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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Feb 16. 2024

차 꾸밀 정성으로 당신을 좀 꾸며봐.



택배가 왔다.


"샴프?" 


카샴프. 페르시아 제국에 사는 사람의 이름 같다. 택배상자 위에 적힌 낯선 단어를 해석해보려고 애쓰는 그때, 황급히 뒤따라온 남편이 상자를 낚아채더니 갑자기 변명을 한다.


"있잖아, 사람도 머리가 더러우면 샴푸를 하잖아? 차도 마찬가지야..."


, 카샴프가 아니라 카 샴푸(Car Shampoo)구나. 

한숨이 나온다. 그가  차량용품을 구입한 것이다.


나는 '카 샴푸'를 소중하게 껴안고 방에 들어가는 그의 헝클어진 곱슬 머리를 바라보았다. 차에 들이는 정성만큼 그 자신을 꾸몄으면 못해도 동네 훈훈한 아저씨쯤은 되는 건데... 아쉽다.






요즘 그는 차를 꾸미는 일에 단단히 빠져 다. 

서너 달쯤 됐나. 작년에 새 차를 두 대나 구입한 후부터 그의 못말리는 차 사랑이 시작됐다.


원래 우리집 차는 친정 엄마가 잠시 타다 물려주신 작은 승용차 한 대 뿐이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큰 차의 필요성을 느꼈고 고심 끝에 대형 SUV를 구입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카시트를 두  설치하고 네 가족 짐을 모두 넣어도 이렇게나 여유롭다니. 후에는 내 복직이 임박하면서 출퇴근 용으로 작은  한 대를 더 구입했. 그렇게 갑자기 우리집에 새 차가 두 대나 생기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남편은 두 대의 차를 지하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해두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러니까 내가 정말 성공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야."


그는 감격한 표정으로 차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감수성 풍부한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던 것 같기도. 그 때부터였나, 그가 차를 애지중지 아끼기 시작한 것은.

(하긴, 내장재에 씌운 비닐을 벗겨내길 주저할 때부터 심상치 더라만...)




현재 그가 차에 미쳐서(?) 보이는 만행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 아이들이 무심코 창문을 톡톡 치거나 발로 의자라도 찰라치면 즉시 예민하게 뒤를 돌아보며 주의를 다.


2. 차에서 뭘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굳이 뭘 먹어야 한다면 양 귀에 비닐 봉투를 걸고 먹으란다.


3. 차에 타기 전에는 누구라도 신발을 털고 타야 한다. 저번에 보니 시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4. 핸들 커버, 핸드폰 거치대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시작해서 차량용 액세서리, 방향제, 세차 용품들... 각종 택배 박스들이 매일같이 집에 날아든다. 내 기준으로는 확실히 과하다.


5. 틈만 나면 티비와 유튜브로 각종 차량 관련 영상들을 찾아본다. 차와 관계된 영상은 뭐든지 다 보는 듯한데 최근에는 각종 차량 사고 영상들까지 구독해서 보는 중이다.(대체 왜?)


6. 내가 운전을 하는 날이면 차에 기스가 났는지 확인하기위해 차량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한다. 어느 때는 멀쩡한 차를 놔두고 택시를 타고 다니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 정말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덕분에 현재 우리집의 차 두 대는  깨끗하다. 먼지 한 톨 없을 뿐더러 반짝반짝 광이 나서 (뻔한 표현이지만) 정말 파리가 앉다가도 미끄러지겠다 싶. 


다만 차가 깨끗하게 빛이 날수록 정작 남편은 옷이며 머리며 꼬질꼬질한 것이 어째 조금 신경 쓰인다. 

본인은 로션도 안바르면서 차에는 어찌나 뭘 뿌리고 바르고 닦아대는지... 그럴 정성으로 자기 자신이나  멀끔하게 꾸미고 다니좋겠다는 생각이 든. 


얼마 전에는 그도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농담 비슷하게 말을 걸어왔다.


"자, 골라봐. 1번, 옷도 잘입고 멀쩡한 사람이 있는데 알고보면 차나 집은 엄청 더러워2번, 사람은 촌스러운데 알고보면 잘씻고 차랑 집 엄청 깨끗해.   누가 나아?"


그..건... 그중에선 아무래도 2번이 낫지깨끗은 하니까.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2번을 고르자 그는 거 보란 듯이 웃는다.


"그~치? 2번이지?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나 세차하고 온다."


그의 차 사랑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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