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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Jan 15. 2024

2023 내 맘대로 영화 결산

한 해를 빛낸(?) 열 편의 영화들

 2023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열 편의 작품들을 선정해 보았다. 작년 한 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모든 영화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지금부터 나만의 작은 시상식을 개최해 보고자 한다.



올해의 과소평가상, <바빌론>



 <위플래쉬>, <라라랜드> 등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만인의 기대를 받았던 <바빌론>은 흥행과 비평 모든 면에서 다소간의 부진을 면치 못한 채 조금은 아쉬운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작품 속 드러나는 수많은 오마주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고전 영화들에 대한 약간의 식견이 요구되는 한편, 난잡한 전개와 높은 수위 등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요인들이 영화 곳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 간의 드라마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데 능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 특유의 연출 솜씨가 여전히 영화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배우진의 호연 또한 작품의 감정선을 한층 깊게 만들며 적잖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쉬이 부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감상에 따라 혹평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으나, <바빌론>은 작품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영화이다.



올해의 소문난 잔치상, <드림>



 <드림>은 좋지 않은 의미로 모두의 기대와 예상을 철저히 벗어난 작품이다. <스물>, <극한직업> 등의 신선한 코미디 작품들을 훌륭히 성공시키며 한국 영화계 클리셰 깨부수기의 선봉장으로서 종횡무진하던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뻔하고 신파적인 연출과 전개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 소위 ‘말맛’이 녹아 있는 재치 있는 대사 등 이병헌 감독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강점들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제 나름의 매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작품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조악한 만듦새로 인해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한다.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성장 서사 역시 작위적인 연출의 그늘에 가려 전혀 감동적인 요소로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병헌 감독의 네임밸류는 물론, 박서준, 아이유 등 화려한 배우진을 무기 삼아 다수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끌어모았던 <드림>이지만, 결과적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격언만을 여실히 증명해 준 꼴이 되었다.



올해의 IP 활용상,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인기 IP를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일견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유명 IP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이 영화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꽤 여러 번이나 목격해 왔다. 원작의 디테일한 요소들을 작품 속에 충실히 녹여냄으로써 기존 팬들의 만족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한편, 원작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 또한 영화를 가벼이 즐길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의 각색을 진행해야만 하는데, 이 두 가지 과업을 모두 훌륭히 수행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단순한 스토리와 지나치게 빠른 전개 등이 영화의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작품 속 디테일한 이스터 에그들을 통해 원작 팬들에게 훌륭한 팬서비스를 선보이는 한편, 간결한 구성을 고수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화하여 한층 넓은 범위의 관객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훌륭하거나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평하기는 어렵겠으나, 적어도 영리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올해의 속편상,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영화 관람료 인상 이후 다소 보수적으로 변모한 관객들의 소비 성향에 맞추어 발생하게 된 극장가의 속편 열풍은 2023년에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범죄도시 3>,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노량: 죽음의 바다> 등 다수의 속편 작품들이 극장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바 있으나, 작년 한 해 속편으로서 가장 극적인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던 작품은 단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편들에 대한 여러 오마주와 함께 관객들에게 훌륭한 수준의 팬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물론, 하나의 단독 작품으로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가장 근사한 형태의 마무리를 선물해 주었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향해 누적된 관객들의 피로감,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이루어낸 값진 성과이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올해의 명예로운 패배상, <인어공주>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 성적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 법이다. 시원찮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훌륭한 짜임새를 지닌 작품임에도 여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인어공주>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배우 캐스팅 이슈로 인해 <인어공주>는 모름지기 2023년 최고의 문제작으로 떠오르며,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이미 수많은 이들로부터 커다란 반감을 샀던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스팅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인어공주>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처럼 여겨진다. 지나치게 투박한 연출 및 전개, 그리고 의미 없이 추가된 잡다한 부연 설정들은 영화 속에서 호소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극을 더욱 번잡스럽게 만드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인어공주>의 실패를 캐스팅 이슈와 같은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 영화가 작품으로서 선사하는 매력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도리어 캐스팅 이슈라는 훌륭한 명분 덕에 명예로운 패배를 당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올해의 프랜차이즈상, <범죄도시 3>



