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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하는작자 Nov 24. 2022

볍씨 한 톨

우리도 영글어가고 있는 중이야


주섬 거리며 점퍼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서는데 손등에 스치는 공기가 제법 차가워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거칠고 작은 것들이 콕콕 쪼아댔다. 꺼내놓고 보니 벼 이삭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무렵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데 논 가장자리에 기계가 닿지 않아 비죽 남아있던 벼 이삭을 큰아이가 직접 껍질을 벗겨보겠다며 한 움큼 챙겼던 그 이삭이다.



'벼를 수확할 때는 사람 손을 대신해서 콤바인이라는 기계를 사용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이어 말한다.

‘엄마, 요즘엔 농약도 기계로 뿌려요. 얼마 전에 드론 날리는 소리 못 들으셨어요?'

어설픈 도시에 나고 자라서 내가 뜬 밥 한 숟가락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건지 책으로만 배웠던 나보다 어쩌면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려면 작은 교회를 지나 거위가 살고 있는 가파른 대나무 숲 언덕(지금은 베어져 없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그리 부른다)을 내려와 친절한 할아버지 댁 커다란 감나무를 지나 좁은 논길을 따라 걸어온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길가에 푸릇한 냉이가 땅을 깨우면 봄이 왔다는 것을. 마른논에 잔물결이 일렁이면 곧 여름이 올 것이며, 하굣길에 이웃집 할아버지가 챙겨주신 단감 여러 개를 작은 품에 넣고 웅크린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올 때쯤이면 가을이 깊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서있기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릴 만큼 끔찍이 더웠던 지난여름 햇빛과 한쪽 어깨를 젖게 만들었던 꿉꿉한 빗줄기, 때마침 불어와 고마웠던 바람, 친절한 할아버지의 고된 손까지 더해진 뒤에야 네가 모았던 볍씨 한 톨이 한 공깃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우리도 볍씨와 함께 온 계절에 스미어 영글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 전 지인 추천으로 예술가 엄상섭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300개의 나뭇조각으로 만든 꽃봉오리 작품이 자동차 뒤에 물건을 걸 때 쓰는 형태를 모티브로 했는데 이처럼 일상의 어떤 이미지가 작품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것이 나도 머릿속이 작업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보이는 것마다 족족 작업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입은 점퍼 주머니 속 볍씨 한 톨을 봤을 때 가슴은 타오르고 눈앞은 환해지는 경험을 했다.    


덜어낸 곳엔 무엇이 채워질까

자연물이 띠고 있는 형태는 발 밑에 굴러다니는 돌마저도 이리 보고 저리 보지 않아도 어여쁘다. 한 번도 자세히 본 적 없던 볍씨가 이토록 예쁠 줄이야. 그 선을 따라가며 손 가는 대로 끌질하다 보니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오뚝이처럼 한참을 흔들거리다 멈췄다. 네 용도는 무엇일까.


부담되지 않을 정도라면 기계보단 톱으로

디자인 일을 할 때 사용자와 쓰임을 고려해 더 나은 형태를 만드는 방식으로 풀어가던 게 몸에 배어있어서인지, 결과물을 놓고 쓸모에 대해 생각하면 몸이 굳어버린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면 힘주어 나무를 깎아내는 일 자체가 무용한 것일 텐데, 이제는 유용함에 관대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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