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있어요! 방 있어요~ ”
지금은 사라진 속초 고속터미널 풍경이다.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들려오는 소리. 속초의 공기를 마시기도 전에, 많은 민박집 사장님들이 관광객을 붙잡으려 호객행위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 틈을 지나 항상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미리 예약 할 필요도 없었고, 성수기에도 머물 숙소가 없을거란 걱정조차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이모님이 도문동에서 가장 크고 예쁜 한옥 민박집을 운영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해마다 속초를 찾았다. 계절 상관없이, 속초의 바다와 설악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내 기억 속 도문동은 속초 시내에서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 잡아, 바다인 대포항과 맑은 공기인 설악산을 모두 즐길 수 있었다. 한마디로 육지와 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문동이었다.
그렇게 멋진 도문동이었지만, 이모님은 그 매력을 느낄 새도 없이 늘상 바쁘셨다. 알아서 찾아와주는 손님들 덕분에, 이불 빨래와 반찬 요리에, 늘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셨다. 그나마 가족이 속초 여행을 가면, 현지 가이드를 자처하면서 우리와 함께 속초를 즐기곤 하셨다.
“ 이 집이 젤루 싸고 많이 줘 ”
“ 여기가 송혜교가 배 타고 들어간 곳이야 ”
“ 밥 먹고 나면, 여기를 한바퀴 걸어야 해. 아주 멋져부러 ”
“ 여기는 관광객들은 몰라. 물회 먹고 싶으면 여기로 와. 알았지!”
우리 가족은 현지인만 아는 맛집과 최상품 생선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속초 꿀팁’을 이모님을 통해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속초는 내게 가족여행의 즐거움을 처음 알려 준 특별한 장소다. 이모님이 그곳에서 계속 숙박업을 이어 가셨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국내 여행 문화가 바뀌면서, 언제부턴가 유럽식 펜션과 대형 리조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도문동의 민박촌은 점차 사라졌고, 결국 이모님도 다른 삶을 선택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의 속초 방문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번 추석, 나는 오랜만에 속초를 다시 찾았다. 벌써 10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대포항 주변으로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도 많아졌고, 고속터미널도 세련된 모습으로 새단장을 했다. 뭐랄까. 도시화 된 속초? 마을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인데, 그건 당연한 이치. 그런데 도문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199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문동이 대포동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추억이 담긴 그 현장들은 그대로일까? 괜한 걱정과 설레임이 뒤섞여 불안해졌다.
“ 여기가 진짜 맛있는 집이야. 이모 믿어봐! ”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모님을 따라 자주 갔던 ‘원조'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로 가득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지 큰 건물이 옆에 확장되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생선을 구워낸다.
예전엔 인심 좋은 여사장님이 직접 구워 주시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도문동이 사라진 것처럼, 이모가 추천하던 그 맛마저 사라진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이윽고 숯불이 가득 채워지고, 신선한 생선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숯불 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지글지글 생선이 익어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는 ‘그 때’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그 맛 그대로일 것만 같았다. 창밖에는 작은 고기잡이 배 한 척이 바다에 일렁인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노릇하게 익은 생선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 와, 너무 맛있어! ”
“ 진짜, 그때 그 맛 그대로야 ”
나와 남편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마주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바다의 신선함과 숯불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이 맛. 그제서야 식당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테이블마다 가족, 친구, 연인이 생선구이의 맛을 나누고 있는게 보였다. 괜히 사람들이 많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안도했다. 도문동의 한옥민박촌은 사라졌고, 생선구이집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채워졌지만, 속초의 추억과 맛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SNS에서 꼭 먹어보라고 추천받은 대청봉 빵을 구입했다. 손바닥보다 큰 빵 표면에는 대청봉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갓 구운 빵을 손에 들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고소한 풍미와 쫀득한 식감이 입 안 가득 퍼졌다.
“ 여기에 한옥집이 그려져 있으면 더 좋았겠다. ”
문득 이모님의 한옥 민박집이 생각났다. 속초의 추억과 맛이 빵 하나에도 담길 수 있다면, 사라진 도문동의 기억도 이렇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도문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여행자는 이제 드물지만, 나처럼 그 시절을 마음에 간직한 이들에게 속초는 언제나 특별하다. 속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그곳에서 우리만의 속초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속초 여행의 시작은 빵 한 조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