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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Apr 28. 2024

향연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하여



상실 1   


프시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너덜너덜 해졌다. 편지가 눈물에 젖어서 마를 틈이 없었는데 그걸 가슴에 품고 때론 얼굴에 비벼댔던 탓이었다.


 벨레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된 편지를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궁굴리어 꿀꺽 삼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프시의 영혼이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녹아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눈을 떴다. 세상이 달라졌다. 실종된 프시가 누군가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났다,는 강렬한 확신이 섬광처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아니  그의 뇌를 부술 듯이 때렸다.


희망에 찬 그가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며 여자들을 쫓아다녔다.


오 프시 돌아왔구나. 나야 벨레.


여자들은 놀라서 욕설을 퍼붓거나 소리치며 달아났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자들을 뒤쫓곤 했다. 즐겁다는 듯 웃기도 하면서.




바닷가 사람들은 벨레가 결국 실성하고 말았다며 수군거렸다.


자신의 등 뒤에서 수군대는 것을 들은 그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영어로 말을 하고 땅바닥 위에 방정식을 풀어 보였다.


괜히 바닷가 사람들을 붙들고 각국 대통령 이름을 들먹이며 국제정세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해박한 지식이나 논리는 오히려 그가 미쳤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벨레를 불쌍하게 여긴 바다횟집 주인은 그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잠자리와 밥을 주었다.


너무 지쳐 있던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횟집 주인을 따라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했다.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일이 끝나고 나면 횟집의 구석방에 누워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 왜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픈지, 왜 바닷가를 거닐며 소리 내어 울어야 하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갑자기 모든 것이 지워져 버린 듯 머릿속이 어둡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울기 시작했다. 숨만 쉬어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닷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울음에 전염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미쳐버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마음 아파할 뿐이었다.




어디선가 프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레는 미친 듯이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오 나의 프시. 넌 어디에 있니. 난 여기 있단다. 네 영혼  속에 내가 있단다. 오 프시 바닷물이 차갑구나. 내가 너를 건져줄게.


바닷가 남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든 그를 붙들고 나왔다. 그는 놓으라고 소리치다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모래 바닥에 드러누운 그를 에워싸고 있던 남자들이 하나둘씩 돌아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무력한 자신을 기억해 냈다.


새벽 미명처럼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차츰 의식이 되돌아왔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섬광이 뇌를 때리던 순간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오 나의 프시가 돌아왔어. 돌아온 프시를 찾아야 해.




벨레는 다시 돌아온 프시를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해질 무렵이면 그는 수평선을 향해 목청껏 프시를 불렀다. 애절한 그의 목소리가 해변을 떠돌면 바닷가 사람들은 덩달아 슬픔에 잠기곤 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프시를 부르다 지쳐 잠이 들거나 앉은 채로 밤을 지새웠다.


바닷가 사람들이 그에게 먹을 걸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는 며칠 째 물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의 발은 퉁퉁 부었다. 살이 너무 빠져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씻지 않아서 몸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났다.     

   

어둠이 사방을 뒤덮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낯선 사내들이 그를 에워싸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벨레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내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붙들었다.


그는 사납게 발버둥 치면서 사내들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힘센 사내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사내들은 그를 들고 가서 구급차에 밀어 넣고 침대에 결박한 채 재갈을 물렸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작가님들 읽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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