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2018년 4~6월
약 한 달여만에 다음 편을 작성한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은 남아있어도 또렷하게 그때의 마음이나 생각이 남아있지 않아서 망설여졌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기록해놓지 않는다면 더더욱이나 내 과거를 잊어버릴 것이기에.
다시 마음을 잡고 써내려가기로 했다.
2018년 3월 친구 1명을 영입한 뒤, 경리를 담당해주시는 직원 1명은 계속해서 들어가고 나가는 바람에 인원 변동이 계속 있었고, 신규 사업을 같이 진행했던 나이 많은 경력직 직원분 (내가 모자랐던 탓일까, 아니면 검증 없이 사장님의 조언만을 들어서 실패했던 것일까. 나이 많은 경력직 직원분들은 사실상 모두 실패했고, 법적인 절차도 두 번이나 밟게 되었다. 내 입사 전까지 합친다면 무려 네 다섯번에 해당한다.)
아무튼 경력직 직원분에 대한 얘기는 굳이 중요하지 않으니 저 때쯤에 퇴사를 하셨고, 계속 직원들이 나가고 들어옴에 대한 리스크와 비용을 줄이고자 나와 대학교 같은 과 동기로 사실 이 업계에 오기에는 오버 스펙이지만 우리과의 비전을 살리지 못하여 어디에 취업하지 하며 막막하던 차에, 나와 함께 조그만 기업을 한 번 키워보는 일에 동참해보겠다며 의기투합한 친구가 5월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두 명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아 기뻤다. 항상 우리 회사는 사장님 포함 4명 정도의 티오로 돌아가고 사업을 확장할 때는 5~6명 까지 규모를 키워봤었는데, 이제 믿을만한 친구 둘이 포진되어 있으니 기반을 닦은 뒤에 필요하다면 경력직 등을 뽑아 사업을 안정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 덕에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
1주일 여 시간이 나서 당시에 떠오르던 인도 공장들을 방문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인도는 정말 말그대로 경험에 가까웠는데, 이때 깨달은 것은 건축자재 사업은 첨단 물질이 아니고서야, 운송료나 집적성에 큰 영향을 받는 사업이겠구나를 크게 깨달은 기회? 였다.
인도 자체의 수요가 크니 인도 내에서의 잉여수요를 수출하게 되는데, 결국은 인도 인근의 국가들에게 메리트가 가장 크며, 가격은 싸지만 배타고 오는 시간 등의 기회비용과, 자주 출장을 가서 샘플을 만들어볼 수 없다는 약점 등으로 큰 메리트를 못느끼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오히려 국내 점유율은 쪼그라들었고, 하자 관련한 오점이 더 많이 남아 다시 중국산 러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나는 항상 중국 이외의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했으나 그것 또한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인도에서 정말 구하기 힘든 술들.. 특히 구자라트 주는 간디가 태어난 주여서 아예 술을 안팔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 이때는 마음이 편했으나
돌아가서 사무실에 내가 없었던 기간 동안의 일들을 들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 되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