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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Feb 17. 2023

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

나는 가끔 집 문 밖을 나설 때 이상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운동을 하러 헬스장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어쩐지 현관문을 나서기가 어려웠다. 한 번은 예약해 둔 피부과를 가야 하는 날이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무 일도 없는데 미루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했다. 아침하늘이 파랗길래 산책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 몸을 일으키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문득 겁이 났다. '내가 나가도 될까?' 하는 마음에 괜히 딴청을 피우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이러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2016년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자주, 거의 매일같이 이런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게 참 어려웠던, 어두웠던 해였다. 그만큼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날들이 많았고 일하러 가는 길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도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과 내 안의 가장 어두운 부분 안에서 깨치고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라나 발 끝만 바라보던 나를 조금씩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알 수 없는 마음은 아직도 이따금씩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나는 최근까지도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뭐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다. 그냥 무서웠다고 했다. 집 밖을 나서기가. 나의 안식처를 벗어나면 어디선가 나도 모르는 공격을 당하거나 내가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서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그런 상황이 한참 지속되고 있는 중에 정신건강클리닉에서 근무하는 새언니가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언니는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봐주었고 밖에 있으면 무섭냐는 다정한 언니의 물음에 처음으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나의 상태에 사로잡혀 내가 지금 무섭구나,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나의 감정상태를 분리해서 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바라보며 나의 상태를 인식하고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그렇다면 나는 이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어제 한 친구를 만났다. 안 지는 좀 됐지만 올해 같이 작품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 친구가 우리 동네로 나를 만나기 위해 와주었다. 같이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어서 동네 카페에 가서 작품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가끔 치과를 가는 게 두려워"라고. 처음엔 치과가 두렵다-라는 말로 알아듣고 웃었는데 친구가 다시 정정해 주며 집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워서 자꾸만 치과를 미루고 싶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나는 그때의 내 마음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잊고 살았고 지금도 문득 그런 마음이 들 때 도대체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드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저평가하곤 했는데 친구는 확실하게 그 마음을 두려움이라고 정의하고 있었고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인지하고 있었다. 첫 문장에 '이상한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집 밖을 나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용기가 필요할 것일까. 삶에 대한 불안이 두려움을 가져오고 나의 안식처를 벗어나면 나의 불안과 맞서 싸워야 하기에 두려운 것일까. 그러면 정말로 작은 성취들이 모이면 불안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을까. 밖을 나설 때에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두려움'이라는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두려운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깨고 나가는 나를 확인하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두려움은 더 이상 겁 나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긴장되지만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


오늘 아침 봄날 같은 기온에 이끌려 뒷동산에 올라보았다. 종종 뒷동산에 오르는데 오늘은 오르는 내내 포근한 기온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웠다. 정상까지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집 밖을 나서는 두려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왜 나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을까 하며 비판을 해보다가 그럼에도 내가 해내야 할 하나의 '퀘스트'로 다가왔다. 퀘스트를 해결하고 나면 보상이 주어지는 게임처럼 말이다. 그 보상은 '성장'임이 분명할 것이다. 성장을 위한 관문이라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생긴다. 두려움을 확인하니 에너지가 생겼다.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모든 풍경에 왠지 모두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잔뜩 안고 내려왔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나의 감정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3자의 시선으로 나를 분석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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