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호소인이 경험한 사소한 불편함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가을 그리고 명절 잔소리가 곧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채용 플랫폼 캐치가 Z세대 취준생을 대상으로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를 조사한 결과(2023), ‘취업 잔소리’가 4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곧 명절 페인 포인트를 앞둔 '구직자' 입장에서 채용 프로세스의 페인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부 채용 플랫폼에서는 공고 리스트의 경력을 필터링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저연차인 저의 경우, 매번 해당 기능을 이용하며 지원할 수 있는 경력의 공고만 필터링하여 보고 있는데요. 문제는 시스템상 공고에 등록된 경력과 실제 공고 내용에 기재된 경력이 상이한 경우가 꽤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스템상에는 '2년 이하'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공고 내용에는 '최소 5년 이상'으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거나 '과장 직급 채용'처럼 공고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필터 기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도록 하여 신속하고 편리한 탐색 경험을 방해합니다. 내가 지원할 수 없는 공고를 열람하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공고를 찾기 위해 더 많은 탐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한편, 경력 필터 기능을 제공하지 않거나 세부적인 경력 설정을 제공하지 않아 일일이 공고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입, 경력, 인턴 등과 같이 채용 구분만 할 수 있는 필터처럼 말이죠. 그래서 기업 자체적으로 공고명에 세부적인 경력연수를 기재하여 구직자의 신속한 탐색을 도와주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채용 공고 내의 자격요건에 추상적이고 디테일한 내용이 기재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 개발자 등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으신 분', '사용자 중심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으신 분'처럼 말이죠. 학력, 경력, 자격증과 같이 객관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해당 직무에 적합한 경험이나 역량처럼 정성적인 항목이 많게는 열몇 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마치 완벽한 이상형을 찾는 기준처럼 말이죠.
문제는 기업마다 자격요건의 쓰임새가 다르다 보니 지원자 입장에서도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자격요건이 지원해도 되는 자격인지, 서류 합격 충분조건인지, 희망하는 지원자 자격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죠. 특히 지원자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정성적인 항목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의 경우, 자격요건에 부적합하지만 서류 전형에서 합격한 적도 있었고, 자격요건에 모든 것이 부합하지만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쓰임새와는 무관하게 자격요건은 지원서의 방향성을 잡아주고, 면접을 준비하는 데에 적절히 활용될 수 있음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자격요건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공고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원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구직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적합한 인재를 찾고자 하는 무기한의 수시 채용 공고라면 말이죠.
따라서 자격요건과 같이 서로의 기대 가치가 상충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하고 채용 심사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먼저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격 요건에 '이런 분을 찾습니다', '이런 분과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기업이 수시 채용을 확대하며, 채용 시기와 규모 등을 유연하게 조절하여 채용계획 수립 부담이 완화되었다고 하는데요. 반면, 지원자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불명확해졌으며,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결과 발표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일에 발표를 하거나 한 달 후에 발표를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안내를 해주지 않아서 직접 문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전에 결과 발표까지 소요되는 기간이나 정확한 일정 안내가 없으면 지원자는 커뮤니티나 기업 리뷰 서비스 등의 '카더라'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결과 안내를 받기도 전에 동일한 채용 공고가 다시 올라오는 불편한 경험을 통해서 지레짐작을 할 뿐이죠.
채용 프로세스는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졌지만 지원자는 여전히 기대와 불안을 줄타기하며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기다림을 버텨야 합니다. 이와 같은 불편한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채용 플랫폼에서는 '기업의 응답률'이나 '지원서 열람 여부'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한의 기다림'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말로 비슷하게 포장된 불합격 안내도 페인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2021년에는 불합격 사유 통보와 관련된 법률안이 발의되었고, 채용 플랫폼 인크루트에서 동년 진행한 조사에서는 93%의 구직자가 탈락 사유 고지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불합격 사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합격 사유를 알고자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합격 기준을 알고 그 기준을 충족하여 다음 또는 다른 기회에 합격을 하고 싶다'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합격자에게 합격 스펙을 묻거나 현직자와 커피챗을 하면서 합격 기준에 내가 부족한 게 있는지, 또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고는 하죠.
또, 불합격 안내에서 오는 허탈함과 불안감은 들인 노력 대비 얻어낸 결과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충분히 합격할 것이라고 기대가 높아질수록 그 페인 포인트가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자격요건에서 다룬 것처럼 서로의 기대 가치가 상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더더욱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고요.
여러 채용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불편한 경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직자에게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AI로 합격률을 예측하거나 공고와의 매칭률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구직자는 합격 가능성이 높은 기회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또, 실시간으로 경쟁자의 경력, 학력 등의 현황을 파악하여 나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즉, 구직자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곳에 노력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취업난 뉴스는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은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하고, 구직자는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어쩌면 서로의 눈이 높아진 건 아닐까 싶습니다. 기준이 높아진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그만큼 성장을 했으며 그 기준을 충족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껍데기만 꾸며진 가치가 아닌, 실제로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