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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편견 없이 살아가겠어. 편견을 가지고 사는 거지

by 전지적 아아

“선생님은 절 편견 없이 대해주셔서 좋았어요.”

최근에 졸업한 L에게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두 쪽의 짧은 편지에서 내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은 내가 편견 없이 대했다는 것이다. 정말 나는 L을 편견 없이 대했었나? 한번 찬찬히 L과의 인연을 돌아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2019년 6월이었다. 당시 1학년 부장이었던 나는 1학년에 전입생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급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살짝 무언가 위태해 보였다. ‘아, 잘 적응하기는 힘들어 보이네. 제발 큰 사고 없이 졸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처음 부장교사, 그것도 학년 부장을 맡으면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하나의 짐이 더 올라간 느낌이었다. 마침 그 반은 여학생들이 묘한 분위기를 보이던 반이라 나는 첫날 첫 시간부터 그 반 담임선생님께 “반 분위기 잘 보셔야겠는데요.”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사실 정말 내 촉이 좋았다는 게 1학년 끝날 때쯤 모든 선생님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 반에 조용하고, 살짝 수더분하면서 우울해 보이는 학생이 들어왔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끔 학교를 늦거나 오기 싫어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성실히 학교를 나왔고, 비교적 무사히(?) 진급을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학생과의 인연이 여기에서 끝날 줄 알았다.

2020년 코로나19에 학교는 마비가 되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수많은 것이 중지되거나 변형되었다. 내가 주로 학교에서 하는 쓰기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때 학교에서 간단하게 쓰기 클럽 같은 걸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학교에 예산이 남았고, 그 예산을 쓰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데, 사실 국어과가 돈 쓰기 좋은 아이템이 바로 문학 기행을 가거나 책을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 간단히 문집을 엮을 생각으로 4주짜리 쓰기 클럽을 진행했는데, 이때 1학년 때 봤던 L이 쓰기 클럽에 신청한 것이다. 글을 조금 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극적으로 보이던 L이 신청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편지에도 밝힌 내용이었는데, 이 클럽 활동이 L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고, 내가 L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정말 이 클럽 활동을 L의 글을 읽는 재미로 운영했다. 그중에 하나가 상상만 해도 신나는 상황을 적으라고 했던 글이었다.


내 상상으로는 과제를 성의없게 할 때 가장 신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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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 상상을 한다. 나도 예산 사용 올릴 때 동그라미 하나 더 넣는다든지, 교장선생님께 아침에 전화해서 “나 그냥 오늘 학교 가기 싫으니까 결근할게요.”라고 해본다든지,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는 일탈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우리를 신나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탈을 상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재미있었던 한여름밤의 꿈인 것이다. 그런데 L은 진짜 저질렀다. 물론, 나는 클럽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쓰고 싶은 대로, ‘이런 거 적어도 돼?’라고 생각이 드는 글을 적으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진짜 실천하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사실 꽤 엄격하고 근엄한 교사인지라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내가 진지하게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웃어버렸다. 이 글이 너무 좋았다. 글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여러 선생님들께 자랑했다. 이런 재능을 가진 L이 자랑스러워서. 그렇지만 주변 선생님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글 때문에 L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어 버렸다. L은 편지에 “이 클럽 활동 덕분에 잊고 있었던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3학년이 되어서 국어 시간에 다시 만난 L은 1학년 때보다 조금 더 어두워 보였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위태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둡지만 나름 안정적인 녀석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홀딱 반한 그 글쓰기 재능과 살짝의 광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당연히 동아리는 책쓰기 동아리에 들어오도록 설득했고, L은 다시 나와 1년 동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L의 글을 6개월이 다 되어 가도록 동아리에서 읽을 수 없었다. 수행평가로 받은 글은 잘 적었지만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어릴 때 즐겨 보면 만화책 신간이 책방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L의 글을 기다렸지만 볼 수 없었다.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저 쓰기 싫다고만 했다. 안타까웠다. L을 여기에서 멈추게 하기 싫었다. 정말 나랑 헤어지자고 한 여자친구에게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8월부터는 내가 살짝 짬이 생기면 우리 반 학생들보다 L이 글을 쓰도록 설득하기 바빴다. 너무 재기발랄한 저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느 날 L이 나에게 와서 “선생님, 다 썼어요.”라고 말했다. 그때가 우리 동아리 책 원고 마감 이틀을 남긴 날이었던 것 같다. 결국 L은 자신의 글을 완성했다. 나는 단숨에 구글 클래스룸을 열고 L의 글을 하나하나 정독했다. 살짝 시니컬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신랄하면서도 나름 따스한 구석을 갖춘, 정말 좋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만에 썼냐고 물었더니 이틀이란다. 어느 정도 분량이냐면 보통 소설책 크기로 30쪽 되는 분량이었다. 급하게 떠오르는 대로 썼다는 건데... 나는 또 L의 글에 반해버렸다. (혹시 이 글이 궁금하시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노래, 고민하다” 검색하시고 책을 구매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진학지도실 선생님들께만, 그리고 내 주변 친한 지인들에게만 L을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다. 내가 학교 근무하면서 두 번째로 글쓰기 재능에 반한 학생이라고. 하지만 L을 포함해 다른 학생들 앞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사실 L은 학교에서 요즘 말로 아싸였다. 갑자기 내 발언 하나에 시선이 집중이 되면 L이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뜻하지 않게 다른 학생들에게 시기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부담 때문에 다시 L이 글을 쓰기 싫다고 할까봐 그게 무서웠다. 나는 정말 L의 글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도하지 않은 조심스러운 행동이 L에게는 “편견 없이 대한 행동”으로 보인 것 같다.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티 내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준 점 말이다.

그렇지만 L이 느낀 그 편견 없는 행동은 사실 편견 가득한 행동이었다. L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예상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였고, 다른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학생 개인이 아닌 ‘중학생’이라는 집단으로 보고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행동한 것이다. 사실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는 항상 편견에 사로잡힌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의 의견만 가지고, 믿고, 맞다고 생각하는 게 편견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자기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그리고 그렇게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나의 편견이 L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듯이. 오히려 편견에 대한 우리의 편견 때문에 편견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건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조만간 L에게 답장을 쓰려한다. 편견에 대한 편견 때문에 편견이 안 좋게 보인다는 살짝 뇌절이 담긴 문장으로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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