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톤 Jan 29. 2024

새벽 산책

어설픔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

수학 학원 조교로 출근한 지 보름이 조금 넘었다. 칠판을 등진 자리에서는 꽤 많은 표정들이 투명하게 읽힌다. 나보다 서너 살 어린 얼굴들을 멍하니 들여다보면 잡념은 물 위의 종이배마냥 흘러간다.


어느새 내 앞으로 와 선생님, 하고 나직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생각의 선잠을 살포시 깨운다. 교재를 넘겨보며 이 문제 어려웠는데 잘 풀었네, 하고 소소한 관심을 꺼내 보이면 하늘색으로 서서히 번져가는 웃음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다. 볼펜을 쥔 오른쪽 손목의 옷소매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나는 늘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풀어봤고 어디서부터 잘 모르겠어요?

내가 한때 가장 오래 꾸었던 꿈은 수학 교사였다.


꿈의 시작은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마도 뻔한 이유였을 것이다. 상수와 미지수를 섞어 영수증마냥 길게 식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즐거웠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며 언어로 맞닿아 있는 감각이 따뜻해서이지 않았을까. 가장 좋아했던 사람과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하듯 처음을 잊어버리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이다.


그 꿈은 여러 색으로 뒤섞인 분필가루처럼 순식간에 퍼석 내려앉았다. 그 안에는 아주 많은 계기들이 알록달록 섞여 있었기에 명확한 한 마디를 끄집어내기가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 내 마음에 대한 불안한 어림잡기. 시작만큼이나 미미한 끝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종이에 수학 기호들을 적어 내려갈 때면 분명 문제의 답은 나왔는데도 늘 알쏭달쏭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이 일을 하고 싶은 건가.


아직 잠들어 꿈을 꾸고 있나. 아니면 그저 산란되어 버린 새벽빛을 바라보고 싶은 정도일까.


꿈을 꾸었던 마음은 내가 어느 시절에 떨어뜨리고 온 마지막 문장이라서, 그리고 우연찮게도 그 아이들은 내가 흔들려버린 나이와 같아서, 그 맑은 눈동자 위로 많은 시절들이 겹쳐진다.


가끔 내 밤하늘에 끝내 그려 넣지 못했던 사람을 떠올린다. 나는 처음 좋아한 사람에게서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감정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 사람은 내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고 싶게 만드니까. 내 팔을 살짝 잡았다 놓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그 표정은, 나에게 그저 아무 꿈 없이 푹 자기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 옆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가 정말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는 내가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대신 사다리를 오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별은 네가 가져다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렇게 그때는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 마음의 끝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 사람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끝없는 마음만을 보여줬으니 그의 끝이 언제였을지도. 잠깐 반짝이다 꺼져버릴 상상 속 미래 때문에 영원한 숙제를 남긴 건 내 실수였을까. 아니면 그때는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성냥팔이 소녀마냥 성냥을 태워 떠올리던 얼굴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 더 흐려지기 전에 늘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내 첫 번째 꿈은 아니었지만

달도 별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가장 예쁜 새벽이었다고.


그렇게 놓아버린 것들은 가끔씩 의외의 형태로 내 삶에 다시 나타난다. 내 손에 다시 분필 가루가 묻을 날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너도 언젠가 다시 마주칠까. 아니면 그 감정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발견하게 될까. 너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유일한 증명이었고 그게 나의 처음으로 남을지 마지막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나는 나조차도 풀어낼 수 없는 질문을 자꾸만 아이들에게 떠넘긴다. 아이들은 대부분 답을 하지 못하고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거야.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해서.


어디까지 풀어봤고 어디서부터 잘 모르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의 끝에 걸리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