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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Sep 10. 2023

5-1. 언덕 너머

어느 여름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처럼

주문판에 올릴 음식 사진을 찍어요.  

아직 한 달은 안됐습니다. 뭘해서 먹고 살지 고민하다가 작은 술집을 열었습니다. ㅋ


혹시 궁금해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아 저 아래 매장 사진 몇 장 올려놓겠습니다.


재밌습니다. 우울증도 사라졌습니다.


제 지인분들이 오셨는데 그 중 한분(의사)이 브런치작가가 뭐 대단해 하는 말이 좀 속상했지만 그저 웃었습니다. ㅎㅎㅎ


어제는 신사분이 저를 불러서 노가리를 잘라 달라하길래 허허 웃으며 먹기 좋게 가위질해주었습니다. ㅋ


정신없이 재밌습니다.


여기서부터  소설입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그 남자네 현관문 앞에 섰다.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문이 열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 벌써 한 잔 하셨네요.


나는 여유만만하게 웃음 지었다. 아니 어쩌면 들떠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턱없이 유쾌한 기분이었고 아무런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 나는 아직 남자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쓸모없는 처녀성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극에 달했던 터라 여지만 보이면 그 남자를 덮칠 오였다.


도대체 남자랑 하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지극히 본능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감정이 분명했다.


하지만 저속하기보다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잉태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시원의 욕망이란 건 알 수 있었다.


- 아네, 실은 혼자서 마시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초대할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술을 마시다 생각이 났습니다. 함께 마시면 좋을 거  같아서.......


그 남자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거실로 앞서 갔다. 


- 술기운으로 나를 초대하셨네요.


- 오해하진 마세요.


- 오해는요. 미인에게 근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때론 술기운을 빌려 용기를 내기도 하는 거고요.


- 감사합니다. 웃을 줄 모르는 사람 같았는데, 처음 동사무소에서 봤을 때 말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도 예쁘지만 웃으니까 반할 것 같습니다.


- 반한 건 아니고요!


활짝 웃음 짓는 그 남자는 무릎 위로 올라간 짧은 반바지 차림에 실내화를 신고 있었는데 양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반바지라든지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걸친 헐렁한 면티 그리고 도발적이긴커녕 수줍은 듯한 눈빛으로 보아 계획된 초대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앞이 파인 헐렁한 티셔츠 안으로 보이는 가슴 털이  남자의 발가락만큼이나 자극적 이서 덮치고 싶었다.


그런 충동적 감정은 처음이었는데, 사실 내 마음이 낯설고 놀라웠다.


나에게 한 번 하자고 대들던 한 남자들, 어린것에서부터 나이 든 영감까지 모두 다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걸신들린 것처럼 내가 왜 이러지 싶기도 했다.


그것도 하필 근본도 모르는 이 남자에게......


그냥 솔직하게 취하기 전에 한 번 할까요?라고 말할까 했는데 그게 또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 음악이 좋네요. 영혼의 비명 같아요.


나는 그가 마시던 술병과 술잔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으며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순간 격렬하던 욕망이 가라앉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눈빛 탓이 아니라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이지 싶었다. 


나는 한 때 운한 내 운명과 맞서기 위해 누 구보 다 씩씩하고 명랑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티 없이 맑다,는 말을 종종 들었고 그게 진짜 내 모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공무원이 된 뒤로 나는 투사적 정신을 내려놓았고 굳이 웃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거나 민원인으로부터 불친절하다는 지탄을 받았고 심지어 투서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아직도 점원 시절의 투사적 명랑함과 공무원이 된 이후의 차가움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남자 앞에서 나는 다시 명랑해졌다. 그 남자 앞에서만 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 영혼의 비명을 좋아하시는군요.  하고 취향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때요  술 드시기 전에 한 번 하는 거. 전 너무 오래......


내가 하려던 말을 그 남자가 던졌을 때 우주에서 흔하게 일어난다는 우연의 기적이 떠올랐다. 그러나 남자의 헐렁한 도발이 반갑기보다는 웃겼다.  



5. 언덕 너머.       


율오리를 벗어나거나 율오리로 돌아오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언덕이 있었다.


수리재라 불리는 그 언덕을 넘으면 율오리가 한눈에 들어오듯이 수리재를 넘어서야 비로소 율오리 밖으로 나가는 길게 뻗은 길이 한눈에 보였다.


아마  지금도 나지막하고 굽이진 그 언덕은 그 자리에서 율오리와 월오리 밖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리재를 넘자 월화의 표정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월화는 두 발을 자동차 전면 유리창 앞으로 뻗어서 꼬고 앉았다.  조금 전 수미와 함께 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월화가 가늘고 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방역차에서 내뿜는 안개가 수미를 덮치는 순간이었다.


- 어, 선생님이다.


윌화가 차에서 내려 안갯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잠시 어리벙벙해져서 운전석에 앉아 안개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윌화가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이내 안개가 옅어지면서 월화와 수미의 실루엣이 나타나더니 점점 또렸해졌다.


월화가 수미를 꼭 껴안고 수미는 달래는 듯 월화의 등을 쓰담쓰담했다.


그제야 나는 수미가 대학 때부터 월오리교회 여름성경학교 교사로 봉사해 왔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월화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교회 귀퉁이에 버려진 것처럼 앉아 찬양을 따라 부르다 수미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버리는 아이였다.


