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인해 지워지는 것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흔히들 말하는 무용(無用) 한 것들에 시선을 자주 뺏긴다. 어스름 저녁에 걸쳐있는 분홍과 붉은색 사이의 노을 구름을 좋아하고, 비가 내린 후 올라오는 흙내음을 좋아하며, 눈 뜨고 일어나서 본 시계가 주말을 가리키는 그 순간을 아름답다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한량 선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어디에 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아낀다. 이는 곧 내가 산책을 수시로 하는 이유로도 이어진다.
한 번 길을 나서면 기본 1시간, 조금 더 무용한 것들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싶으면 2-3시간 걷는 건 가뿐하다. 그 시간 동안 특별하게 하는 건 없다. 주변을 둘러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과 애완동물들을 보며 미소 짓기. … 그 정도?
이 단순하고 순간적인 경험들이 쌓이면, 긴 시간 걷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마음은 상쾌하고, 머릿속은 깔끔하게 정리된다. 무용한 아름다움 덕분에 어지럽게 나열된 유용한(척하는) 걱정들이 싹 비워지는 것이다.
적정 속도는 30km/h 지켜주세요,
어린 당신이 다치지 않게
일할 땐 빠르고 바쁘고 조급해한다. 그게 나다운 성격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도 그것을 내 성격이라 공표하고 다니곤 한다. 한 번쯤은 그것이 내가 만들어낸 페르소나가 아닌지 되짚어볼 만도 했을 텐데.
이토록 무용하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 사실 난 느긋하고 게으르며 관망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사회에서 바라는 대로, 혹은 지정하는 대로 그 틀에 날 끼워 넣다 보니 그것이 나다운 것이라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도 모른다.
굳이 정답을 낼 욕심이 없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다운 것들을 채워나가는 일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