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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Dec 29. 2022

친환경적이라는 모순



환경에 관심을 갖고 나서부터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시간이 더 걸리고 죄책감까지도 느끼게 됐다. 솔직히 친환경적으로 사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던 물건을 살펴보고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소비를 안 하는 게 환경에는 가장 도움이 되는 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예 소비를 안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또 소모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비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화장품부터 세제나 생리대 같은 생활 용품까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사다 보니 흔히 '그린 워싱'이라고 부르는 친환경적인 척 눈속임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소비자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환경을 신경 쓰는 만큼 많은 기업들이 언제부턴가 '에코, 친환경, 자연주의, 비건, 지속가능성' 같은 단어를 마구 남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품의 생산 과정, 성분, 동물 실험 여부, 공정 무역,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같은 윤리적인 면까지 살펴보는 편이지만, 이 글에서는 특히 친환경 마케팅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특히 뷰티 업계에 '클린 뷰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천연 성분이라는 걸 과시하는 화장품 기업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화장품은 화학 물질이다. 화학 성분이 알맞게 배합된 걸 사람의 피부에 바르는 것 뿐이다. 무슨 뿌리 추출물 같은 천연 성분, 귀한 성분이 들어있다고 가격을 비싸게 팔고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사람마다 피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자연에서 왔다고 강조하는 성분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가 없다. 뭘 먹으면 살이 빠진다, 이 오일을 바르면 주름이 펴진다 같은 광고만큼 터무니없는 것이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식물 추출물 같은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비싼 화장품이든 저렴한 화장품이든 화학 물질이 어떤 비율로 배합이 되어있느냐의 차이 정도다. 솔직히 내 피부는 예민한 편도 아니어서 그냥 마트에서 대충 산 로션을 발라도 별 문제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웬만한 제품은 전부 테스트와 허가를 거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화장품이 화학 물질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면 캐나다의 화장품 회사 deciem에서 만든 광고 'Everything is chemicals'을 보면 된다. 솔직히 연예인을 모델로 고용해서 초록 숲 속에서 과일 들고 있는 이미지만을 파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회사들보다 훨씬 더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브랜드들이 유행에 맞춰 자연주의, 비건 이미지를 덧씌워 제품을 비싼 가격으로 판다. 식물, 녹색 이미지를 넣어 화학 성분은 나쁜 것이고 자연에서 유래한 것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으로 소비자들을 속인다. 나는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는 행위가 내 피부에 도움이 될 만한 화학 물질을 바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 화장품 회사가 정말 친환경적인지를 보려면 오히려 오일 같은 자연 추출물 성분을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가져오는가, 화장품 용기와 포장을 어떤 재질로 하고 있는가, 화장품을 생산하는 데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는가 같은 걸 따져봐야 한다. 가격이 높은 이유는 친환경이라서가 아니라 그 브랜드의 가치, 모델 고용, 광고, 용기, 포장, 디자인 등 여러 가지다. 온갖 불필요한 포장으로 범벅된, 재활용조차 되지 않을 용기에 담긴 고가의 화장품은 정말 내 피부를 위한 걸까? 아니면 내 욕망을 위한 걸까?


물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포장이나 용기를 아예 친환경적인 쪽으로 바꾸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화장품을 쓰면 플라스틱 병 쓰레기가 계속 나오는 게 스트레스라서 최대한 대용량으로 사서 오랫동안 쓰려고 한다. 요즘엔 용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수거하는 기업들도 있고, 100% 재활용 용기만 사용하거나 생분해가 가능한 소재로 용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화장은 거의 일주일에   정도 할까  까여서 색조 화장품은  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고, 이게 내가 매일 얼굴에 바르는 전부이다. 정말 간단하게 피부 관리를 하고 있다. 프랑스 약국에서 파는 로션, 포장을 최소화 한 미니멀 브랜드인 the ordinary의 부스터 몇 개와 선크림 정도. 아침저녁으로 작은 용량만 바르기 때문에  로션은   사면 거의 1년은 쓰는  같다. 많은 화장품이 필요하지 않다는  깨달은 후로는 이렇게  년을 살았는데도  피부는 건강하다.

사실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해선 종이로 포장돼있는 비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씻고 대용량 보습제 하나 쓰는 거 정도면 플라스틱 줄이기에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하지만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하기가 힘들다는 걸 알기에, 최소한 '진짜' 환경을 신경 쓰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게 좀 더 나은 방법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도 많은 브랜드들이 다 쓴 공병을 매장에 가져가면 제품을 채워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어서 나도 요즘 시도하고 있다. 프랑스 뷰티 산업의 대형 그룹인 그 유명한 로레알 조차 2025년까지 100% 재활용 용기만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출처 한국일보


에코 이미지를 팔아서 돈을 버는 건 패션 업계도 마찬가지다. 자꾸 플라스틱과 석유로 만든 합성 섬유에 '비건 레더', '에코 퍼' 같은 말을 붙여 판다. 물론 정말로 친환경적인 생산 과정을 거치는 소수의 기업도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에 휩쓸려서 환경주의를 단순히 트렌드로 생각하고 마케팅에만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얻기 위해 불법적으로 밀렵하는 것에 절대 반대하고, 동물의 가죽 자체를 아예 사용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이해한다. 이건 환경보다도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관점일 것이다.

하지만 비건 레더라고 불리는 제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한 도축된 동물은 가죽을 남기고, 그 가죽으로 가방이나 여러 제품이 생산된다. 동물 가죽이든 인조 가죽이든 공정 과정에 있어서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동물 가죽은 버려졌을 때 썩기라도 한다. 비건 레더는 알고 보면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소재의 인조 가죽일 뿐인 경우가 많고, 버려졌을 땐 썩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다른 합성 피혁과 다를 거 없는 과정으로 만들어졌는데 자꾸 비건, 에코 같은 이름을 붙여서 마케팅을 하는 기업이 괘씸할 뿐이다. 도축된 동물의 남은 가죽과 부산물만 사용해 식물성 원료로 만드는 베지터블 레더라는 게 있는데 생산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훨씬 덜 만든다. 물론 만들어지는 기간도 무척 길고 그래서 더 비싸다. 하지만 질이 좋고 튼튼한 제품을 하나 사서 버리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다면? 적어도 에코 레더라는 거짓된 이름을 붙인 플라스틱 가방을 몇 년 쓰고 버리는 것보단 훨씬 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


친환경적 소비라는 건 사실 허상인 것만 같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일개의 소비자일 뿐이고, 너무 많은 광고와 정보 속에서 뭘 선택해야 할지 어렵기만 하다. 어쨌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본인들에게 손해 볼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다만 화가 나는 건 원래도 있었던 물건에 예쁜 라벨과 그럴싸한 문구를 붙여서 자꾸 정직한 척, 환경에 좋은 척하면서 허울 뿐인 이미지를 만들어서 속인다는 것이 거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환경에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도 비건, 환경주의를 그냥 하나의 패션처럼 소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실 환경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은 위에도 적었듯 소비를 덜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구매하는 거의 모든 물건은 환경에 안 좋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해야 한다면 생산 과정에 신경을 쓰고, 환경 보호를 위해 후원하는 기업, 사회적 기업 등을 선택하는 게 차선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걸 따지는 건 정말 피곤하지만,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소비라는 건 있을 수 없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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