 2년 전, 코로나19의 장기적 유행으로 인해 영화 시장이 다소간 침체됨에 따라 천만 영화의 재림을 목도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뚫고, <범죄도시 2>는 폭발적인 흥행 가도를 달리며 우리 모두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연말 극장가 흥행 돌풍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서울의 봄>에게 2023년 한국 박스오피스 1위 타이틀을 빼앗기기는 했으나, <범죄도시 3>가 천만 관객을 달성하기까지 보여주었던 매서운 흥행 추세에 범접할 수 있을 만한 영화는 작년 한 해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관람료 인상 이후 한국 영화계를 향해 다소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판적 성토 속에서 이처럼 범국민적이고 지속적인 인기를 끄는 시리즈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가히 괄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2편을 통해 1편에서 선보였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한층 희석시켰던 한편, 3편을 통해 이전 두 편에서 선보였던 영화 내 클리셰를 적절히 비트는 등 매번 돌아올 때마다 약간의 영리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 또한 인상적인 부분이다. 시리즈의 앞날을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참신한 시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의 힐링 전파상, <엘리멘탈>



 <엘리멘탈>은 뻔하고 진부하다. 그럼에도 훌륭하다. 살아온 환경과 형성해온 가치관이 상이한 두 인물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인연을 맺은 뒤, 서로를 점차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닳고 닳은 서사가 이토록 호소력 짙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분명 영화 속 세계관이 서사의 고리타분함을 압도할 만큼 참신하고 매력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앰버’와 ‘웨이드’로 대표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극단적이면서도 귀여운 캐릭터 설정 역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충실히 흔들어 놓는다. 문자 그대로 ‘불 같은’ 앰버와 ‘물 같은’ 웨이드가 각자의 뜨거움과 차분함을 잠시 뒤로 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좇아 열렬히 달려나가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가슴 따뜻한 훈훈함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에 ‘올해의 커플상’ 부문을 추가적으로 마련하여 두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부디 앰버와 웨이드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올해의 뚝심상,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오펜하이머>



 바야흐로 숏폼의 전성시대다. 짧고 가벼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소비 풍조가 언젠가 영화계까지 뒤덮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작금의 시류 속에서 다소 길고 진중한 분위기의 작품을 통해 다른 영화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란 일종의 어려운 도전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 애스터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두 명의 젊은 거장은 본인의 뚝심을 고수하며 어려운 길을 택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오펜하이머> 모두 다소간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지언정 두 감독의 연출적 개성과 강점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두 감독은 3시간에 가까운 기나긴 러닝 타임, 그리고 인물의 정서 및 심리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감각적 서사를 지닌 영화가 여전히 시장 내에서 뛰어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훌륭히 증명하였다.



올해의 입소문상, <서울의 봄>



 개봉 이전부터 다수 영화 팬들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작품이었지만, 이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던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봄>은 같은 해에 함께 천만 관객을 달성했던 <범죄도시 3>와는 확연히 다른 흥행 양상을 보여주었다. <범죄도시 3>가 시리즈의 명성과 인기를 바탕으로 개봉 초기에 집중적으로 매서운 흥행을 이끌었다면, <서울의 봄>은 대중들 사이 형성된 입소문을 매개로 계속해서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시키며 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형태의 흥행을 기록하였다. 흥미로운 방식의 편집과 화려한 배우진의 호연,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될 수밖에 없는 실화 기반 서사의 적절한 조화는 이렇게 또 다른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봄>은 근래 만연해 있는 극장 위기론을 향해 시원한 어퍼컷을 날리며 ‘영화가 재밌으면 사람들은 결국 극장에 온다’라는 영화 시장의 제1원칙을 다시금 단단히 각인시켜준 사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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