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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3. 2023

엄마의 목표

[       ] 보다 오래 살기

  내가 어릴 땐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늘 갱지에 궁서체로 인쇄된 종이한 장을 나눠주곤 했다. 빈칸을 적어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내 부모님의 인적사항을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걸 집에 가져가면 엄마는 늘 안절부절하거나 자신이 없어보였다.  


엄마, 최종학력! 

뭐?

아, 학교 어디까지 나왔냐고!

고등학교... 까지 나왔다고 그냥 그렇게 써.


  나는 그 거무튀튀한 종이 위, 엄마의 이름 옆에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쓰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팔남매의 셋째. 아들 딸 딸 딸 딸 딸 딸 아들. 자녀의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엄마가 살던 세상은 아들 하나를 더 놓고자 딸을 여섯이나 낳는 것이 허다한 시대였다. 아들은 학교를 보내도 딸은. 특히 장녀나 둘째는 학교를 다니기는커녕 어서 자라서 부모를 도와 돈을 벌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 엄마였을 것이다. 아직도 글을 쓰면 -읍니다로 문장을 맺는, 맞춤법을 허다하게 틀리는 엄마는 아마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을 지 모른다. 그런 엄마의 딸이 작가가 되었다니. 사람의 운명을 누가 설계하는지는 몰라도 참 개구지다. 


  어쨌든 그런 나의 엄마가 공부를 시작했다. 요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것인데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아빠와 나를 챙기고 오전 아홉시까지 학원에 가서 저녁 여섯시는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빡빡한 스케줄. 내가 청년의 나이가 아니듯 엄마는 노인이 확실한 나이인데도 그 무리한 일정을 거뜬히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서투른 솜씨로 마우스를 만지면서 복습을 한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끙끙대고 씩씩대며 그 공부를 자처하는 우리 엄마의 나이는 올해로 일흔 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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