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고립 속
나는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외로움은 연애를 할 때 느끼곤 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한 상태를 우리는 '외로움'이라 정의한다. 그러니까 이 외로운 감정이 성립되려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존재로부터 느끼는 일반적인 외로움이 있는 반면 오롯이 내 안에서 솟아나는 외로움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고립'이라 부른다. 나는 바로 고립을 느끼는 순간 우울해진다. 정확히 나의 인생으로부터의 고립이다. 그 순간 나는 크게 절망하고 우울감에 잠식되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몇 주전까지만 해도 나는 또 한 번의 고립 속에 갇혀 있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마다 찾아왔던 몇 번의 고립을 겪은 후라 조금은 의연하게 맞이했을 뿐.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지금껏 살면서 고립을 느꼈던 순간이 꽤 있었다. 그때마다 나의 방법은 그 자리를 당장에 박차고 나가 새로운 세상에 나를 던져놨다. 도망이 아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상으로 아무 무기도 없이 정말 겁도 없이 나가버렸다. 내가 지금 이 자릴 벗어난다고 해서 갖고 있던 것들이 모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온전히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또 다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힘을 얻어 좀 더 커진 내가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안에서 혼합되어 나만의 새로운 능력들을 생성해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은 내가 스스로 만든 길이라 커스터마이징이 된 나만의 길이어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나의 방법은 인생을 꽤 풍요롭고 더욱 발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고립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때에도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그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날 불러주는 공연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야 한다며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여수에 혼자 가서 3개월을 산다고 하는 것과, 십 년을 연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원이 돼보겠다던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원과 생소한 전공을 배워보겠다고 원서를 보낸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냥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만으로는 생각할 게 너무 많지 않은가. 하지만 무모하게만 보이는 이것들이 모두 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내 것이 되었다. 처절하게 지금의 고립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나도 모르는 추진력이 생긴다. 주저하던 마음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네 번째 고립이 찾아왔다. 고립이 찾아왔다고 해서 단번에 극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울했고 밥을 먹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만의 방법을 알지만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이 없는데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무능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무無'를 택했다. 애를 써서 아무 생각 안 하려 하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나도 몰라. 난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였다. 나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고맙다가도 이제 그만 사양하고 싶었다. 이미 괴로울 정도로 매일같이 답을 찾기 위해 사는 하루하루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하지 말길 바랐다. 그렇게 끈질기게 무에 집착하던 내게 거짓말처럼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또 한 번 새로운 세상에 나를 떨어트리는 것. 이번에도 고립은 마음만으로 쉽지 않은 일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고립은 언제나 날 저 끝까지 밀어내지만 그곳이 아래가 아닌 위로 도약하기 위한 받침대임을 안다. 이후에도 고립은 또 날 찾아올 것이고 어김없이 난 그 소용돌이 속에 갇힐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또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 없이 고립을 고난을 우울을 나 스스로 박차고 나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