨 다닐 땐 촬영 감독, 화면 밖에서는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냉정한 관람자가 되어야 하니까.
내 모습을 되감기 하여 돌려보는 과정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부끄러움과 대면하는 순간 손 아귀에서 종아리까지 경직된 긴장감이 다시금 연상되어 손가락 끝이 저릿할 때도 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을 택했어” 같은 주변 이들의 위로 섞인 핀잔도 맴돈다.
그럼에도 오늘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동력은 무엇일까?
나무 한 덩이를 작업대에 턱 올려놓고 필연으로 덧붙여지는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불안감이 낳은 걱정들, 타인에게 중언부언하며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불필요한 말들이 마음 갈래마다 넘쳐흐른다.
내가 덜어내야 하는 것은 비단 눈앞에 있는 나무만이 아니었던 것.
나무 덩이는 덜어낼수록 쓰임에 명확해지고,
마음은 간결해질수록 더 단단해진다.
힘찬 망치질에 잡념의 파편은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윤곽이 나오면 거칠었던 숨을 고른다. 몸을 낮춰 어깨 힘으로 끌을 밀어내며 들쑥날쑥한 마음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끊임없이 불어나는 마음을 잠재우기에 이만한 일이 또 있을까?
작
업
일
지
나무를 불로 그을리는 마감 기법을 낙동법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낙동'은 지질'낙'과 오동나무의 '동'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동나무를 인두로 지지는것을 말하는데, 만약 인두로 지지는 것이 아닌 불이 나 열로 태울 경우 '연동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무의 종류와 방법에 따라 여러 기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나는 낙동법으로 부르는게 익숙하다. 나무의 겉면을 불로 그을린 후 무른 부분은 갈아내면 색은 흑색에 가까워지고 내구성이 증가된다. 또한 급격한 열처리로인해 외부 요인으로 인한 수축과 뒤틀림을 방지하는효과도 있다. 습기에도 탁월한데, 한옥을 지을 때 기둥이 땅과 닿는 부분을 태움으로써 습기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어느 영상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까지 계속되었던 긴 장마철에 파전과 막걸리 한 잔이 떠올랐다. 밥그릇 말고 뽀얀 막걸리에 어울리는 짙은 색 막걸리 잔을 깎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제재소에서 사 왔던 자작나무 통나무가 적당해 보였다.
통나무를 잘라 써본 적은 처음이라 몇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첫 번째, 자르고 난 안쪽은 완벽히 건조되지 않았다는 걸 간과하고 말았다.
건목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작업한 탓인지 다 깎아놓은 잔이 다음 날 크게 쩍하고 갈라져버렸다.
더 이상 갈라지지 않도록 얇은 동봉을 박았다.
두 번째, 토치로 그을리는 마감은 처음이었다.
뽀얀 막걸리와 대비되는 흑색으로 표현하고, 습기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무가 얇은 부분(입술이 닿는 가장자리) 쪽은 작은 불에도 쉽게 타버리고, 열에 의해서 애써 다듬은 선이 울퉁불퉁해졌다. 좀 더 두껍게 깎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도자기가 건조하고 굽는 과정에서 수축되는 것처럼, 나무도 불에 그을리면서 수분이 증발되어 약간의 수축이 이루어졌다. 건조가 덜 된 나무라 그 정도가 더 심했던 것 같다.
표면에 남은 재를 스틸울로 벗겨내고 부처블락으로 마감하니 그을음이 묻어 나오지 않았고 막도 잘 형성되었다. 고르지 않았던 흑색이 오일을 흡수하면서 균일하게 표현되었다. 끌자국이 뭉개지고 은은한 광이 나서 마치 빚은 도자기 같기도 했다. 신기한 건 확실히 단단해졌다. 무른 나무일수록 드라마틱한 변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 만들고 나니 장마가 끝이 났다. 지겹던 비를 기다리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