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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Mar 21. 2024

삶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결말을 알고 있는 종영한 드라마를 다시 돌려봤다.


극 중 등장인물이 곤경에 빠져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올 때쯤 습관처럼 옆에 두었던 리모컨을 잡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누르는 빨리 감기 버튼.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등장인물들의 갈등이나 혹은 곤경에 빠지는 등의 어려움에 처한 장면이 나올 때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에 빨리 감기 하거나, 채널을 돌려버린다.  

내가 처한 상황도 아닌데, 내가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그 순간의 주인공이 느끼는 곤란하거나 힘든 감정들을 보기만 해도 버거워서 사건들이 다 해결된 장면으로 넘어가버린다.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혹은 살다가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과 상황들이 생기면

나의 삶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데 자꾸 빨리 감기를 하고 싶어 진다.

드라마는 짜인 각본이고 내 삶은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빨리 감기를 누르고 싶어도 그 상황이 끝나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채 그 힘든 순간의 느끼게 되는 슬프고 우울하고 분노하고 불안하고 무서운, 부정적인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넘어가기 마련이고 혹은 더 조금 더 나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떻게든 넘어가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걸 부정하며 빨리 감기 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좋은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다고 하는데 빗대어 보면 나는 매 순간이 회피하고 싶은 일들의 연속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이 해결되기도 전에 넉다운이 되어 생각은 깊어지고 감정의 에너지를 금방 소진해 버린다.


우리 인생이 영화와 드라마 같은 편집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피엔딩 직전에 나오는 몇 년 후-처럼 너무 힘들고 각박한 시기는 모조리 편집해 버리고 빨리 감기 해버리고

행복하고 평온한 장면으로만 바로 넘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안타깝게도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누군가가 빨리 감기 해줄 수도 편집을 해줄 수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뻔한 말을 곱씹어본다.

언제나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돌아보면 과거의 내 삶의 위기의 순간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더 나락으로 빠졌던 적은 없었다.

최선으로 해결되지 않았을지언정 최후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즐기는 게 힘들다면 유연하게 받아들이자.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너무 깊게 빠지지도 말고

적당한 에너지를 쓰며 지금 이 순간이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각본이다 생각하고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 이 위기도 지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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