수미가 말을 붙여도 고개만 숙인 대답조차 않았다.


게다가 여름인데도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아이의 무릎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속옷조차 갖춰 입지 않아서 교단에 서 있는 수미의 눈에 월화의 그곳이 보이곤 했다.


-월화야, 무릎 내리고 바르게 앉아.


예배 도중에 수미가 월화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어야 했다.




어느 날은 예배 도중에 정신지체가  있는 청년의 품에 안겨서 들어오는데 보니까 그 청년이 손가락으로 월화의 그곳을 만지고 있었다.


수미는 침착하게 청년에게 월화를 내려놓으라 하고 따로따로 앉혔다.


그때만 해도 월화는 유치원생처럼 작고 미숙한 아이였다. 나이를 몰랐을 땐 수미도 유치원생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어쨌든 월화는 그날 이후 여름성경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수미는 혼자서 월화네 집으로 찾아갔다. 마을회관 뒤에 있던 그 집에 사는 아이들은 버림받은 짐승 같았다.


월화는 수미를 외면했다. 수미는 너무 미안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발길을 돌리는데 월화가 더러운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수미는 너무 잘 사는 자신이 미안해서 월화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수미는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에 나가서 옷을 사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따라오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 월화는 다시 성경학교에 나왔다. 수미는 성경학교를 마친 뒤 월화와 함께 읍내에 나가 여름옷을 사 입혔다. 해마다 그래왔다.


뿐만 아니라 수미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하던 인화의 옷과 의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쏘아보던 오빠 것도 사서 손에 들려 보냈다.


수미의 노력에도 인화와 오빠는 끝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월화는 매년 여름성경학교에 나왔다.


- 여름성경학교 끝나도 주일엔 교회에 나가야지? 선생님 하고 약속하자.


수미의 말에 월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 왜, 싫어.


- 네 선생님, 없어서 가기 싫어요.


- 그럼 내가 여기로 이사 와야겠네.


그게  월화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중학생이 된 뒤로 월화는 더 이상 여름성경학교에도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수미가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선교사를 통해 월화네를 사택으로 이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청년회장이나 마을사람들은 물론 월화네 가족들도 그 사실을 몰랐다.




나뭇잎 무성한 가로수들이 유령처럼 다가와서 뒤로 멀어졌다.


월화는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불편한 것인지 아니면 지루한 것인지 자꾸 자세를 바꿔 앉았다.


귀한 족속의 그런 모습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누추한 집에 초대를 한 것처럼.


월화가 한쪽 발을 의자 위에 세우고 가슴 깊숙이 끌어안았다. 턱을 무릎에 얹었다. 눈을 치켜뜨고 어두워져 가는 들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침내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가끔씩 저절로 깜박이는 눈꺼풀이 우수에 잠긴 듯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생기발랄하던 표정은 모두 사라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한 분위기였다. 거짓말처럼 달라진 모습이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내가 물었다.


“응! 왜?”


월화는 턱을 무릎에서 떼지 않고 시선만 잠깐 돌렸다. 말투는 느리면서 음울했다.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 보이네.”


“어두워졌으니까 그렇지. 논에 처박지 말고 라이트 켜.”


역시 느리고 낮은 귀한 족속의 말투였다.


“생각하고 있었던 거니?”


나는 라이트를 켰다.


“생각 같은 건 안 해. 해서 뭐 해. 골치만 아프지.”


어린 나이에 마치 세상을 초월한 듯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월화는 다시 오른쪽 발을 뻗었다. 발바닥이 전면 유리창에 닿았다.


월화의 발이 사이드밀러를 가렸다. 굳이 그쪽 거울을 보지 않고도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곧게 뻗은 월화의 다리를 의식하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났다.


월화는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내 시선이 월화의 사타구니 사이로 향했다. 엉덩이 쪽으로 쓸려 내려간 치마 속으로 하얀 속옷이 보였다. 나는 거칠어진 호흡을 삼키느라 허리를 곧추세웠다.  


- 선교사님!


월화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 나? 선교사 아니야.


- 선교사가 좋은데..... 하나님의 종을 가지고 놀면 우쭐해질 때가 있거든. 내가 하나님을 이긴 것 같은 기분? 나를 거지로 태어나게 만들고 더럽게 살게 만든 하나님을 비웃어주는 통쾌함?


-......


- 자기가 선생님 약혼자라니 기분이 별로야. 자기랑 헤어져야 할 거 같아. 선생님한테 죄짓는 기분이 들어서......


- 걱정 마. 아까  선생님 앞에서 말한 대로 읍내까지만 태워다 주고 난 돌아갈게.


-......


월화가 나를 보더니 쓸쓸하게 웃었다. 훔쳐온 장난감을 돌려주는 아이처럼.


- 그런데 아니? 넌 미의 여신 같아. 하나님은 너에게 그걸 주셨어. 아프로디테가 너만큼 예뻤을까?


- 뭐? 아파서 디지겠다고.


월화는 아프로디테를 몰랐다. 그저 발음이 낯설고 이상해서 큰소리로 웃었다.


월화는 피에가르뎅이라는 말에도 배꼽을 잡고 웃어젖히곤했는데, 나는 그 아이의 무지함이 사랑스러웠고 나의 상대적 박식함 한없이 부끄러웠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가님들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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