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취미'라고 말하려면 얼마나 요리를 잘해야 할까? 성인이 된 후부터 계속 요리를 해왔고, 외식비가 비싼 프랑스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 어떻게 하면 좀 더 적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맛있는 걸 해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해 왔던 것 같다. 나는 할머니, 엄마, 아빠 전부 요리를 잘하는 가족 안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김치볶음밥 정도 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더 어려운 요리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나만큼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만난 이후로는 주말마다 시장에 가서 직접 재료를 고르고, 주방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요리를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러 음식을 많이 접하다 보면 어떤 게 맛있는 음식인지 기준이 서게 되고, 그 기준이 높아질수록 내가 하는 요리도 나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거나 요리 책을 뒤적이고 있었고, 처음에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몇 년 하다 보니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식은 집밥이 그리워서 하게 됐고,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남자친구 옆에서 곁눈질로 배워서 이젠 이탈리안 요리도 제법 잘한다. 이젠 요리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된 것 같다. 보통은 요리 책이나 유명한 셰프들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거나 그걸 보고 대충 집에 있는 재료로 응용해서 하는 편이다.
요리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가 먼저겠지만, 나는 요리가 주는 기쁨이 매우 단순해서 좋다. 나는 생각이 많고 머릿속이 늘 복잡한 사람이라, 그냥 별생각 없이 그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좋달까. 게다가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세상엔 시간과 정성을 들여도 그만큼 결과물이 안 나오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래도 요리는 일단 하기만 하면 음식이 눈앞에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나눠먹을 수 있다는 것도 요리의 기쁨 중의 하나다. 또 하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음식과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건강 때문이었는데, 스스로 요리를 하면 같은 돈을 들여서 훨씬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질 좋은 야채나 과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 요리하는 재미가 있다. 옆 나라인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프랑스 보다도 더 저렴해서 여름엔 살구나 복숭아를 쌓아놓고 먹을 수 있다. 이번 여름에 서울에 갔을 때 과일 가격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선 좀만 시골로 가면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많아서 그냥 애들이 지나가다가 막 열매를 따먹는다... 하여튼 제철 채소로 요리를 하면 식비도 덜 들고 더 풍부한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늦가을부터 요맘때즘엔 온갖 종류의 호박이 나오는 시기인데 그래서 최근에 호박 요리를 정말 많이 해 먹었다. 호박을 갖고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건 양파와 치즈를 조금 넣고 갈아서 퓌레로 만드는 거다. 고기 요리에 소스로 곁들일 수도 있고, 리소토, 파스타 등 활용도가 높다. 이탈리아에서 자주 먹는 요리인 호박꽃 튀김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호박은 씨부터 꽃까지 버릴 게 없는 재료다. 남은 씨는 잘 씻고 말려서 볶아서 먹으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채소 요리들. 간단하고 속도 편안한 음식이다. 놀랍게도 이탈리안 남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 반찬 중 하나가 연근 조림이어서 연근을 구해서 가끔 만든다. 나는 당근, 연근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채소도 좋아하는데, 웃긴 게 예전에는 당근을 진짜 싫어했었다. 하지만 헤이즐넛과 버터에 졸인 당근은 당근 혐오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라고 자부한다. 어떤 재료든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맛을 낸다. 겨울에는 뿌리채소로 여러 요리를 할 수 있는데 제일 쉬운 건 수프나 커리. 나는 커리를 진짜 좋아해서 일본 카레, 인도 커리, 타이 커리, 심지어 오뚜기 카레까지도 다 좋아하는데, 주로 코코넛 밀크, 깍지콩과 고수를 넣고 태국 스타일로 자주 해 먹는다. 가끔은 시금치를 갈아서 인도 커리인 팔락 파니르처럼 해먹기도 한다. 매운 거 못 먹어서 고작 커리 하나 먹고 눈물 흘리는 유럽 친구들을 보며 나는 아시아계 친구들과 함께 늘 비웃으며 말한다. 향신료를 못 먹는 아시아인이란 진정한 아시아인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쁘고 성공적인 요리 사진만 올리지만, 사실 실패했던 경우도 꽤 많다. 기억나는 경우가 프랑스식 오리 스테이크를 처음 구웠던 날이었는데, 오리 가슴살 구이는 프렌치 비스트로에 가면 흔하게 자주 나오는 메뉴다. 나는 한국에서는 오리 고기를 거의 먹지도 않았었고, 당연히 오리 가슴살을 한 번도 요리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비싼 오리를 사 와서 붙어 있는 지방 부분을 정성스럽게 다 제거했다. 남자 친구가 그걸 보고 화들짝 놀라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오리 스테이크는 그 지방 맛으로 먹는 거라고... 덕분에 우리는 지방이 하나도 없는 퍽퍽한 오리 가슴살을 먹었었다. 이때의 경험이 내게 실패의 쓴맛을 맛보게 해 주었고 오기가 생겨서인지 계속 도전한 끝에 지금은 거의 오리 스테이크 마스터가 되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기도 하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는 거.
이 모든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나는 요리가 정말 재밌다. 순수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취미랄까. 물론 요리한 후의 설거지는 그렇게 재밌지는 않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좋은 도구들이 마련된 넓은 주방을 갖기를 언제나 꿈꾼다. 나는 몇 개의 칼과 기본적인 팬과 냄비만 갖춰진 정말 작은 부엌에서 이것저것을 만든다. 비록 비싼 팬도 좋은 칼도 넓은 식탁도 없지만, 내 손으로 뭔가를 만지고, 보태고 또 덜어내는 그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아 물론, 그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안 맞는 바지도 늘어나는 건 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