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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해영시 Dec 29. 2022

두 전범 국가의 결이 다른 역사의식

역사 의식 없는 대통령,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올여름 독일의 한 '사건'과 한국의 뉴스를 접하며 다른 의미로 각각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 의식을 느꼈었다. 이 한 해가 지나가는 지금, 일본이 '반격 능력'을 공식 선언하며 내내 우려했던 바가 결국 현실이 되어 버렸다. 독일과는 결이 다른 역사의식을 지닌 일본. 휘말려가는 우리 정부. 깊은 긴장감과 불안감이 가슴 한 켠에서 얹힌 듯 떠나지 않는다.


총리에게 '반사 작용'까지 요구하는 독일


2022년 8월 16일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전말이라고 하면 말 한마디와 반응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독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질문이 마흐무드 아바스 (Mahmud Abbas)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향했다. 그 질문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하고 죽인 테러가 자행된 지 곧 50주년이 되는데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아바스는 직접적인 답을 피하고 "이스라엘은 1947년부터 팔레스티나 마을과 도시에서 50번의 학살을 했다. 50번의 학살, 50번의 홀로코스트“ 라고 성토했다. 주요 정치인들과 언론 방송계는 일제히 아바스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데 비난의 화살이 오히려 숄츠 총리에게 더 집중되었다. 그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회견을 끝냈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대체 총리가 무슨 반응을 했어야 했는데? 이방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아바스가 독일에서 이스라엘의 학살 운운한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팔레스타인 수반으로서는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싶었다. 홀로코스트에 빗대면 자신들이 이스라엘에게 당한 잔혹한 행위들을 쉽게 이해시키고 호소할 수 있을 테니까. 궁금함을 안고 이 사건을 파악해가던 나는 여러 관점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엄중한 역사의식에 충격을 받았다.


첫째, 아바스에 대한 비난의 핵심이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가 홀로코스트를 ‘상대화(Relativierung)’ 했다는 것이었다. 체계적 계획과 산업적 방식으로 한 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시도,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며 유일무이한 반인륜적 범죄인데, 그런 홀로코스트에 아바스가 이스라엘의 범죄를 빗댐으로써 홀로코스트를 상대화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독일 총리 관저‘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상황에서 자행된 일들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한 것은 스캔들에 가까운, 매우 충격적인 홀로코스트의 상대화라는 것이었다. 전 총리인 메르켈은 "독일 땅에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그렇게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비교불가성'과 '유일무이성'을 비판의 공통적 논거로 삼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독일의 범죄는 비교할 수 없는 무거운 범죄야. 상대화해서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지 마! 더구나 이스라엘을 거기에 빗대어 들먹이지 마!' 라는 논리다.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범국가이자 가해 국가의 후손들이 부모, 조부모 세대가 저지른 행위를 인류 역사상 전례없는 유일무이한 범죄로 인정하고 그 범죄를 가리키는 개념인 '홀로코스트'가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


둘째, 총리에게 요구되는 역사의식 수준이 엄격하리만큼 높았다. 숄츠 총리에게 가해진 비판의 핵심은 회견 자리에서 바로 반박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언론 방송인인 미셀 프리드만(Michel Friedmann)의 표현을 빌자면 독일 총리로서 '반사적으로', 또는 '깊은 자기 이해에서 비롯하여‘ 홀로코스트가 상대화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즉시 제재하거나 반박하는 말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반사란 어떤 물체가 눈앞에 날아올 때 눈을 깜박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즉, 총리에게 자동 반사적 수준의 대응을 기대했던 것이다.


기자회견 후 총리 대변인은 바로 해명에 나섰다. 숄츠 총리가 그 순간 뭔가 반박을 하고 싶어 했는데 자신이 아바스의 대답 이후 바로 회견을 끝낸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마이크도 꺼졌고 총리가 말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며 자신의 실수라고 했다. 실제로 숄츠 총리는 아바스 대통령의 답변을 듣는 순간 정색하며 얼굴을 찌푸렸었다. 숄츠 총리는 당일 빌트 (Bild)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도 아바스의 말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다음날 트위터에도 같은 취지의 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다.


