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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콤달콤 Jun 10. 2024

꼭 써야만 하는 에필로그

[ 19화가 될뻔한... ]

 


자, 어디 보자. 어디까지 썼더라. 미국에 간 딸아이의 학교 선택을 위한 고민 이야기까지였다. 이 글을 [1화]부터 봐주신 분들은 뭔가 이상했을 거다. 분명 두 아이를 미국으로 독립시킨다였는데. 어라? 왜 딸아이만 간거지라는 의문이 드셨을 터,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와 수줍은 고백 하나를 던지겠다.     


예상치 못한 나의 비자 미승인건으로, 미국에 계신 친정 엄마에게 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어차피 그럴 계획이었지만, 내가 함께 입국하여 학교 입학과 거주할 집 · 기타 서류 문제 등 아이들의 스타트를 해결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거랑, 처음부터 아이들만 보내는 거랑은 엄연히 다르다. 그 모든 스타트를 친정엄마가 해야 하는 거니까.     


강렬한 태양 아래 70이 넘은 할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LA 거리를 휩쓸고 다닐 장면도,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할 집을 알아보고 이사하는 장면도 상상하기 싫다. 이런 이유로 둘째의 출국은 잠시 뒤로 연기가 되었다.           


“ 미국 간다고 친구들이 알고 있는데, 학교에서 내가 모가 되는 거야? ”      


“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랑 통화해서 잘 이야기할게”          



낮 11시. 따르르릉 따르르릉 수신음이 울리는 내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미국행을 앞두고 선생님과 상담했던 일, 영문 서류 발급을 위해 행정실을 방문했던 일, 출국 예정을 앞둔 아이의 생기부를 가장 먼저 등록해야만 했던 일,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걱정보다, 행여나 친구들로부터 아이가 받을 오해가 생기면 어쩌나가 걱정이었다.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으신 선생님의 첫마디는 놀라웠다. 혹시 내 맘을 읽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걱정을 한 순간에 잠재워 주셨다.          



“ 어머나~ OO 출국이 지연되었다니, 친구들이 무지 좋아하겠어요. OO는 우리 반 마스코트예요. ”      


    

이렇게 간단한 거였다니! 나와 둘째의 걱정이 이리 간단히 해결될 줄이야. 사실 둘째의 난감했던 심정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의 추억을 쌓기 위해 기록한 거였지만, 불특정다수에게 내보인 글이다. 앞으로 이어나갈 이야기의 뼈대를 리스트화해 두었고, 기왕 작성하는 거 미국에 도착한 후 어떤 정보성 글을 기록할지 계획을 세워 두었더랬다.      


이것들을 할 수 없게 되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불특정다수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 따위에 마음 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지만, 이건 엄연히 내 마음의 문제였다.      


중단할 수 없었다. 애초의 계획과는 어긋났지만, 한국의 둘째와 ‘이미 가 있는’ 첫째의 미국에서 상봉을 목표로 글쓰기를 수정하고 스스로 파이팅을 외쳤다. 아마 누군가는 가족 추억은 일기장에 쓸 것이지, 대체 왜 브런치에 써가면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가 안 갈 거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로 돈 벌고 싶어서? 스펙 쌓으려고? ‘글쓰기가 취미예요’ 고상한 여자 코스프레하려고?  하.. (짧은 한숨) 이리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건 브런치에 글 쓰는 모든 작가들에게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햇수로 5년 (만 4년) 간 인터넷에 글을 썼다. 2년 차에 남들 다 한다는 리뷰 블로그 체험단을 호기심에 처음 한두 번 지원해 본 적 있으나, 나의 글이 광고주에 적합하지 않았던 건지 , 인플루언서 효과를 누리지 못할 적은 이웃이라 그랬던 건지,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재미없는 글을 쓰느니 ‘내’가 재밌는 글을 쓰자고 블로그도 내팽개치고 브런치 문을 두드려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유명해지고 싶었다.....기보다 정성스레 기록한 글의 조회수가 적을 때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주인인 내가 나의 글에게 읽힐 권리를 주지 않을 만큼 무능한 것만 같아서.       




주말에 아주 근사한 책을 만났다. 언어를 떡 주무르듯 휘황찬란하게 다루었으며, 분명 아는 단어이나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이 문장에서 춤을 추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술 잘 읽히는 글이었다.   



       

글과 삶이 일치하긴 어렵더라도
삶이 글을 전폭적으로 배반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말아야지. 

by. 이윤주
           



뼈 때리는 문장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자녀 유학을 결정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건강관리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해 놓고, 비자 거절로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있었다. 

     

식단관리도 영어공부도 대충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니다. 마음속 깊이 생각만 꿈틀댈 뿐이었지 아예 손을 놓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그 날밤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란 게 어디에 위치한 지는 모르겠으나, 가슴 가운데 언저리즈음이 먹먹하기까지 했다.       


작가도 아닌, 인플루언서도 아닌, (이 문장을 쓰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과연 내 글만큼 일치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니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이 글의 행보 수정안을 계획하고, 무릎을 탁 쳤던 그 순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필시 둘째 아이의 마음도 나와 같으리라. 물론 재료가 다르고, 대상이 다르고, 고민의 깊이가 다르겠지만, 내뱉어진 말이 정해진 기한에 실행되지 않았음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걱정이었던 것.     


아! 나란 사람은 겉보기만 당당할 뿐, 상당히 심약하단 걸 깨달았다. 다행히 아들이 갖고 있는 장점과 가족의 도움으로 이 글이 지속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렇다 할 수입도 없는, 예술가를 꿈꾸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줌마의 「미국으로 아이를 독립시킨다」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혹시 모르지? 「미국에서 생활을」 2탄으로 돌아올지?


그때는 ‘금방 잊을 수 있는 단순함’과 ‘주변을 웃음으로 물들일 수 있는 명쾌함’을 장착한 후 돌아오겠다. 매사 진지충인 내게는 상당 시간 소요될 거란 게(어쩜 안될 수도) 예상되니 벌써부터 피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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