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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Jan 05. 2023

2022년 12월 36일

나의 새해는 내일부터

나의 연말과 새해는 그 끝과 시작을 채 인식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12월 30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햇수로 8년을 몸 담았던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날 코로나 확진이 되어버렸다. 나의 자유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아주 영특한 코로나는 이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맘 편히 쉬게 해 줄게- 라면서.


코로나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동안의 어떤 독감보다도 굉장히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모든 증상들이 빠짐없이 나타났고 나는 그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4일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상황이 보이고 내 모습이 보였다.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으며 밥 먹고 약 먹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누웠다가 낮잠을 잤다가 넷플릭스 시리즈는 이미 다 본지 오래. 평소에도 세끼를 챙겨 먹지 않는 사람으로서 세끼를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3일 정도는 정말이지 너무 아파서 살려고 먹었다면 이후부터는 세끼를 먹는 것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덕분에 며칠 사이 동그래진 몸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5일째 아침에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몸이 회복되니 2023년이 되었고 나는 다시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인식이 아닌 생각.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이 변할 것으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 내년을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단 1초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두렵기도 하면서 설레고 기대가 되면서도 용기를 잃을까 걱정했던 날들이 무색하게 어찌 보면 아주 평온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 걱정 없이, 아무 두려움 없이 말이다. 혹여라도 내가 새해가 오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괜한 설레발을 치며 호들갑을 떨까 봐 코로나 뒤로 새해를 숨겨 온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잠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집에 있으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함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주야장천 시리즈 몰아보기를 해도 죄책감이라곤 전혀 느끼지 않았다. 밥을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음에도 내가 한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년부터 꾸준히 생각 줄이기를 하고 있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단번에 알려주었다.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지언정 이보다 마음이 편한 상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처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으면 가끔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 더 많은 생각을 하려고 애쓰다 보면 그만큼 실천이 뒤쳐질 때가 있기도 하다. 나는 10년 전에 내가 부러웠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이 그렇게 즐겁고 재밌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렇지만 다시 그런 내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생각 줄이기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생각이 없이도 이토록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정말이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불안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의 방향으로 인해 느낀 불안함에 갇히다 보니 실제로 그 불안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부른 불안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기쁨과 행복에 갇히면 실제로 기쁨과 행복이 나에게로 오는 것과 같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보면서 불안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에서 오는 것인데 삶이야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없는 확실한 삶을 찾으려고 끝도 없는 불안을 안은 채 살아간다. 불확실한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만들고자 했던 많은 생각들이 지나쳐 불안을 끌어오고 미리부터 좌절하기도 했다.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일반적이고 안정된 삶이 아닌 내가 원하고 잘하고 싶은, 조금 벌어도 내가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그 뒤에 불안을 꽁꽁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차피 모호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불안을 끌어안고 있을 게 아니라 불안은 옆에 두고 내가 원하는 길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걸어가야겠다. 저 길이 아닌 이 길로, 오롯이 나의 의지대로 걸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왕이면 그 삶 안에서 더 좋은 감정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내 기분은 내가 정하고 오늘의 내 기분은 행복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이제 격리해제까지 3시간이 남았다. 비로소 2022년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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