"나는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의 형언할 수 없는 발언에 깊이 분노합니다. 특히 우리 독일인에게는 홀로코스트의 어떤 상대화도 참을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홀로코스트의 범죄를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총리의 반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사회자가 기자회견이 끝났다고 선언했더라도 잠깐 시간을 달라 해서 한마디 반박하는 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안 했다는 것은 독일 총리로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보도전문 방송 엔테파우(ntv) 정치부 국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독일 총리로서의 의무였다“라고 했고 독일인들이 가장 신뢰한다는 뉴스 프로그램인 타게스샤우(Tagesschau)의 한 평론가는 "총리가 아바스 대통령을 데리고 홀로코스트 기념비 쪽으로 걸어가면서 독일이 유일무이한 범죄인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독일의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해줬어야 했다"고까지 했다. 야당인 기민당(CDU) 대표 메르츠(Merz)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총리 관저에서 일어났다며 총리가 아바스에게 "여기서 나가라"라고 했어야 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렇게 독일 총리에겐 홀로코스트란 범죄가 상대화되고 있는 순간 찰나의 망설임이나 회견장 상황에 밀려 반박할 말을 참은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셋째, 총리가 해결해 나가는 태도가 그저 상식적이라 놀라웠다. 총리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들을 해 나갔다. 자신의 판단과 입장을 언론과 SNS를 통해 적극 밝히고 총리실 홈페이지 전면에도 게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야이르 라피드(Jair Lapid) 총리와 통화해서 아바스의 발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금 분명히 했다.


시간이 흘러 12월 6일, 독일 주간지인 슈테른 (Stern) 지와 임기 1년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 사건이 언급되자, 숄츠 총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반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남는다고 하며 그렇게 못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다시 한번 담백하게 인정했다.


총리의 태도에는 우리에겐 어쩌면 익숙했을 억지스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나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인상을 썼는데 당신들이 못 본 게 문제다. 인상 썼으면 됐지, 말로 꼭 해야 아나?'라거나 '글까지 올렸는데 왜 계속 비난하나,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마라, 이건 정치적 프레임이다' 또는 '정작 이스라엘에서는 만성이 돼서 별로 크게 문제 삼지도 않는다더라. 그런데 왜 우리나라 야당 인사들과 언론, 방송에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가'라는 투의 변명이나 정략적 정쟁으로 몰고 가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사실과 역사 앞에서 옳은 지적을 받아들이고 독일 총리로서 자신의 실수를 바로 잡는 데 집중했다.


법적 조항을 넘어선 보편적 역사의식


이 세 가지 관점을 관통하는 놀라운 본질 중 하나는 야당 정치인, 언론과 방송, 심지어 비난의 당사자인 총리까지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전혀 이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법 때문인가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 독일에는 홀로코스트를 왜곡하면 처벌받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형법 130조, 국민선동죄(또는 증오조장죄)에 관한 법의 3항은 이렇게 정하고 있다. "민족사회주의(나치) 지배 하에서 범해진 국제 형법 6조 1항에 명시된 바에 해당하는 행위를 공공의 평화를 해치는 방식으로 공공연히 또는 모임에서 승인하거나,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자는 최대 5년까지의 자유형이나 벌금형에 처한다"(필자 역). 이 법을 적용하자면 아바스의 발언은 '경시한' 죄에 해당된다. '경시하다'라고 번역한 독일어 'verharmlost' 는 '실제보다 별 것 아닌 것으로 하찮아 보이게 만들다' 또는 '실제보다 무해한 것으로 만들다' 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독일 정치계와 언론 방송계가 보여준 것은 법을 염두에 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바스가 홀로코스트를 경시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비유의 말로 가져다 쓴 것뿐인데, 그들은 홀로코스트가 경시되고 있음을 즉시 알아채고 총리의 자동 반사적 반박을 기대했다. 그리고 거부감과 분노란 감정까지 표출하며 펄쩍 뛰었다. 이것은 홀로코스트는 비교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인식이 독일 정치인들과 언론 방송인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법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상식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법적 상식을 넘어선 깊은 역사의식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놀라운 감수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해 보였다.


