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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class Oct 12. 2024

은밀한 욕구 해소의 공간

쉼표, 28일

학교라는 조직에서 나와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했고, 오늘은 수업을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에 대해서 고민했었거든요. 아이들에게 단순하게 수학만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수학을 도구로,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큰 세상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고,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자영업을 시작하고는 그게 잘 되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일을 하다 보니, 모든 이야기는 판단의 대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지게 되었어요.

그런 답답함에 글쓰기가 시작되었지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떻게 알았는지 지인들이 몇몇 찾아오더라고요.

블로그.

익명의 공간에, 그냥 제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지인이 읽는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에 브런치를 시작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아직 브런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브런치는 제 일기장 같은 존재예요.


누군지 모르는 제 글을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읽고 가는 공간.


습작이 모인 공간이기에, 횡설수설하고, 답답하기도, 어둡기도,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남은 하루는 조금 더 평화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몸은 그것을 거부하고 모두 토해내는 과정을 겪게 되지요. 그렇게 게워내고 나면 조금은 속이 편해지기도 하고요.


좋지 않은 감정도 토해내야 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그날도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어요.

반항끼 많은 아이로 인해서 모든 민원이 담임인 제게 집중되고 있었고, 업무도 몰렸어요. 조금 거짓말을 더해서 거의 1분 간격으로 다양한 사람에게 업무 지시가 모이고 있었지요.


30개 학급, 60명 교사의 온라인 교육활동 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모든 업무가 제게 집중되던 혼돈의 시기였지요. 뭐, 관리자의 교통정리가 미흡했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할게요.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가운데, 개인전화가 왔어요. 제가 담임을 하는 학급에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선배교사였어요. 전화를 받았고, A학생이 아직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지요.

벌써 4번째였어요. 그 부장이 A학생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던 게 말이에요.

평소 같으면 그냥 알려줬지만, 자신의 수고를 귀찮게 여기며 타인의 수고를 당연시 여기는 그 모습에서 저도 화가 조금 났었지요. 그리곤, 지난번 메시지를 확인해 보라고, 저는 지금 다른 업무 처리로 정신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지요.


10분쯤 지났을까요?

다시 전화가 왔어요. 같은 사람이지만 목소리가 달랐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욕설이 들리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건가? 하고 말이에요. 제가 말하려 하니 수화기 너머에서 말하더군요.

“입 다물어. 난 지금 내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야.”

그 말을 듣고 저는 수화기를 내려뒀어요. 끊지는 않았고요.

소리가 잠잠해진 것 같아서 전화기를 다시 귀에 가까이 하니 별 말이 없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알겠어?”

뭔지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답 했고, 전화는 끊어졌어요.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하지요.

자신의 분노를 그저 타인에게 쏟아내는 사람들.

그 또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좋지 않은 것을 어디에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인거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술자리에서도 그런 걸로 유명하더라고요.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화가 나면, 주변에 감정을 그냥 쏟아내고, 술에 취하면 역시나 감정을 쏟아내고. 그런 과정을 직접, 간접적으로 몇 번 봤던 사람들은 조금씩 그 사람을 멀리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의 지혜가 더해지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잘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지혜를 배우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힘이 필요하지요. 어쩌면 그런 기술을 배워가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브런치.

글쓰기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제게 은밀한 욕구 해소의 공간이면서, 제 감정의 부정적인 부분을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게 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제 글을 읽어준다고 이야기했었지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제 이름과 나이, 얼굴을 알고 있다면 저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어쩌면,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정말 저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감정의 깊은 곳, 제 생각의 미묘한 흐름까지 보고 있으니까요.


이 생각은 여기까지 해야겠어요. 더 갔다가는 제가 더 부끄러워서 자칫 편한 이야기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는군요.


아참. 그때 그 선배교사와의 뒷 이야기를 끝으로 할게요.


전화가 끊어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그에게 자연스러워지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서면으로 그래도 예의상 사과를 표현해 봤었어요. 답변이 없더군요. 맞아요. 무시당했어요.


오후시간. 그분이 있는 교무실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어요.

빈 교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했지요.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거예요.

바쁜 건 안다. 지금 학교에서 당신이 가장 바쁜 사람인 거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당신(저)과 친분이 있어서 이 정도 물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연락했던 건데 그렇게 말하면 되겠느냐? 난 그게 기분이 나쁘더라.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리고 제가 말했어요.

저도 정신이 없었다고. 그런데, 제가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투정 좀 부리는데 그걸로 그렇게 욕을 먹으니 당황스럽다고. 말이에요.

그러자 그의 표정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어요.

친함이라는 단어가 만만함으로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황스러움 이후에 급히 상황은 수습되었어요.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지요.


안타까운 건, 그때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가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게는 존대를 하고, 저 또한 그를 존대하지만, 다른 후배교사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친분.

권위에 의한 친분인가요?

아니면 동등함을 전재로 하는 친분일까요?

그분이 알고 있는 친분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게 되는군요. 그리고 제 관계에 그 단어는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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