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이 Nov 20. 2023

젊은 기간제 교사의 일기





방황하던 여자는 첫 시험에서 떨어졌다. 당연하다. 이런 경기 불황에서도 감히 정신을 못 차린 대가이다. 50대 1의 경쟁에서 1이 아닌 49명에 속한 여자는 요즘 애들은 노오력을 안한다는 말을 들어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렇군요, 노오력이 부족했군요. 패배자는 공부해서 1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우울하든 말든 배는 고팠다. 일주일만 근무하면 된다는 강사 자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지하철을 번 갈아타고 도착한 학교에서 간단한 질문을 받고 채용이 됐다. 다음 주부터 나오면 된다 했다. 멀리서 한 여인이 턱짓으로 교사를 부르더니 쟤는 누구냐고 묻는다. 경력은 있는 거냐고 묻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경력이 없어서 채용을 못할 것 같다'는 번복 문자를 받았다. 이미 받았던 교재는 미안하지만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경력 좀 쌓아서 다시 오세요. 교재를 돌려받은 그의 대답이었다. 위로의 말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 네. 몰라뵙고 감히 초짜가 왔네요. 경력 쌓아서 다시 오겠습니다.


비정규직 경력이 네 줄 정도 쌓였을 무렵,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남 교사에게 너랑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은 훨씬 더 노골적인 문장이었지만 그대로 쓰기엔 너무 역겨우니 나름 순화해 보았다. 그후 여러 사람이 여자에게 밥을 사주며 입을 다물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 용감하던 교생은 오히려 꼬리를 쳤다고 매장이 됐다나. 여자는 겁이 많았고 그는 아는 사람이 참 많았다. 추하게 늙은 남자가 끝까지 자랑스런 우리 선생님으로 남았을 때 젊은 여자는 계약을 만료하고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다음 학교는 경쟁이 치열했다. 명문 사립고교라니 운이 좋았다. 하루는 여교사 집단이 그들의 티타임에 여자를 초대했. 괜찮다고 했지만 그중 가장 나이 든 여자가 "오라면 와야 되는 거" 라고 나무랐다. 따라갔더니 그들은 여러 질문을 해왔다. 주로 어떤 연줄 붙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런 건 없다고 답했지만 믿지 않았다. 정교사 티오가 있는 자리라서 여러 사람들이 달라 붙었다고 했는데,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젊은 여자가 들어온 것이 영 이상한 눈치였다.


갑자기 나이 든 여자가 본인이 몇 살로 보이냐고 물었다. 뭐지, 테스트 같은 건가? 그녀는 54살인 여자의 엄마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오십...이라 답했다. 그녀의 얼굴이 험상궂게 굳었다. 다른 여자그녀를 달랬고 여자는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원래도 외톨이였지만 젊은 여자는 그날 이후 더욱 외로워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의 나이는 육십이었다. 모범 답안이 몇 살이었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방송국에서 무언가를 촬영하러 학교에 온다고 했다. 비정규직 교사들로 채워진 축하 공연팀이 결성됐다. 매일 점심 시간마다 강당에 모여서 춤 연습을 다. 구경 온 아이들이 여자에게 왜 그렇게 뻣뻣하냐면서 놀렸다. 여자도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열심히 춤을 췄지만 방송에 나가진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수시로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남고에서 미혼의 여교사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에 대해 입을 놀렸다. 인기에 취하지 말 것, 애들에게 쓸  없이 잘 해주지 말 것, 지켜보고 있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때때그들은 젊은 여자가 걱정된다고 했다. 왜지. 웃으면서 말해서? 부드럽게 말해서?

어느날 여자는 학생들을 모두 엎드리게 한 후 아프게 엉덩이를 때렸다. 몇 명의 아이가 흐느껴 울었다. 여자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고 나왔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여자의 꿈에서 되살아나 반복될 장면이었다. 며칠 후 여자는 다시 불려갔지만 이번에는 칭찬을 들었다. 애들이 이젠 여자를 무서워 한다고, 아주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는 그날 집에 전화를 걸어 교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쯤에서 정말 끝났더라면 좋았을까.

여자의 엄마는 공부는 안해도 좋으니 딱 한번만 더 임용시험을 봐달라고 했다. 마지막 소원이라 했다. 공립학교는 다를 거고, 정교사가 되면 또 다를 거라고.

그때 여자는 사람 자체에 환멸을 느꼈으니까 그런 말들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마지막'이라는 말에 또 다시 거절하지 못했을 뿐.


시험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자는 행복하다 여겼을까, 아니면 가족의 부탁을 거절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졌을까.




마법의 단어 '아무튼'.

아무튼 이것은 소설이고 허구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실제의 여교사는 행복하고 보람찬 기간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가끔 남편에게 하소연 할 때마다 회사는 훨씬 더 무서운 곳이라는 위로(?)를 들으며 정말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어리숙한 교사로서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