'국가적' 상식이 된 엄격한 역사의식  


또 하나의 본질은 사회의 다른 어떤 주체들보다도 정치계와 언론 방송계가 이러한 역사의식을 철저히 공유하며 '국가적 차원의 상식'으로 적용하고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독일에도 예외가 많다. 정당 중에는 나치의 이념과 가까운 극우보수 성향의 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대안정당‘)도 있고, 이 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비율도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2021년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10.3%였고 연방의회 총 736석 중 83석을 차지했다. 국민들 중에는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며 증인이라 자처하고 다니는 할머니도 계시고 나치 조직 문화를 계승해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또한 신나치주의에 기반을 둔 반유대주의적 범죄, 외국인 이민자를 향한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사석에서는 독일에선 이스라엘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맘대로 못한다며 짜증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주요 정당의 정치인들, 언론 방송인들은 한목소리로 타협의 여지 없는 엄격한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국민 중 일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해도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역사적 가치 판단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런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자신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뉴스통신사 Wafa에 따르면, 결국 아바스는 8월 17일 자신의 발언이 있은 지 하루 만에‚ 홀로코스트는 현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아바스의 빠른 태세 전환이 독일이 팔레스타인에 매년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독일 쪽의 격렬하고 단호한 입장표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런 거센 비난과 분노가 없었더라면 그가 태세 전환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본


일본도 같은 전범국가이다. 홀로코스트와는 다르지만, 일본은 식민통치기간부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30년 이상 조선에서 비인간적인 잔혹한 만행들을 저질렀다. 민간인 학살과 강간, 생체 실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의한 강제노동, 문화말살정책 등. 그럼에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본 정치계와 언론 방송계가 한 목소리로 '우리 일본이 조선에 자행한 범죄는 너무나 참혹한 것이다. 일본의 범죄를 가볍게 만들지 말라. 더구나 거기에 빗대어 한국을 들먹이지 말라'라는 논리로, 한국을 비난하는 어느 다른 국가의 수반에게 경고하는 것. 혹시 50년, 100년 후에는 가능할까?


12월 16일, 내내 우려하던 바가 결국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일본 정부가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하고 선제적 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반격 능력‘을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선언했고, 북한을 공격할 때는 한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없다고까지 했다. 미국은 이런 일본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제 나름의 정당한 계기만 만들어지면 언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여차하면 한반도에도 포격을 가할 기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불안하다. 뭔가 우리 한반도를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걷혀지고 완전히 위험에 노출된 기분이랄까.


만약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하고 경계하는 역사의식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걱정이 덜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현재 그런 역사의식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정부와 언론 방송계는 역사를 부분적으로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먼 미래에 역사를 왜곡해서 배운 일본의 젊은 세대, 미래 세대들이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국제 상황 속에서 이번 기시다 정부가 발표한 3대 안보문서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지는 예측 불가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이나 지식인들이 어떻게 해 주겠지라고 기대하기엔 그들의 힘이 미약하다.


일본과 교감만을 추구하며 반박할 의사가 전혀 없는 이상한 한국


일본이 스스로 과거사를 깊이 반성하고 있지 않다면, 전쟁피해국가인 우리라도 철저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부정적인 의미로 상상을 초월했다.


8월 중순 광복절 직전 한 뉴스가 많은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기시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에 대해 „사전에 우리 한국 측에 설명을 해 왔다“며, "우리는 광복과 독립을 맞은 날이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날이라는 의미에서 일본 지도부가 매년 8·15마다 야스쿠니신사에 어떤 식으로든 예를 표하는 게 멈출 수 없는 관습이 됐다", "여기에 대해 한·일이 어떻게 교감하느냐, 그리고 그 이후에 관행을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감을 할 일이 따로 있고, 관행으로 이해해줄 일이 따로 있다.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국가로서 전범을 숭배하는 일본의 관행에 대해서는 이해가 아니라 거세게 반박을 해야 한다. 일본과 물밑에서 외교적으로 이해하고 조절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에게 야스쿠니 공물 봉납과 관련하여 ‚교감‘한 게 잘한 일인 양 대놓고 얘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깊은 역사의식이 있었다면 그랬겠나.


그 이후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모두들 기억하다시피, 10월 말경 윤석열 정부가 일본 국제관함식에서 우리 해군이 참석하도록 결정하여 거센 논란이 일었다. 국방부는 ”자위함기와 욱일기는 형태가 다르고, 모양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논란을 일축하고, 결국 11월 6일 우리 해군이 욱일기 같은 자위함기가 걸린 함정을 향해 경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정식 프로그램에서 바그너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나치의 선전 음악으로서 강제수용소에서조차 늘 울려 퍼졌던 바그너 음악은 그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욱일기도 우리 민족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그 깃발 아래 주권을 잃었고 온 민족이 수십 년 간 참혹한 일들을 당했으며 그 깃발에 대항해 수많은 민중과 독립군 청년들이 인생과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정작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그 깃발을 향해 우리 해군들이 충성과 복종, 존경을 표시하는 경례라는 행위를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2015년에 참석한 후 거센 논란이 일자 이후 7년간 일본 관함식에 우리 해군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전례를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역사적 배경과 국민적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국민들의 속은 또다시 뒤집어졌다.


그리고 12월, 일본은 이제 사실상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체제를 갖추고 군사대국으로 나아갈 의욕에 가득 차 있다. 또한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하고, 북한 공격에도 한국 정부의 승인 따윈 필요 없음을 막힘없이 말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막힘이 없을 수가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는 우리 정부가 단호하고 거세게 일본에 반박하고 경고하길 바랬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를 향해 ’반격능력‘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든 견고한 보호장치를 마련해 내길 바랐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반응은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 일본 관계자가 ”반격 능력 행사는 일본의 자위권 행사로 다른 국가의 허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의 위협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직접적 위협이 되는 상황이고, 그런 점에서도 일본도 여러 가지로 지금 자국 방위를 위한 고민이 깊지 않나 싶다“라며 일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편들어 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북한 공격 자체 판단 일본에 ’노‘ 라고 못하는 윤석열 )


국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 안보가 걸린 문제인데도 이렇게 안이하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헤아려 주며, 반박하려는 의사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정부라니! ‚한미일 공조를 위한 저자세 외교‘라는 표현조차도 너무 후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분명 우리나라 대통령인데,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위해 일본에 사력을 다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역사의식이 '비어있는' 대통령 

문득,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2021년 12월 2일 중앙일보의 한 칼럼니스트가 당시 윤석열 후보와 관련하여 ”비어 있는 역사의식“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떠오른다.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의식이 없다. 그것은 여야와 보수, 진보라는 진영을 떠나 모두가 알아채고 있던 사실이었다. 문제는 역사의식이 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판단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달리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주요 언론 방송은 ”역사의식이 없으면 배우면 된다“라는 식으로 무해하게 바라보도록 했고, 그 칼럼니스트 자신도 결론적으로는 차라리 역사의식이 부재한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도록 묘하게 글을 끌고 갔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식이 '비어 있는' 대통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의식이 없는 대통령은 상황 인식이 안이하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무딜 수밖 에 없다. 안이함과 무딤은 오판으로 이어져 어이없는 위험을 초래하고 일본과 같은 주변국가가 매우 민첩하고 주도면밀하게 일을 도모할 때 해이하게 있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상이다.


일본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도 분노는커녕 의외로 너른 이해심을 보여 주는 정부. 정작 우리 국민들과의 교감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이는 정부. 대다수의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행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정부. 그 정부를 이해하기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버겁다. 그런 정부이기에 일본이 군사대국으로서, 전쟁가능국가로 급물살을 타며 변신해가는 것이 더더욱 불안하다.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마지막 보루는 또다시 국민인가 보다. 모든 권력의 근원인 국민! 깊은 역사의식과 감수성을 가진 깨어있는 국민!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


*이 글은 2022년 12월 29일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발행된 글입니다. 그동안 링크만 소개해 놓았는데 2023년 3월 20일, 제목과 소제목을 부분 수정하여 전글을 게재합니다. 민들레에서 보기: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2 





3개월여의 시간이 또 흘렀다. 역사 의식이 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그간 가속화된 굴종적이고 비정상적인 안보외교행보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났다. 어쩌면 그는 역사의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원래부터 친일적 식민사관이 몸에 배어 있던 게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이다. 전범국가인 독일조차 철저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전쟁피해국가인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부는 역사의식이 해이하다 못해 반성 않는 오만한 일본을 오히려 모두 이해한다며 일본이 원하는 걸 다 해주고 있다. 그게 과거를 청산하는 결단이라고 한다. 누가 그런 식으로 과거를 청산한다고 했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이다. 

요즘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언행과 정책 결정 사항들을 보면 일본의 속국으로 회귀하는 듯한 기시감이 들 정도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가진 한 그에게 바라는 건 이제 딱 하나다.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조약이나 협정서에 함부로 서명만 하지 않는 것! 바램이라고 써 보지만...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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